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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Jan 24. 2024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자조모임이라는 것

주말에 만 2살 배기 장염 환자가 있는 누나집에 갔다가 장염이 옮은 것 같다. 장염을 걸려본 적이 처음이라 장염인 줄도 몰랐다. 밤부터 배가 쪼이듯이 아팠는데도 평소보다 조금 더 먹어서 체한 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열이 좀 나고 몸살 기운도 있길래 '감기 때문에 몸이 좀 약해져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고 잤다.


그렇게 단순 감기인 줄 아는 상태로 화요일이 되었다. 화요일은 '자조모임'이 있는 날이다. 나는 '지원사업 이후에 청년들끼리 사적으로 만나는 것'의 의미가 다 담기지 않는 것 같아서 '자조모임'이라는 단어를 피하고 싶지만 짧고 간단해서 쓰기엔 좋다. 이 모임에 가기 위해서 화요일 근무 시간을 적당히 적게 잡아놓은 덕택에 병원에 갈 수 있었다. 퇴근하고도 병원 갈 생각은 안 하고 침대에서 그냥 누워서 쉬고 있는데 룸메가 들어와서 골골 앓는 나를 보더니 추워도 병원 가보라는 말에 그제야 병원엘 갔다. 내가 추워서 귀찮아서 안 가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이 날 유독 많이 춥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모임도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병원에 가서 장염 확진을 받으니 안 가는 게 맞겠다 싶어 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매주 오던 내가 이번 주에 오지 않은 걸 알아챘을까?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다. 알아챘다면 무슨 일이 있어 안 왔다고 생각할까, 마음에 변화가 있어 안 왔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몇몇 분에게 토로하고야만 불편한 무언가를 피해 오지 않았다고 생각할까. 이번엔 아무 생각하지 않아 줘도 고마운 일이다.

  


자조모임이라는 단어를 쓰게 된 후에 생각해 보니 내 첫 자조모임 경험은 이미 중학생 때 한 번 있었다. '목회자 자녀 수련회' 같은 느낌의 이름이었다. '울지 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 정도는 아니어도 그 비슷한 '진짜'를 꿈꾸며 묵묵히 올곧은 신념을 지키고 사는 가난한 목사들이 세상에는 있다. 그런데 지방이나 시골 오지 등에 교회를 개척한 이 존경할만한 바보들의 자녀들은 대신에 상처가 대체로 좀 있다. 이때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의 효과를 처음으로 절감했었다. 평소 주변 환경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나의 특별한 아픔이 당연해지고 그래서 편하게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내 밖에도 있네' 하고 생각했다. 전부가 나였다. 헤어질 때 울기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후에 나는 이 모임과의 연을 잇지 못한 경험 때문이었을까. 인생에서 감화되어서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냉소적으로 되는 이 사이클 자체를 타지 않는 것을 학습해 버렸다. 변하는 내 마음을 느낄 때 내가 완전하지 못한 못난 인간에 가짜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것저것 마음에 대해 소소하게 배웠다 보니 대처가 되지만. 


이제는 마음이 올라갈 때는 올라간다고 억지로 붙잡아 내리려고 하지 말고 올라가고, 마음이 내려오면 그때는 땅에 붙어 좀 쉬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그래서 지금 가고 있는 자조모임은 내 쪽에서 먼저 쿨하게 끊을 생각은 없다. 이번엔 최대한 질척거려 볼 생각이다. 자유롭게 마음이 올라가 보도록. 사람들이 자신에게만 이 모임이 소중한 것일까 하는 헛헛한 생각이 들지 않게 해주고도 싶다. 반대로 나도 마찬가지고.


세상이나 내 마음에 대해 여러모로 배우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말로만 듣던 장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배가 많이 아픈 거구나. 그리고 약을 먹으면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병이구나. 배웠다. 이제부터는 장염을 앓으면 알 수 있겠네. 걸릴 일 없는 게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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