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 우연성

#고생하셨습니다.

by 온호

수료

내일이 기술교육원 수료식인데 나는 내일 아침에 기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는 입장이라 동기분들과 미리 인사를 나누었다. 5개월 정도 동안 정말 많은 분들께 도움을 받았고, 도배 시험 재도전을 위해 이번 주에 복습을 하는 동안에도 한 분에게는 큰 도움을 받았다. 내 첫 짝꿍이었던 그 분이다. 본인은 시험을 안 보시는데도 나와서 같이 재료를 준비해주시고 코칭도 해주시고 청소도 도와주셨다. 존경심이 절로 이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감사겸 마지막 인사겸 겸사겸사 오늘은 전에 만들어 둔 민트레몬청을 통째로 가방에 챙기고 얼음컵과 탄산수를 사서 잔뜩 들고 등원했다. 동기분들에게 시럽이 잘 섞이게 저어서 한 잔씩 나눠드렸는데 드셔보시더니 "맛있다"고 하셨다. 다들 연거푸 다시 드시는 걸 보니 빈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서 기뻤다. 나는 만들 때도, 마실 때도 너무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레모네이드를 만인과 나누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수료할 때 쯤 동기분들에게도 맛 보여 드리는 상상을 줄곧 해왔었는데, 그 욕구가 오늘 드디어 충족되어 즐겁고 흐뭇했다.

제한된 지원금이라든지, 이전 수강생들에게 당한 안 좋은 경험이라든지 하는 외부적 요인도 있겠지만 본인의 기질도 영향을 줬을 게 분명한 마이크로 매니저 선생님과도 마지막에는 훈훈했다. 내 시험 재도전이 결정된 이후에, 수료 전 마지막 며칠동안은 실제 시험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과정을 연습했다. 마이크로 매니저 선생님은 한 바퀴를 마친 나에게 "잘하셨어요"하면서 격려의 말을 해주시면서 웃었는데, 그 표정은 가짜가 아니었다. 그전까지는 말씀하시는 것과 실제 보이시는 태도가 너무 상반되고, 웃을 때도 우리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교수님이 무사히 또 하나의 기수를 흘려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웃는 것 같아 보였다.

말과 실제 태도가 극명하게 달랐던 예를 들어보자면 말로는 "각자에게 편한 방법으로 하시라"고 하시면서 실제로는 그런 꼴을 보면 절대로 못 지나치고, 학생이 자기 연습을 못 할 정도로 교수님의 방식을 반복적으로 너무 오래 설명하시는 경우가 있겠다. 또, "선생님들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학생들이 질문이나 자기 생각에 대한 무슨 설명이라도 해볼라치면 아무 말도 못하게 자꾸 말을 차단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있었다. 참 힘들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놀라운 건 무언가 끝마칠 때가 되면 그래도 우리가 결국은 다 그동안 수고한 자기자신을 격려하고, 그 마음을 나와 함께한 남들에게까지도 나눠서 서로의 존재를 응원하게 되는 부분인 것 같다. 그동안 그 강사님을 미워한 것이 후회가 됐다. 그 분이 그렇게 하는 것이 뭔가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는 방식이라는 걸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렇게까지 마음속으로 수없이 깔보고 비난하고, 숨기기를 포기한 태도로 드러내기까지 했어야 했나.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지나고 보면, 사람이나 가족을 미워한 일들은 잘만 떠올라 후회를 하게 되고, 사람이나 가족을 사랑한 일은 후회는 커녕 잘 떠오르지도 않아 후회 해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랑하는 게 결국 맞다는 것을 이번에 또 확인하게 됐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했고, 작은 것도 큰 것도 많이 배웠다. 수고했다.


우연성

우연이나 필연이라는 구분이 있을까. 모든 우연도 필연 아닐까 하는 거다.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도 비슷하다. "운명을 믿으세요?"라고 한다면 "네"다. "사람의 힘으로 운명에서 벗어나고 개척할 수 있나요?" 사람이 선택을 해서 운명을 개척했다면 가지 않은 운명 길은 애초부터 없던 것과 마찬가지가 되고 지나온 그 한 길만이 남는데 그게 결국 운명이 아닌가. 마차 안 비켜준다고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를 죽인 그런 이야기가 말하는 '운명'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도 있지만.

플라베도와 알베도라는 단어를 배운 바로 다음 날, 평소 팔로우하던 요리연구가가 그 단어가 들어간 게시물을 올린 걸 보게 되는 일도 아주 흔해빠진 우연이다. 그런 일이 차고 넘친다.

오늘은 까먹지 않고 따릉이 대여소에서 따릉이 잠금장치를 분명히 내리고 귀가를 마무리 했다. 집 근처 길가에 이틀짼지 3일짼지 쪼그리고 앉아있는 노인이 여전히 있었다. 여러가지 갈등을 하다 지나쳤다. 신고를 할까 말이라도 걸어볼까. 누가 이미 경찰서에 신고라도 했겠지. 레몬청이 아주 조금 남았으니 레몬차를 타다 갖다 드릴까. 노인이 밖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도 갈등을 했었다. 그게 오늘 아침이었는지 어제 아침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노인을 지나칠 때 성동구민을 찾아달라는 알림을 받았는데 '설마 여기까지 온 건 아니겠지?'하며 메시지에 묘사된 인상착의와 비교를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나쳤었다.

방에 들어와서 요의를 해결하고, 가방을 풀어 정리하고, 옷을 훌렁 벗어 세탁기에 넣고, 물을 마셨다. 그러고 있으니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 "[Web발신] <따릉이> 반납시간이 10분 남았습니다." 잠금장치를 분명히 내리긴 했지만 반납메시지가 도착하는 것은 확인하지 않았다는 후회를 했다. 짜증도 조금 나고 귀찮았지만 얼른 아무 바지를 입고 위에는 맨 살에 경량패딩을 바로 입었다. 그리고 내려가면서 결심을 했다.

노인을 지나치고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 따릉이 대여소에 도착했다. 내가 세워둔 자전거를 보니 잠금장치가 아주 조금 덜 내려가 있었다. 꾸욱 눌러서 완전히 내려가게 만든 후 반납메시지가 도착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다시 횡단보도를 건넜다.

마지막으로 노인을 한 번 더 지나쳤다. 그리고 112에 전화를 해서 "129에 전화를 했는데 112로 하시라는 안내를 받았다"는 말과 함께 상황과 장소를 말했다. 전화를 받으시는 분이 장소를 잘 모르시는듯 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야했다. 나를 비롯해서, 노인이 앉아있는 길을 지날 때마다 본 다른 사람들도 노인을 한번 힐긋하는 것 외에는 딱히 큰 관심을 보이는 기색이 없었지만 정말로 아무도 신고를 하지는 않았던 걸까.

따릉이 잠금장치 내리는 것을 까먹은 적은 있어도 내렸는데도 덜 내려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우연 때문에 한 번 더 집 밖으로 나와야 했고, 한 번 더 양심의 불편함을 느끼게 되느니 신고를 하자 결심을 하게 됐다. 분명 반납하고 왔는데 따릉이를 반납해달라는 말도 안되는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이미 그 모든 상황이 노인의 문제에서 도망치지 않게 해주는 필연적인 우연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