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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Feb 02. 2024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소소한 대격변

동계 방학 국가근로장학으로 일했던 유치원 근로가 금요일인 오늘 끝이 났다. 짧았지만 제대로 일을 열심히 해서 뿌듯하다. 겨울에 땀이 나도록 하고 다녔으니. 신데렐라나 콩쥐가 할 것 같은 일들도, 아이들을 돌보는 제법 보육교사 같은 일도 했다. 유치원에 남자 직원이 없어서 힘쓰는 일도 나와 남자근로장학생 A가 도맡아 했다. 내가 없을 때도 분명히 잘하셨을 텐데 그래도 남학생이 와줘서 의지를 많이 했다고 말씀을 하신다. 같은 근로장학생인 여자애가 A와 나를 불쌍히 여길 정도로 '의지'를 하셨긴 하지만. 그래도 직장인의 '상사와의 관계로 인한 어려움' 같은 것도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어서 좋았고, 그래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나 자신을 조망하면서 오히려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직전 학기에 수강한 <조직행동론>의 도움도 받았다. 조직문화, 권력과 정치, 규범, 리더십 등 심리학과 인류학, 사회학 기반의 내용들을 간략하게나마 배운 것이 직장 내 조직원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렌즈가 되어주었다. 또, 내가 힘든 부분이 나에게 원인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유치원과 근로장학생 사이의 '지휘체계의 일원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알바로 온 (나이는 좀 많지만) 대학생 주제에 이렇게 건방지게 속으로 연장자들과 근로지에 대해서 판단하고 평가하고 있는 것은 양심에 걸렸다. 하지만 팜므파탈 수산나의 말처럼 "누구라도 사물판단하는 자기만의 기준은 있는 법."이니까.


목요일에는 A가 가고 싶었던 학교 정문 앞 닭고기 집에서 점심을 거하게 먹었다. A는 내가 편한 것도 있겠지만, 평소 가고 싶던 식당들을 같이 갈 사람이 생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같은 눈치도 있다.  비슷한 이유로 맛집탐방 동아리도 하고 있는 나에게는 식비 지출이 불어난 것이 부담도 되지만, 동아리 활동을 훨씬 자주 한다고 생각하면서 경험 삼아 즐겁게 어울리고 있다. 그래서 목요일엔 찜닭과, A가 먹고 싶다 하여 내 평생 말 그대로 '줘도 안 먹던' 닭발이라는 메뉴를 과감하게 시도했다. 형태도 그렇고 식감도 그렇고 닭발 조직이 내 저작운동으로 인해 파괴되면서 서서히 소스 맛을 뚫고 올라오는 맛도 그렇고 내가 앞으로 돈 주고 사 먹을 일은 없을 음식임을 확인했다. 어찌 됐건 A 덕분에 인생 첫 닭발을 경험한 것은 특별하고 기념할 만한 일이다.


A, 이 친구도 재수와 군 복무 이후에 대학 입학을 하게 되면서 늦은 나이에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거기에 대해서 말을 잘 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역시나 '정상 루트'에서 벗어났다는 감각으로 인해 힘들어했음이 느껴진다. 스물넷 정도에 스무 살들과 함께 시작한 어울리지 않는 역할(신입생)에 지치고 마땅한 친구를 사귀지 못한 A는 아마 내 존재만으로 위안을 얻지 않았나 싶다. 아, 그리고 A는 지난 학기에 유치원에서 힘쓰는 일을 혼자 하다가 같이 할 남학생이 왔다는 이유만으로 나에 대해 호감 필터가 장착된 것도 있다.


국가근로계의 3D 근로지인 유치원에서 벗어나 꿀근무지를 찾던 A는 내가 다음 학기 1 지망을 유치원에 썼다는 말을 듣고 희망 근무지를 수정한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오늘 알게 되었는데 꽤 감동이었다. 나도 안심이 되고 마음이 따뜻했다. A는 내가 작년 연말에 연구실로 찾아가서 밥을 얻어먹었던 교수님 강의를 같이 수강한 학생이니, 다음에 찾아갈 때 같이 가자고 했다. 의외로 흔쾌히 응하는 모습과 먼저 재차 약속을 확인하는 모습에 말해보길 잘했다 싶었다. 교수님 동의는 안 구했지만 교수님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다.


세 명의 근로장학 여학생 중 두 명이 사정으로 먼저 그만둬서 마지막까지 함께 일한 여학생은 한 명이었다. 이 친구도 근로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이번 주 내내 나나 A를 붙잡고 꿀근무지에 대한 정보 교환을 시도했다. 하지만 오히려 힘든 근무지에서 그냥 '일하는 연습'과 '직장 내 불편한 관계' 모의 적응 훈련을 할 요량인 오빠(내 학번을 알면서도 가끔 나를 오빠라고 부른다)에게서는 얻을 정보가 없었다. 미안하게 됐다.


퇴근 시간이 되어 교무실에서 선생님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지금까지 근무 시간에 느꼈던 분위기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훈훈한 순간이었다. '그만큼 선생님들도 일이 힘드시다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복잡했다. 사회의 변화와 양육 형태의 변화, 출산 연령, 학부모들의 기조의 변화와 같은 시대의 흐름들을 유치원은 직격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내부에서 보게 된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훨씬 위대했고 때때로 존경심이 들었다.


"아이들한테 강하게 말하던 모습들은 부디 잊어주세요~."

마지막 인사로 유쾌하게 털어내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A와 나, 최후의 여학생은 평소 헤어지던 계단 앞에서 유치원에서의 근무에 대한 소회와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좀 더 오래 머무르다 헤어졌다.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의 행복한 한 달이 지나갔다. 같이 밥을 먹고, 주 5일 퇴근을 함께 하면서 "고생했다", "내일 보자" 같은 인사를 나누고 다음에 만날 약속도 잡고.. 오랜만에 돈도 벌어 쓰고. 학기 중 근로가 시작되는 3월 셋째 주면 아마 또 함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얼마 만에 생긴 '학교 친구'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자조모임에서 만난 다른 청년에게 내 브런치를 소개하면서 내가 이곳에 처음 썼던 글을 다시 읽어 본 적이 있다. 그때와 지금은 내 마음도 상황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그동안 있었던 선한 인연들에 감사하다(제 이야기를 읽어 주고 계신다면 당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앞으로도 힘을 내길 나 자신. 괜찮다, 할 수 있다. 걱정하지 말자, 겁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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