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8

#드라마

by 온호

촉촉. 독촉인지 재촉인지 브런치 규정에 저촉인지 [글 발행 안내]를 받았다. 보름 정도 글을 발행하지 않으면 받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오후에 글을 하나 쓰다가 노트북이 배터리가 다 돼 꺼졌다. 노트북을 충전하고 다시 켰을 때, 쓰던 글이 그대로 온전하게 남아있었지만 새로 쓰기로 했다. 까맣게 변한 노트북 화면 안에 보였던 이야기가 너무 답답한 이야기였다. "두쫀쿠"지만 자꾸 "두존꾸"로 발음하게 되는 두존꾸라든지, 성심당이라든지, 셋째 누나의 조카들 정서적 학대라든지, 형편없는 운전이라든지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 얘기해서 뭐 하겠나.

도서관 집중휴무기간에 오랜만에 드라마를 봤다. 만화로 보는 인문 고전 비트겐슈타인 편을 읽다가 하게 된 생각이 있었고 그런 상상과 관련 있는 드라마 「센스8」이었다.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감정, 느낌의 공유로 소통을 할 수 있다면 하는 상상.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약간 균형 강박이 있는 나는 제미나이에게 반대되는 견해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자아의 경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그리고나서 드라마 시즌1 1화부터 시즌2 12화까지 총 24화를 며칠에 걸쳐서 다 봤다. 사후세계에 대한 상상을 하던 중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찾아 읽었던 때처럼, 내 짧은 상상을 확장해 주는 작품을 보니 더 재밌게 감상할 수 있었다. '공감, 지지, 연결'과 '흐릿해지는 자아의 경계' 문제는 당연히 푸짐하게 들어있었고 호모 센소리움 같은 상상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젠더, 기존의 규범에 대한 메시지가 전면에서 돋보이는 드라마였다.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그래도 좀 너무 가네 싶기도 했다.

오늘 「개념어 사전」을 다 읽고 몇몇 페이지는 다시 읽어보면서 독서노트를 썼다. 그래서 나는 만약 필요하다면 「센스8」을 아주 짧게 "포스트구조주의" 드라마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됐다. [고전읽기:프로이트] 라는 교양 강의에서 가타리와 들뢰즈, 라캉, 데리다 같은 이름을 띄엄띄엄 듣고, 책 「개념어 사전」 속 강의에서도 포스트구조주의에 관한 반복적인 설명을 들은 덕분이다. 저 사람들한테 포스트구조주의 어쩌고 하면서 태그를 붙이고 있는 것도 모순 같긴 하지만 인문학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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