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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Jan 29. 2024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1월 넷째 주 마무리하며

이런저런 고민을 해보고 대안 탐색도 해봤지만 등하교의 말도 안 되는 강점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다음 학기 기숙사 신청을 했었다. 결과가 이번 주 월요일에 나왔고 선정이 되어서 기숙사비 납입까지 마쳤다. 


그리고 이번 주에 장염을 앓으면서 사나흘 금식하고 죽만 먹어서 그런지 얼굴 살이 빠져버렸다. 깜짝 놀랐다. '파괴력이 굉장한 병이었구나' 싶었다. 또 장염 약의 부작용인지 몸이 간지러웠고 발진이 생겼다. 몸통에서 시작해서 팔다리로 점차 번졌다.(인공지능에게 물어보니 항생제의 부작용이라고 한다.) 발진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나를 가렵게 하고 있다. 


토요일은 자조모임 동아리 활동이 있었다. 사실은 요즘은 여기서 자주 보는 분들이 만나면 반갑고, 의지가 되는 친구라고 느껴진다. 여건이 안 돼서 못 오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나를 포함한 구성원들이 모임을 통해 대체로 행복해하고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정말 잘된 일이다.


이번 모임은 내가 호스트가 되어 학교 근처 유명한 중식당에서 점심으로 만났다. 큰 누나가 두 번이나 일러줬던 맛집이었고, (완전히 까먹었지만) 유치원 근로를 같이 하는 여학생과 룸메이트까지 각각 따로 언급을 했다. 그쯤 되니 신중하게 식당을 수소문하던 나에게도 확신이 생겼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앞선 모임에서 호스트를 하셨던 분들도 멤버들을 맛있는 곳에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과 책임감이 컸다고 한다. 나도 부담감과 식당 대기가 있다는 소문에 불안해졌다. 그래서 30분 일찍 가서 11시에 식당 동태를 살폈다. 그때까진 조용했다. 그러다가 청년들이 다 합류해서 입장할 때는 오픈 직후였는데 1층, 2층 홀이 거의 가득 차있어서 아슬아슬하게 대기 없이 입장했다.


음식은 맛있었다. 식당을 나와서는 우리 동아리에서 여러 한을 풀고 계시는 청년의 다음 '한 풀기' 겸 산책 겸 북서울 꿈의 숲으로 버스를 타고 다 같이 이동을 했다. 걸으면서 걸음 속도에 맞춰 둘씩 자연스레 짝지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다 같이 줄 맞춰 걷기도 하며 대화를 나눴다. 날씨도 풀리고 오후의 해가 따뜻해서 걷기도 좋고 산뜻한 기분이었다. 이런 좋은 날에 함께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불과 네 달 전까지만 해도 혼자 와서 구경했는데' 그래도 그때 꼼꼼히 구경하고 간 덕에 이번에 소소하게 에스코트도 할 수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 근처 카페로 갔다. 평소에 다니면서 몇 번이나 봐두었던 곳이었다. 매장이 내 취향으로 예쁘기도 하고, 지나가면서 보면 항상 사람이 차 있어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내가 호스트가 되면서 가게 됐다. 카페로 청년 한 분이 추가로 합류해서 이야기 꽃을 더 풍성하게 피울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캠퍼스 투어를 했다. 언덕길이 많고 나름 험준하기 때문에 아침에 미리 [ 편한 신발을 신고 오시면 좋아요! ] 하고 카톡을 했었다. 그런 만큼 역시나 쉽지는 않았다. 아파서 일주일을 운동을 쉬었더니 나도 오르막길이 힘들었다. 종아리 근육의 형태가 느껴졌다. 그래도 늘 혼자 산책을 했던 곳을 함께 해서 뜻깊었다. 작년 10월 말에 센터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는 산책을 할 때마다 청년분들과 함께 걷는 것을 상상했었는데 그게 실현이 됐다. 나에게는 특별히 의미가 컸던 순간이었다. 소망이 실현되어서 감사하다. 


관광코스를 돌고 나서 우리의 주머니 사정도 고려해서 앞으로 얼마나 자주 만날 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맛집 탐방에는 돈이 든다! 씁쓸하지만 별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는 기분이었다. '그냥 만나서 산책하고 이야기만 나눌 수 있어도 좋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애초에 맛집탐방은 간판이고 자유로운 형식의 모임으로 가기로 했었다.


헤어지면서 나는 기숙사가 아닌 누나 집으로 향했다. 금요일에 일반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파독 간호사 출신 엄마한테 조언을 좀 구하고자 전화를 했었는데 이번 주에 조카가 다시 아팠다고 했다. 그래서 누나가 일주일 내내 조카를 어린이집도 못 보내고, 종일 육아를 하고 집에서 통역 일까지 하느라 힘들었을 거라고 가주면 힘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기숙사에서 룸메랑 비비느니 귀여운 조카와 식탁과 싱크대도, 가정식도 있는 집으로 가면 나도 좋으니 가겠다고 했다. 


누나가 자기 집에서 병을 옮아 갔다고 미안해서 쩔쩔맬 게 뻔해서 가족방에 장염 걸린 걸 말을 안 했었다. 그리고 내가 온다 하면 간식거리나 찬거리를 자꾸 준비하기 때문에 어제 갈 때는 말을 안 하고 갔다. 그러고 다 와서 연락을 하고,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얼굴 살이 쏙 빠진 걸 보고 누나가 내가 아팠던 걸 눈치를 챘다. 괜히 또 서로 연신 "미안하다, 괜찮다" 했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설 때는 절망적인 전장에 든든한 지원군으로 등장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매형과 누나의 표정을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먼 길을 갈 보람이 있다. 그리고 내가 선물 받아 가져온 차를 지친 부부와 나, 셋이서 나눠 마셨다. 감사의 인증샷도 보낼 겸. 그러면서 도란도란 모임에 관한 일도, 근황도 나눴다.


어른 한 명이 더 와주는 것만으로 아이도 안정감을 느끼고 누나와 매형도 한시름 놓게 되니 '도움이라는 것은 별게 아니구나.' 싶다. 함께 있고, 함께 하고. 역시나 그게 중요한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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