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내가 히키코모리 이긴 한가보다. 세상 물정을 워낙에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내 생각보다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이 굉장히 크고 유명한 것을 뒤늦게 알고서 혹시 누가 알까 봐 신상이 드러난 글을 황급히 발행취소를 했다. 글도 더는 안 쓸 것 같았다.
근데 며칠 전에 은둔청년 지원사업 선정 면담을 다녀와서 지금 그냥 다시 발행을 눌렀다. 뭐, 모르겠다. 확률이야 낮겠지만 내 이야기인걸 알게 되면 알라고 하지 뭐. 왜 생각이 바뀌었냐, 면담을 하면서 들은 말 중에 '내가 나를 인정을 하고 승인을 해줘야 그런 내 모습이 사람들이 받아들일 때도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갖다 버린 10년이 그냥 좀비처럼 육신만 살아있던 무의미한 시간이고 아무것도 얻은 게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선생님은 그 시간이 나한테 필요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해줬다. 그 말을 듣던 순간에 갑자기 눈물이 삐져나와서 민망했지만 내 마음이 따뜻해진 것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선생님이 그냥 으레 자기 역할상 하는 말이고, 진심이 아닐 수도 있고, '그래 당신이 나를 울리는 데 성공했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텐데 요즘은 좋은 말은 그냥 좋게 믿고 듣고 싶은 생각이 더 커졌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 20대를 버린 쪽팔린 나도 받아들이고 혹시나 공개가 돼도 상관없기로 마음먹었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햇빛을 쬐고 건강해지려고 아침에 산책을 하다가 발목을 접질려서 큰맘 먹고 결제한 체육관도 못 가고 있어서 속상했다. 오늘은 아침에 강의를 가다가 비에 젖어 미끄러운 계단에서 뒤로 자빠져서 왼팔은 다 까져버리고 오른팔과 허리 쪽에 타박상을 입었다. 지난주 발목 접질린 것과 오늘 자빠진 일로 병원비나 깨지고 몸은 아파버리니 서글펐다. 이게 차라리 극적인 글을 쓰기 위한 주작이었으면 좋겠다. 악재는 연속으로 오니 어쩌니 하는 말도 딴에는 생각나고, 아침에 계단에서 자빠지고는 '히키코모리 주제에 바깥에서 살아가려고 나대니까 다치기나 하지.' 하는 생각도 순간 들었었다. 근데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머리가 안 깨져서 다행이고 가방 안에 노트북이 안 깨져서 다행이다는 생각을 금방 해냈다. 히키코모리 일 때는 계단에서 구를 일도 발목을 접지를 일도 없지만 행복할 일도 없다는 생각도 금방 해냈다. 전이었으면 절대로 안 좋은 생각만 더 했을 것이다.
나는 좋은 말을 좋게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나쁜 일이 있어도 불행 중 다행인 부분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최악의 경우나 더 불행한 상황과 비교해서 위안을 얻는 건 말이 안 되고, 해서도 안 되는 천박한 자위라고 생각하면서 나 스스로 그런 생각들을 하지 못하도록 했었다. 결과적으로는 지금이 낫다. 나는 좋아지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앞으로 내가 또 어디서 어떻게 꺾일지는. 그래도 지금은 이런 상태 속에 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