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가족 모임

by 온호

어디부터 이야기를 할까. 지갑을 잃어버림으로써 손해 본 것들을 일일이 따져 계산하는 데서 오는 우울감?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지갑의 DX를 이룰 계기가 생겼다고 좋게 생각하자'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어서 마음이 조금은 유쾌해진 일? 오늘 점심을 함께 먹을 교수님께 졸업 후 계획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 아니면 지난 토요일 아침 오랜만에 본 아빠의 눈빛이 뭔가 흐리멍덩해지고 얼굴은 완전한 할아버지들의 얼굴과 닮아 있어서 충격을 받았던 순간? 잘 모르겠다.


토요일에는 6남매의 막내이자 내 유일한 손아래형제인 여동생의 신혼집에서 가족 모임이 있었다. 아니 가족 모임이 거기서 시작되었다고 해야겠다. 이후에 종횡무진했던 것을 감안하면.


금요일 기술교육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따릉이를 대여하면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 날 있을 일정에 대한 계획은 무엇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첫 시작은 서울역에 8시 40분쯤 도착하는 부모님을 동생 부부가 픽업하러 간다는 것이었다. 나도 서울역으로 가기로 했다.


맥도날드 앞에서 동생 부부와 먼저 만난 다음 부모님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합쳤다. 아빠는 중절모를 쓰고 야상 코트 같은 것을 입고 있었는데 중절모 챙 아래로 보이는 아빠의 눈 사이가 유독 멀어 보이고 코는 부어 보였다. 늘 반짝거리던 눈동자의 빛도 어쩐지 희미해 보였다. 내 아빠의 낯선 모습이 왜 그렇게 무섭고 충격적이었는지 모르겠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빠 뒤에 서있는 세월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존재를 아마 느꼈던 것 같다.


아빠도 그런 내 감정을 느낀 것인지 약간은 주눅이 든 듯한, 자신감이 없는 듯한 기색이었다. 원래 같으면 자신에 대한 한 치의 의심도 흔들림도 없는, 인생에 대해 걱정도 불안도 없는 강한 눈빛으로 나를 깊게 바라봤을 텐데. 그래서 나는 불쑥 거리는 감정을 느꼈다. 눈물이 나올 전조였다. 늙은 사람의 취약한 모습만 보면 눈물을 내보내려고 하는 불쑥거림은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흡'하는 느낌이 찾아올 때 그걸 참고 넘기는 것은 다행히 할 수 있어서 그렇게 했다. 참지 못하고 내가 울고, 그런 나를 다 알고 어깨를 다독여주는 부모님의 모습은 머릿속에서만 그려졌다가 빠르게 지워졌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매제의 차가 세워진 곳으로 이동했다.


예쁘게 따뜻한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해놓은 신혼집에 도착해 차를 마시고 쉬다가 시간이 되어 부모님은 동생이 효도로 준비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나도 그 시간에 뭔가 하는 게 낫겠다 싶어 미루고 있던 병원 방문을 했다. 목이 아파 돌리기가 힘든 상태였다.


각자 마사지와 물리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고 동생 부부는 점심을 준비했다. 그 사이에 1,2번 누나가 같이 차를 타고 도착했고 3번 누나도 도착했다. 누나들은 선물로 들고 온 쿠키, 케이크를 전달하고 나는 책을 전달했다. 식사 준비하는 과정 중에도 비폭력 대화의 필요성이 많이 느껴졌는데, 하루라도 빨리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 손님 대접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위한 것인지 동생은 식사 준비 내내 일절 도움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조카들까지 총 11명이나 되는 가족들이 먹을 곤부지메 연어, 폭립, 오일파스타, 트러플 리조또를 부부 둘이서 차렸다. 음식도 맛있고 음악도 좋고 식기도 예뻐서 다들 식사를 아주 즐겁게 했다.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는 순식간에 끝났다. 사람이 많은 것은 이럴 때 좋다. 그리고 깨끗해진 식탁 위에 다시 초코 케이크, 슈톨렌, 매제가 핸드드립한 커피를 차리고 디저트를 시작했다. 단 것과 커피를 좋아하는 집이라 늘 이런 식이다.


디저트까지 마치고 다시 쉬었다가 이번엔 셋째 누나가 개업 준비 중인 곳으로 이동했다. 지리적으로 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어서 3번 본인을 비롯해 이런저런 불만이 있었지만 진행됐다. 혼자서 개업과 관련한 모든 걸 준비한 딸이 못내 마음 아파서 엄마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 같다.


셋째 누나는 뭐 하러 거기까지 가냐던 말과는 다르게 도착하니 얼굴이 환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셋째 누나도 이혼의 아픔, 과거의 아픔, 부모님에 대한 미움이나 자신에 대한 미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자신에 대한 사랑, 육아의 고통과 행복을 잘 통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4번인 형이 보내 준 고급 스피커가 도착해 있어서 상자에서 꺼내 적절한 곳에 배치를 시키고 동생 집에서 들고 온 고무나무 화분도 배치했다. 혼자 하기 어려워하지 못하고 있던 작업도 다 같이 했다. 그리고 예배를 드렸다. 내 편견이었던 무속이나 고사 같은 예배가 아니라 감사 예배였다.


잠시 쉬었다가 이번엔 내 자취방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첫째, 셋째 누나가 소소하게 가니마니 하는 민원을 넣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동네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들을 세우고 집 바로 근처 코다리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지나다닐 때마다 사람이 붐비는 식당이어서 언제 한 번 가족들이 오면 저기서 식사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실현이 되는 날이었다. 먹어 보니 사람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싶었다.


밥을 다 먹고는 이번엔 아빠가 가족들을 설득해서 내 방에도 잠깐 들러 큰누나가 기도만 마치고 곧장 떠났다. 부모님은 남았다. 나도 금요일 저녁에 전화를 걸었다가 안 것인데 부모님은 내 방에서 자고 가기로 한 것이다. 이 부분에도 형제들의 이견이 있었지만 나는 좋았다. 기말시험이 끝나고 방청소를 깨끗하게 해 둔 보람이 생겨서 그런 것인지, 딸린 것이 없어서든 동선상 유리해서든 부모님이 편한 곳으로 골랐다는 점 때문인지.


먼저 떠나는 팀을 배웅하고 돌아오니 둘째 누나 조카 문 끼임 사고 때문에 현관이 아비규환이었다. 누나는 놀라고 자책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어 보였고 엄마는 그런 누나 단속을 하다가 같이 흥분한 상태였다. 그걸 지켜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뺨을 한 대씩 쳐서 착란 상태에서 나오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 대신 우는 조카를 데리고 나와서 달랬다. 누나와 조카를 진정시켜서 떠나보내고 잠들기 전에 엄마와 대화를 나눴다. 대화는 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겪는 불편한 의사결정 과정과 감정 소모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역할이 크다는 나의 일방적인 부탁이기도 했고 지난 세월에 대한 엄마의 한탄이기도 했다.


우는 구간도 지나고 조율하는 구간도 지나면서 늦은 밤 대화를 마쳤다.


방은 좁지만 난방이 외갓집 아랫목 같이 뜨거울 정도로 잘 되는 덕분인지 부모님은 모두 만족스럽게 주무셨다. 새벽부터는 아예 바닥으로 옮기셨다. 빨간색 초록색의 비단으로 꾸민 무거운 목화솜 이불만 있었다면 그리운 느낌에 흠뻑 더 취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으로는 평소에 드시는 삶은 계란과 사과를 먹었다. 그리고 저녁 이후에 사라진 내 지갑에 대해 함께 고민하다가 해결하지 못하고 교회로 갔다. 45년 전 부모님이 결혼식을 올렸던 교회로. 내 자취방에서 지하철로 두 역만 가면 있었다.


45년 만의 방문에 부모님은 내가 짐작할 수 없고 딱히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 복잡한 감정에 젖은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교회 앞에서 부부의 사진을 예쁘게 담기 위해 조금 더 정성을 들일 뿐이었다. 예배를 드리고, 교회 목사님은 45년 만에 교회를 찾은 부부와 새 가족을 소개했다. 식사도 교회에서 했다. 식사하는 동안 아빠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옛 인연들과 그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혈당관리 하려고 걷다가 무릎이 아프게 된 엄마를 걱정하며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아빠는 출발할 때도 돌아갈 때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뒤에서 따라왔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스타벅스에서 차를 한 잔씩 했다. 엄마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유자민트티를 드리고 아빠와 나는 대충 1+1 쿠폰 있는 음료를 마셨다. 엄마는 역시나 유자민트티를 좋아하셨는데 마실 시간이 부족해서 텀블러에 담아 가셨다. 그걸 보니 잘 고른 거 같아서 뿌듯했다.


지갑 잃어버려서 속상해서 입맛도 없는데 엄마가 기어이 빵을 사주겠다고 해서 파리크라상을 갔다. 가난한 엄마 돈 쓰기가 무서운 꼬마도 여전했지만 엄마가 사주고 싶어 하니까 참고 적당히 몇 개 골라 계산했다. 시발역이니까 차가 들어와 있을 줄 알았는데 승강장으로 내려가니 차량이 아직 없었다. 추우니까 들어가라는 말에도 "얼마나 같이 있는다고 같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있어야지" 같은 살가운 말도 용케 잘하면서 몇 분 기다렸다.


차가 들어와서 인사를 나눈 후에 기차에 오르는 부모님을 여러 번 뒤돌아 보는 궁상을 떠는 일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엄마가 사 준 빵을 먹고 낮잠을 잤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도서관 출근을 하니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좀 가시는 게 느껴졌다. 지갑 분실과 관련된 손해 추정액이 상당하고 그동안의 절약이 의미 없어진 것 같아 허탈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민증과 면허증, 체크카드 재발급을 최대한 빠르게 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갑과 가족에 관해서 원망도 반성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우울에서 벗어나기도 하지만 죽고 사는 문제에 비하면 그런 일들은 어느 정도 사소하다. 대국적으로 보고 가족들과도, 인생과도 밝고 행복하게 지내야겠다. 사촌 동생과 지인들에게 연말 인사를 건넨 것, 가족 단톡방에다가 행복하게 대화하고 싶어서 책을 선물하니 읽어달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 이 글을 쓰는 것은 그것의 작은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