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는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확실히 떠올렸다

#여행, 이어지는 카프카

by 온호

내가 만든 레몬청은 맛있다. 뜨거운 물에 레몬차로 마셔도, 탄산수와 얼음에 에이드로 마셔도 맛있다. 샐러드용 채소들 위에 드레싱으로 뿌려먹어도 맛있고, 각종 요리용 양념에 들어가도 맛있다. 내가 만든 레몬청이 맛있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 설탕을 적당히 넣거나 대체당으로 대체하거나 하지 않고 만들기 때문이고, 씨 몇 개를 보고도 귀찮다고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빼기 때문이다. 아깝다고 조금 싱싱하지 않은 껍질이나 과육까지 넣지 않고 그것들은 과감하게 버리고, 애초에 최대한 괜찮은 레몬을 가지고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레몬차를 마시면서 일기를 남기는 지금 순간이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져서 하는 소리다.

뜬금없지만 만약 누군가가 내 글을 해석하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레몬차를 마시고 있는 걸 밝히지 않았다면 해석자는 내가 레몬청 이야기로 오늘의 일기를 시작한 것에 많은 의미 부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카프카 글도 그렇게 해석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하루 있었던 일들에 대한 느낌과 감정,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게 사회적으로 불가능해서 적당한 이야기로 바꿔서 말한 것일 수도 있고 잠을 설치는 새벽에 두 번, 세 번으로 나누어 꾼 꿈들을 적당히 살을 붙여 이야기로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최초의 목소리(알베르 카뮈의 샤라웃)가 있었고 거기에 이어서 해석에 해석이 이어지고 학자들의 카프카 놀이가 생겼다. 무리가 생기고 군중이 생기고 프란츠 카프카는 하나의 무언가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카프카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기에는 그런 일이나, 사람들의 그런 본성에 대해서 카프카는 분명 어떤 본능적인 거부감이나 이상함, 두려움을 느끼곤 하던 사람이다. 여러 가지 단편 작품 속에서 전반적으로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었고 특히 「시골 학교 선생」,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쥐의 종족같은 이야기에서 강한 느낌을 받았다.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설득력도 없고 전달될 수도 없다. 하지만 카프카 본인도 "느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카프카를 읽고 받은 내 느낌을 이렇게 마음껏 떠들 수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더 뜬금없지만, 나는 인류가 '진화'라는 것을 하게 된다면 그건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순간에서 올 거라고 생각한다.


1년에 한 번씩 스키장 모임이 있는데 이번 금요일과 토요일에 1박 2일로 다녀왔다. 2023년에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지원 사업에서 알게 된 청년들 중 스키장 가는 것에 흥미가 있는 청년들 몇이 모여 2024년부터 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올해로 세 번째인 것이었고, 작년과 재작년엔 당일치기로 다녀왔었다.

올해 처음으로 비발디파크가 아닌 엘리시안을 갔다. ITX를 타고 짧은 기차 여행으로 일정을 시작해, 백양리역에서 내려서 리조트까지 산책을 했다. 두툼하게 채워진 가방을 가지고 타는 기차와, 보온병에 담아 온 드립 커피, 삶은 계란, 쿠키, 과일, 다른 청년분이 준비해 주신 김밥을 먹으면서 창밖으로 북한강을 보는 일, 그건 아무리 짧더라도 여행이 아닐 수 없었다. 굉장히 즐거웠다. 그리고 백양리역에서 리조트로 가는 도로가 잘 깔린 겨울 산책길에서 나는 문득 내가 겨울보다 다른 계절을 좋아할 수는 없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다.

무엇보다 콧구멍을 통해 두 줄기로 빨려 들어오면서 콧구멍부터 시작해 허파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상쾌한 겨울 공기가 너무 좋다. 내 몸이 공기 중에 놓여져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해주는, 나를 감싸고 있는 기분 좋은 차가움도 좋다. 하얀색도 좋다. 그렇게 무언가의 중독자처럼 연신 양쪽 콧구멍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내가 아무리 여름의 쨍한 색채감에서 아름다움과 감동을 발견하더라도 그 마음이 결코 겨울에 대한 자연스러운 사랑을 넘어설 수는 없다는 걸 속으로 소리 내서 말했다.

보드도 늘 그렇듯 너무 재밌게 탔다. 다들 양껏 지친 몸을 숙소에서 회복하며 처음 보는 모습들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식사도 하고, 게임도 하고, 드라이브도 하고, 카페도 가고, 얼음 썰매도 탔다. 오늘 전부 이야기하지는 못하겠지만 너무 훌륭하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시간은 언제나 잘 가고 특히 즐거운 시간은 고통스러운 시간과 다르게, 있었던 줄도 모를 만큼 꿈처럼 아득해지기 쉬운 것 같다. 오늘은 그냥, 이 추억이 더 멀리 더 아래로 사라지고 가라앉기 전에 재빨리 메모를 남긴다고만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