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뇽이 Mar 17. 2024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주말

 금요일부터 시작된 주말의 마지막에 와있다. 독서도 강의 복습도 과제도 하지 않고 주말 여가시간에 글만 쓰고 있어서 '이것도 일종의 도피인가?' 싶은데, 그것들은 아직 기한이 남았으니까 상관없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나의 세상 항해 일지를 남기지 않고 지내면 자꾸만 일상 속에서 의식이 여기(브런치)로 빠지기 때문에 글감을 머릿속에서 좀 덜어내는 게 학업에도 도움이 된다.


  모임

 금요일에는 수유역에서 청년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이제는 굳이 '자조'를 안 붙여도 되겠지.) 한 주 동안 모임을 기다리면서 힘든 일상을 설렘과 즐거움으로 버틴 내 마음을 사람들이 알까? 그들도 나랑 비슷하다면 아마 알겠지.


 모임은 여러모로 호스트의 당초 계획과 다르게 진행됐는데 결과적으로 괜찮지 않았나 생각한다. 인생이라는 게 계획이 있나? 모임도 계획과는 달라졌지만 그날의 하루는 원래부터 그렇게 생겼던 것이리라. 마치 내 인생이 원래부터 이렇게 짜인 것처럼.


 늦은 오후에 만나 저녁 식사를 우발적으로 포케로 하게 됐다. 8일 금요일에 어떤 계기로 포케를 떠올리면서 '포케라는 메뉴는 정말 무난해서 모임에서 호불호 없이 먹기 좋은 메뉴일 수 있겠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15일 금요일에 규츠의 대안 메뉴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갑자기 생각나서 유용하게 써먹었다.


 이번 모임에서는 처음으로 한 살 누나인 청년과 말을 놓았다. 당일 오전에 들었던 <리더십 개발> 수업에서 교수님이 본인을 "제리"라고 부르라며 언어가 바뀌면 관계도 바뀌는 것 같다는 말에 나도 한 번 그래봤다. 둘 다 장기간의 고립은둔 경력자여서 이미 공감대는 두텁게 있었는데 말을 놓으니 실제로 더 가깝게 느껴졌다. 청년 공간에서 많은 청년들을 만났지만 동병상련보다 예의를 좀 덜 차려도 되는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두 명이 있었는데, 이 분이 그중에 한 명이었다. 다른 청년들과도 관계의 변화를 위해 언어의 관계도 바꿔보는 일들이 시간이 더 지나면 자연스레 생기지 않을까.


 밥을 먹고 카페로 이동해 꽤 오랫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좋은 소식도, 걱정되는 소식도 있었다. 좋은 소식은 나누는 사람도 기쁘고 듣는 사람도 기쁘다. 걱정되는 소식을 나누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위로를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모임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감사하다.


 이번 글의 커버 이미지는 판다의 순혈 팬인 청년 소유의 인형으로 카페에서 찍은 연출샷이다. 몇 번 이야기를 들었던 바로는 판다 팬카페 초창기 멤버였으니 푸바오 유행으로 인한 유입팬이 아니라 완전 성골이신 것 같다. 본인의 취미나 관심사로 다른 청년들에게 즐거운 분위기나 활력을 선사한다는 게 참 멋있는 일인 것 같다.

그건 그거고 아무리 판다를 들이밀어도 내 최애 짐승은 8살 때부터 치타와 늑대다. 판다라면 랫서 판다가 좀 더 좋고.


 카페에서 나와서 편의점에서 간단히 각자 취향껏 식음료를 골라 우이천에서 소소한 3차를 가졌다. 나는 별빛청하 오리지널을 골랐다. 별빛청하는 대체로 달달한 화이트와인 맛이 나다가 주로 끝 맛에서 가끔씩 소주 알코올 맛이 빼꼼거리는 7도짜리 술이다. 식당에서 한 병에 5천 원~ 6천 원, 편의점에서 2천 원 후반대, 대형마트에서 2천 원 초반대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같은 상품. 주류가 다 그렇긴 하겠지만.  


 소주파 청년이 참이슬 오리지널, 소위 빨뚜를 사 와서 소주파 셋이서 나눠 먹었다. 소주병을 들고 해맑게 웃으면서 걸어오는 모습이 왜 그렇게 기분 좋아 보이던지. 그분도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술을 마실 수 있어서 행복한 거였겠지. 그러다 그만 애정이 넘쳐 내 잔에 인피니티풀마냥 술을 따라주셨지만. 그 바람에 무심결에 넘치려는 맥주 거품을 흡입하듯 본능적으로 첫 잔을 들이켜버렸다. 짠하려고 다시 잔을 채우고 연달아 두 잔을 마셨더니 취기가 금세 올라왔다. 헤헤 바본가.


 막차 시간이 다 되어 다들 버스나 지하철로 귀가했다. 환승역에서 헤어질 때 그 아쉬움 감정과 이어진 느낌이 참 좋다.


"다음?",


'다음은 언제가 될까.'




  입주 도우미 소질이 있습니다

 어떻게 봐도 글이 끝나는 분위기였지만 사실 내 주말은 이제 시작이다. 청년들과 환승역에서 헤어져서 그대로 부개역으로 향한다. 모임에 나올 때부터 이미 가방엔 2박 채비가 되어 있었다. 프리랜서로 일본어 동시통역일을 하는 둘째 누나의 육아 공백을 메꾸기 위한 출동이다. 여기 조카는 만 2살. 굉장히 수월하게 볼 수 있는 나이어서 다행이다.


 둘째 누나는 여자 형제 중에서 얼굴도 입맛도 나와 가장 많이 닮았고, 가장 많이 싸웠고, 여자의 육신은 너무나 쉽게 상처입을 수 있다는 공포를 알게 해 준 누나다. 내가 때린 적이 있다는 이야기다. 로우킥..


 어릴 땐 말로 상처도 많이 줬었는데 지금은 서로 행복을 준다. 누나가 고맙다고 하면 나는 도움줄 수 있어서 나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있으면 애기 상태도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부부 관계도 일시적으로 좋아지고, 안심하고 밖에서 일을 할 수 있으니 통역도 더 잘 된다고 말을 하는데 사실이라고 믿으면 굉장히 보람 있다. 지구상의 행복의 총량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가족 사랑도 하고.


 나는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조카 밥도 차리고 요령 있게 밥도 많이 먹인다. 스크린 타임 없이도 울지 않고 하루를 보내게 해 준다. 밖에서 같이 타고 뛰면서 놀고, 책을 읽어주고 약 먹이고, 졸려하면 옷 입혀서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나가서 재워서 들어온다. 자고 있으면 설거지나 청소를 해놓고 쉰다. 내 자식은 아니었지만 이미 한 둘 키워봐서 "니가 나보다 잘한다."는 누나의 말도 일정 부분은 사실일 수도 있다.


 이번에도 누나를 보면서 아이들이 그들의 세계관으로 학습한 생존 방식을 아이들의 실제 감정으로 받아들이지만 않아도 육아는 쉬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표현하는 짜증이나 화, 눈물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그러기가 힘든가 보다. 알면서도 매번 속아 주고 쩔쩔맨다. 특히 누나는 유산 경험 이후의 얻은 자식이라 너무 사랑해서 더 애가 닳겠지. 어쩌면 나는 내가 배 아파 낳지 않아서 아기들을 더 잘 돌 볼 수 있나 보다. 모든 엄마 화이팅했으면 좋겠네.


 오늘 오전에 누나 집을 떠날 때 누나가 기숙사 가서 먹으라고 휘낭시에랑 쿠키를 챙겨줬다. 아침에 이미 누나랑 같이 커피 마시면서 많이 먹었지만 파티셰리는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 지금도 책상 위 선물 상자에 든든하게 함께 하고 있다. 내일 아침에 밥 먹고 커피랑 먹어야지.           

   



  계춘할망

 누나 집에서 나와 남산도서관으로 갔다. 2층 문화누리실에서 상영하는 <계춘할망>을 보러. 학기 초에 공부 부담되지 않을 때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참 좋다. 영화도 아름다운 영화였고 역시나 이번 주도 또 울었다. 안 그래도 할머니가 눈물 버튼인데 할머니 손주 사랑 이야기라니. 마지막쯤 보고 있으니 우리 할머니 찾으러 다니던 일, 업고 5층 오르락하던 일, 눈썹 그려주던 일, 씻기고 로션 발라주던 일, 섬망이 심해질 때마다 떼인 돈 받으러 진주에 가겠다는 걸 말리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 속에서 까먹고 있었던 사랑스러운 할머니 모습들이 하나 둘 생각났다. 아흔이 넘어서도 자기는 눈썹이 없다고 "니는 눈썹이 이삐다." 하셨던 소녀 같은 할머니.


혜지와 은주가 "할망, 할망." 한다. 나는 "할무이요, 할무이요." 한다. 할무이요-.




작가의 이전글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