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말하다

#행복

by 온호

매끈매끈하다, 울퉁불퉁하다, 울긋불긋하다 같이 두 번 반복해서 말을 하니 "연말연말하다"가 어떤 형용사처럼 느껴진다. 이 단어에는 어렴풋한 향수라든지, 막연한 회한이나 덧없음 같은 감정도 들어있는 것 같고 대견함, 뿌듯함, 기쁨, 화목함, 연결감도 들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만감이 교차한다"는 표현이 사랑받는 모양이다.


어제는 서울시 고립 은둔 청년 지원사업을 주관하는 기지개 센터에서 청년플랜브릿지 프로그램의 마무리로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나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행사 장소로 향했다. 같이 참여했던 청년분들이 각자 자기의 이야기를 프레젠테이션, 영상, 글로 전달했다.


발표를 보면서 공감이 되는 부분도 많았고, 변화를 겪기 전 모습도 봤던 분들이 몇 분 계셔서 여러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지나서 용기 있게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청년분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초대 지인으로 온 내 여동생이 그걸 보고 테이블에 놓여있던 커틀러리 냅킨을 건네줬다. 그게 잔잔하게 웃겼다.


청년들은 2년, 5년 등 다양한 고립은둔 기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이가 적게는 20대 초반에서부터 30대 중반까지 되는 것 같다. 나이를 많이 먹고도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세상을 등졌던 시간을 통해 자신에 대한 사랑, 존재에 대한 사랑을 일찍 알게 된 청년들은 오히려 축복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동안에 쭉 이어져 온 프로그램과 이 날 행사를 위해 직원분들이 얼마나 애를 쓰셨을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입에서 나온 "감사하다"는 말이 그분들 귀로 들어갈 때 내 마음도 그분들 마음에 가닿길 막연하게 바라는 수밖에는 없었다.



오늘은 6월부터 시작했던 봉사활동 프로그램의 성과공유회가 있었다. 도서관 근로를 마치고 잠깐 집에 들러서 대충 요기만 빨리 하고 이동했는데 도착하니 저녁 도시락이 있어서 감사했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는데도 그동안 기관에서는 봉사자들 식사 대접이라든지 소풍이라든지 원데이 클래스라든지 굉장히 극진한 대접을 해주셨다. 그래서 황송하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종종 있었다. 프로그램이 대상자들 뿐만이 아니라 봉사자들에 대한 돌봄 차원에서도 진행되는 것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아서 참 감사했다.


마지막 순서로는 프로그램 담당 복지사님께서 일일이 써주신 편지와 개인별 활동 사진이 함께 들어있는 감사패, 비누꽃다발을 받았다. 그리고 돌아가며 그동안의 소감을 말했다. 소감을 듣고 있으니 나도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세상이 팍팍하기도 하지만 늘 조용히 애쓰고 계신 분들도 많다는 걸 보고 있으니 힘이 됐다.





졸업 선물 겸 연말 선물 겸 가족들에게 줄 책이 오늘 새벽에 도착했다. 아침에 학교 갈 때는 귀찮아서 택배 상자를 들이지 않고 귀가할 때 챙겨 들어왔다. 직계 가족에게만 주는데도 그 수가 많다 보니 어디 단체용인 것 같아서 재밌었다.


세상에 좋은 책도 많고 좋은 말도 많고 내가 고른 『비폭력 대화』와 비슷한 내용의 책도, 이론도, 방법론도 많을 것이다. 내가 『비폭력 대화』를 고르게 된 건 다만 인연의 힘이 컸고, 그게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책이 쉽기 때문에 읽기 편하다는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사람끼리는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언어 자체에도 생각보다 불완전한 구석이 많고, 인지 체계도 그렇기 때문에 오해,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겪는 그런 경험들은 너무나 우리들 가슴을 아프게 하고,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폭력 대화』는 거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훌륭한 도구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가족들- 엄마와 아빠 간에, 부모님과 남매들 간에, 남매와 남매들 간에, 남매들과 그 자식들 간에, 그 자식들과 자식들- 간에 상처 주는 일, 고통을 늘리는 일이 덜 생기길 바라는 조용하지만 간절한 마음이다. 책을 통해 그런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연말연말한 일들을 겪고, 준비하고 있는 지금이 굉장히 따뜻하다. 행복한 하루 한 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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