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아버지의 손자를 낳았지

#점심식사

by 온호

"아버지의 손자?"

내가 되묻고 교수님이 고개를 나직이 끄덕였다. 열린 수납장에 커피 믹스와 커피 쿠키가 서로 어긋난 채로 쌓여있고 3개 정도의 디퓨저가 공간의 끝점마다 배치되어 있는 생활감 넘치는 연구실에서였다.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후드 패딩이 왠지 피곤한 대학원생의 삶을 눈앞에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한.


23-2학기 종강 후 방학 때 점심을 사주셨던 교수님과 오늘 다시 점심을 함께 먹으러 찾아갔다. 처음 잡혔던 일정이 취소된 이후로 일주일이 지나 다시 조교분의 메일로 연락을 드렸었는데 다시 일주일이 지나 조교분이 전화로 날짜를 정하고 알려주셨다. 바쁘신 것 같다. 밥 먹으러 찾아오라던 말만 듣고 처음 찾아갔던 때에 교수님이 계셨던 일은 생각보다 운이 꽤 따라줬던 일이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됐다.


약 2년 전과 똑같이 연구실 문에다 대고 세 번 노크를 하고 들어 갔다. 교수님은 안 계시고 박사 과정 중인 조교분과 다른 학생 한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교분은 강의실에서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셨고 말을 잘하셨다. 대화를 들으면서 조교분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됐는데, 존경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업 수완, 행동력, 어딘가에서 매달 우수 영업사원으로도 선정되고 있을 것만 같은 탁월하게 서글서글한 성격, 자산, 남성적 취미, 다방면의 지식과 학구열, 유소년 운동 경력과 여전히 한 달 평균 400km 정도의 러닝을 하는 체력과 성실함 등.


이루어내는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정력적인 삶의 정수를 보는 것 같았다. 하루 2시간씩 자면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데 열정과 시간을 쏟고 그에 대한 보상과 성취로 이미 많은 것을 쌓아 올린 조교분은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나보다 한 살이 적었다. 나이 먹어가는 것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할 때 가만히 듣고 있기만 했던 것이 약간은 미안해졌다. 조교분을 보면서 위축감을 느끼기도,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목질화가 진행 중인 작은 나무를 보면서나 레몬청이나 딸기잼을 만들면서 기뻐하는 나로는 그런 삶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교수님이 나중에 오셨고, 근처 중국집에 갔다. "남자 넷이면 중국집이죠"라고 숨 쉴 틈도 없이 호응을 하는 것을 볼 때는 약간 놀라웠는데 훈련보다는 타고난 성격의 도움인 것 같아 보였다. 무작정 따라간 식당은 나도 이미 몇 번 가 본 꽤나 유명한 중국집이었다. 테이블에 앉아서 조교분이 냅킨 위에 수저를 놓고 물을 따르기까지의 속도도 나는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는데, 이 부분은 타고난 성격보다는 경험으로 인한 훈련 같이 느껴졌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할 때 내가 세팅을 하더라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런 속도로 빠르게 세팅에 착수하고 마쳐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배워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는 주로 교수님과 조교분의 비중이 높았고,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는 24살 남학생의 최근 몸상태를 비롯한 여러 고충들도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내 이야기는 비교적 너무 간단해서 길게 말할 것이 없었다. 졸업할 거고, 뭐든 일을 찾아서 일을 하게 될 거고, 걱정이나 고민도 크게 없고. 그래서 내 지적 호기심을 넘칠 정도로 만족시켜 주는 고학력자들의 대화를 귀담아듣기만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따뜻해진 몸으로 느끼는 바깥 온도는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다. 교수님의 인생을 아주 일부 보여주는 단편적인 이야기들도 들었다. 헤르만 헤세의 인생과의 공통점들을 떠올리면서 단순 호기심으로 교수님이 혹시 글쓰기도 하시는지 여쭤봤다. 처음 보는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잃어버린 꿈이지"라고 하셨다. 신기했다.


대학생들의 고민과 전공 교육과정 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교수님의 불만이라 해야 할지 두려움이라 해야 할지 회의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것들에서 나온 말씀을 들었다. '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 아주 공감되는 체험이자 느낌이었다. 그런 것들은 드러내지 않아도 어디선가는 새어 나와서 느끼게 되고 마는 것 같다. 알게 모르게 그런 것에 이끌려서 연구실로 찾아와 교수님과 점심을 먹었던 학생들이 그래서 아주 없지 않았던 것이고.


무뚝뚝한 아버지의 칭찬을 처음 들은 것 같다고 회상하신 대목은 교수님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가는 차 안 이었다. 교수님의 아버지는 "너도 내가 지금 느끼는 기분을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칭찬 같은 말로는 그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하시면서 교수님은 "그래서 아버지의 손자를 낳았지"라고 덧붙이셨다. '아버지의 손자'.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자를 낳았다고 말씀하셨다.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자요?'라고 묻지 않고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손자?"하고 표현에 주목한 것을 그대로 티 냈지만 교수님은 그게 한 군데도 틀린 구석이 없다는 듯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모습에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는 어떤 큰 감동을 느꼈다.


그 후로 대화는 AI시대의 대학 교육, 일본 여자와의 결혼, 경제와 금융, 건강 등 다양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나는 도서관으로 돌아갈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는지 핸드폰 시계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10분이 남았을 때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를 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왠지 개운하고 따뜻함을 느꼈다. '좋은 대화고 좋은 시간이었다.' 속으로 말하며 나도 내 남은 인생길을 향해 걸었다.


교수님의 아버지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설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읽을 때 왜 슬프든 찬란하든 어떤 감동을 느끼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는 다른 아무것이 아닌 사람 하나의 운명만이 중요해지고, 다른 모든 문제들이 아닌 오로지 사람 하나의 가족이나 주변인들만이 중요한 문제가 되고 그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일까? 체념하게 되고, 관대해지고, 사랑이 넘치게 되고,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다른 무엇에게 내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체험에 관한 것과 인생에 대한 것으로만 채우기 때문인 걸까? 치열한 모든 것을 마침내 끝마친 후에 찾아오는 평온이 주는 감동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