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뇽이 Feb 01. 2024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이런저런 일들

제법 여러 일들이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다. 일단 자조모임이 여러 가지 모종의 이유로 며칠 전 해산되었다. 자조모임은 2024년 고립은둔청년 지원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공백기동안 한 청년이 말 그대로 스스로 돕기 위해 열정과 고생을 가지고 만들어 시작된 모임이었다. 모임을 지속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전에 그 청년에게서 들었던 절실함이 떠올라 걱정도 되고 모임이 해산된 것에 더 마음이 아팠다. 나에게도 아쉬운 일이었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사람들 속에서 회복하다가 다시 사람들로 인해 사건을 겪고 탈진하게 되는 일이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내 모습도 돌아보고 반성도 했다.


화요일이 원래 자조모임에 가는 날이기도 하고 지난주에 참석도 못했기 때문에 이번 주 모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어 마음이 좀 허했다. 그래서 한 청년분이 내 이야기로 써준 캘리그래피도 가지러 갈 겸 그냥 원래 예정대로 복지관을 갔다. 도착해서는 빈 공간을 둘러보면서 '여기서 그래도 청년분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웃을 일도 많고 따뜻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씁쓸한 마음을 소화시켰다. 

사업 선정 면담을 받았던 추억과 사업 종료 후의 추억이 동시에 있는 곳

그리고 복지관을 나와서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나를 불편하게 했고, 내가 불편하게 여겼던 청년에게 내 감정을 직접 표현하기로 결단을 내리고 내 나름대로 큰 용기를 내서 만나자고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불편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 면이 있었다. 거절의 표현을 두어 차례 했음에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부분과 커뮤니케이션 과정 자체에서 발생하는 장애 요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줘야 한다'는 마음과 '나도 힘들어서 오는 건데 부담된다' 하는 인지부조화로 인한 고통도 있었다.


모임의 다른 청년들과 친밀해지자 나는 내 이런 고민을 그들에게 토로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명, 그다음에 또 한 명. 그런 식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별 좋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소연이랍시고 하고 다니는 내 모습이 싫었다. 또 어떤 한 청년의 태도를 보면서 배우기도 했다. 그 청년의 말들은 '아, 내가 정말 그릇이 좁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결정적으로, 나를 불편하게 했던 청년이 내 고민을 들었던 청년으로부터 넌지시 내 이름은 빠진 훈계를 들은 이후부터 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여서 마음이 짠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비겁하게 더 이상 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말고 본인에게 솔직하게 지금까지의 감정들과 그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싶었다. 한 동안 일부러 거리를 둔 것이 불편했던 감정을 퇴색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결심을 내릴 수 있었다. 


약속 장소에서 만나서는 망해서 사라진 케이크 가게로 데려가는 대참사를 겪긴 했지만 이동하면서 둘 다 좋아하는 닭강정을 먹으면서 버텼다. 맛있는 집이어서 다행이었다. 플랜 B로 스타벅스에 갔다. 귀로, 마음으로 쓴 맛을 느끼게 될 청년을 위해 완충 작용을 해줄 달달한 케이크를 사주려고 했지만 알고 보니 단 것을 싫어해서 생크림 카스텔라를 골랐다(이것도 충분히 달다 할 수도 있겠지만). "할 이야기가 있다."하고 불렀으니 더 어색해지기 전에 빵을 한 두 입 먹은 시점에서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불렀는지 시작해 보겠다."라고 운을 띄웠다. 다행히 이야기는 잘했다. 그리고 잘 들어주셨다. 내가 오해했던 부분들도 확인하고.


돌아가는 길에는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래도 이런 얘기를 해준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럴까? 나도, 이 청년도 사람 속에서 다시 부대끼면서 정말 한 치만큼이라도 성장한 것이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