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호 May 11. 2024

동대문구 세계 가족 축제

57번째 일기

요즘 불안하고 우울했다. 학교에서 해보라는 심리검사도 해봤더니 지금같을 때엔 만성피로도 올 수 있고 의사였나 병원이었나 하여튼 가보는게 좋다라는 결과가 나왔다. 요즘 일찍, 많이 자려고 하긴 했다. 어제도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서 최소한의 루틴(스픽 하루치)만 하고 8시 넘어서 자버렸다. 오늘 아침도 일정한 시간에 눈이 떠졌지만 침대에서 오기로 버텨서 6시 넘어서 일어났다.


목요일에 막걸리를 제법 많이 마시고 새벽 2시 다 되갈 때쯤 잤을 때도 다음날 6시 전에 눈 떠져서 진짜 짜증났었다. 뭐? 목표 시간 언저리로 저절로 깨는 몸이 신기해? 내가 썼던 말이 나를 놀리는 것 같다. 일어나니까 해야하는 것들 중에 하기 어려운 것들이 생각나면서 불안해졌다. 산책하러 나가면 된다는 걸 알지만 그러기엔 보드타다가 충격입은 내 왼쪽 발목이 아직 충분한 회복을 하지 못했다. 건강이 중요하긴 하다. 몸이 안 좋으니 마음을 좋게해줄 산책도 하기 싫어져버린다.

      



오늘은 일어나서 샤워부터 하고(그래야 남는 빨래가 안 생기니까) 기숙사 세탁실 5번 세탁기에 빨래를 돌렸다. 빨래망에 빨래를 담아 산타글로스처럼 뒤로 들쳐메고 세탁실로 간다. 드럼세탁기 구멍에 대고 빨래망을 위로 껍질 벗기듯이 벗기면서 빨래를 밀어내 쏙 빼서 쑥 넣었다. meta 앱으로 빠른응답부호를 인식해 세탁기를 활성화시킨다. 세탁기로 세탁 모드를 선택하고 동작버튼을 누른 후 핸드폰으로 금액확인하기를 누른다. 그제서야 겨우 세탁기가 돌아간다. 귀찮다.

meta앱에 돈을 충전해서 결제하는 것도 귀찮고 수수료도 떼가서 싫다. 그냥 차라리 현금 넣고 쓰는 세탁기가 훨씬 편하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마케팅전략 발표 스크립트를 일부 만들었다.


마케팅 전략 조원들한테 저번 학기에 마케팅원론 과목에서 발표했던 쿠팡 PPT를 참고용으로 보여줬더니 그냥 이거 그대로 재탕하면 안되냐고 하길래 나는 그러기 싫은 마음이 더 컸는데도 분위기상 그렇게 돼버렸다.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과제 부담을 줄이고 싶은 마음은 나한테도 있었고. 그래도 새로운 주제로 새로운 기업을 알아보면 조사할 때 스트레스 많이 받긴해도 공부가 많이 되던데 그 기회를 잃어서 아쉬웠다. 양심도 불편했고.


하고 싶은 말은, 그래서 조원 다섯 명 중 세 명의 조원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관련해서 자료조사를 추가로 하고, ppt를 최신화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2주가 지난 후 전체 80장의 슬라이드로 이루어진 ppt가 네 장 바껴서 왔다. 그 네 장도 찔끔찔끔 일부만. 똑같은 슬라이드가 있지를 않나 마켓컬리와 테무의 장점에 똑같은 내용이 들어가있지를 않나. 이 씨발새끼들 진짜? 언제나 한발 빠른 나의 이드(id)님께서 욕지거리를 시원하게 입으로 내려주셨다. 나의 멍청한 슈퍼에고는 또 뒤늦게 "할 수 있으니까 한다."는 신은희 교수님의 말을 떠올리며 "그래, 할 수 있으니까 하자." 고 생각했다. 팔정도의 정어와 정사를 지키지 못한 것 같아요 부처님 죄송해요!!


걔네들은 파일을 그 상태로 보내놓고 목요일 강의 안 나온 것도 진짜 괘씸함 화룡점정이었다. 목요일만 안 보면 화요일이 발표거든. 양심없는 새끼들.. 발표도 하기 싫어해서 내가 한다 했드만. 그래도 뭐 또 내 욕심은 있으니까 적당히 추가할 부분, 수정할 부분 조사해서 채워넣고 그랬다.


하지만 늘 그렇듯 찾아보면 희망도 함께 있는 것인지, 발표 담당인 나머지 조원이 발표 분량을 자기가 더 많이 가져갔다. 완성 ppt를 제공한 나를 배려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감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조원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발표 대본쓰기를 하고 빨래는 건조기도 끝나서 개어놓고 하다보니 슬슬 나가야 할 시간이 다 되었다.

용두근린공원에서 하는 동대문구 가족축제에 가는 날이었다. 베이킹 동아리의 꿈을 품고 시작한 동대문구 1인가구 동아리 지원 사업 참여로 연을 맺은 1인가구 지원팀에서 축제 홍보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 4월 말쯤이었는데 그 때 사전 신청을 했다. 다양한 국가의 음식 부스가 있다는 말에 끌렸다. 청년분들 있는 동아리 단톡방에 말했더니 두 분이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축제 장소는 어제 민방위 교육받은 구청 바로 앞이었다. 그것도 신기했고 그걸 모르고 있었던 나도 신기했다. 기숙사에서 출발할 때와 이동 중까지만 해도 축제 가도 재밌게 못 놀고 가슴 한 켠에 불안한 마음 달고 놀겠지 싶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그 두 명을 만나러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신나면서 기분 좋아졌다.

 도착해서 사전 접수 줄에 서있는데 한복을 입은 분 바로 뒤에 서게 됐다. 전통 의상을 입고 오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길래 나도 얼마 전 템플스테이 뽕맛으로 산 개량한복을 입고 갔는데 이야 찐또배기를 만났다. 존경스러웠다.

전통의상 입은 사람에게 주는 기념품(선착순) 귀엽다, 예쁘다.


그리고 줄 서면서 1인 가구 지원팀 선생님을 뵀다. 여기서도 진행요원으로 일하고 계셨다. 몇 번 본 적 없는데 이 때 인사하고 서로 대하는 분위기가 친근해서 신기했다.


청년분들이랑 합류해서 경품 추첨 행사도 구경하고(전원 꽝) 부스별로 다니면서 관심있는 음식을 먹었다.

퍼레이드팀이 지나가면서 나눠준 국기. 나는 통가 국기를 받았다.  

 

축제의 시작을 알린 공연팀.

  


여기는 내가 느끼기에 흡사 천국이었다. 제일 처음 몽골 음식-호쇼르를 먹었다. 축제 음식은 가성비 극악이라는 암묵적 기억때문이었는지 기대를 낮게 하고 있었는데 맛있어서 좀 놀라고 기분이 좋아졌다. 납작만두 피에 소고기가 푸짐하게 들어간 버전같았다. 소고기가 간도 좋고 맛있었다. 캄보디아 음식-눔삐이도 지나가면서 하나 샀다. 녹두반죽 빵. 이건 축제에서 먹은 음식 중 유일하게 맛이 없었다. 멕시코 부스에서는 타코랑 카를로타, 오르차타를 샀다. 타코도 맛있고 카를로타는 달달한 케이크에 레몬슬라이스가 많이 올려져 있어서 너무 내 취향이었다. 오르차타는 어메이징오트 언스위트에 수정과 섞은 맛 같았다. 아니다. 수정과에 어메이징 오트를 때려부은 맛. 수정과는 좋아하지만 음료는 밍밍한 것보다 진하게 먹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내 취향은 아니었다.

  

청년분이 나눠줘서 팟타이도 맛은 봤다. 태국 부스 분이 엄청 예쁘게 웃으시면서 "팟타이 드셔보세요." 하고 상냥하게 호객을 하셨는데 그 바람에 팟타이는 취향이 아닌데도 살 뻔했다. 러시아 음식은 저번에 먹어서 건너뛰었다. 러시아 부스 사진을 찍는데 안에 계신 분이 카메라를 보고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셨다. 나도 모르게 미러링인지 손인사가 나와버렸다. 우즈베키스탄 부스에서 닭고기 샤슬릭도 먹었다. 직화 닭꼬치. 양고기 샤슬릭 먹은지 얼마 안됐으니까.


쓰면서 보니 완전 낯선 것보다는 비슷한 것 위주로 먹었단 걸 알게 됐다. 많이 먹는다고 먹었는데 못 먹어본 게 너무 많아서 아쉽다. 1년에 한번 밖에 안하나? 못 먹어본건 방학 때 찾아서 먹으러 다녀볼까 싶다.


일본 놀이 "다루마오토시" 체험

먹을 거 먹고 체험 부스를 돌아다녔다. 아쉽게도 대기가 다들 너무 길어서 못하고 다루마오토시만 대기없이 할 수 있어서 해봤다. 앞에서 다들 풀스윙으로 쳐서 실패하길래 나는 끊어쳐봤으나 그래도 실패. 더 밑에 거부터 쳐야 되는 거였을까?


용두 공원에서 나와서 경동시장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어제 혼자 갔던 길 그대로 갔다. 경동시장 안 가본 청년분도 있어서 좋았고, 혼자 갈 때와는 다르게 이 곳의 재개발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분이 계셔서 좋았다.

시장 구경하면서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을 갔다. 자리가 없었다. 자리가 나도, 자리가 나는 족족 옆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이 바로바로 들어가다보니 자리가 없었다. 그런데 가만보니 4명 분의 자리에 2명+ 2가방 조합이 많이 보였다. 고민하다가 가서 물어봤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혹시 여기 자리가 있는 걸까요?"

이런 경우엔 실제로 화장실이나 주차 문제로 자리를 비운 일행이 있을 때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각자 가방을 가져가셨다. 주변에서 자리를 찾아 헤매는 많은 사람들과 서서 눈치만 보고 있는 사람들, 자리가 없어 매장을 나가는 사람들보다 가방이 앉을 자리가 중요하셨나 보다. 인간 혐오가 도진다.


한 분은 청년몰에서 해장라면을 드시고 둘이서 마실 거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며 좀 쉬었다. 그리고 나왔더니 비가 오기 시작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시장에서 헤어졌다. 두 분은 청량리역으로 나는 반대편 버스정류장으로.기숙사로 돌아와서 마케팅전략 발표 대본을 마무리했다. 불교와 정신분석학 내용이 너무 많아 기말고사 공부를 미리 조금 했다. 하루치 강의 분량.


룸메는 리그오브레전드 msi 경기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육성으로 연발한다. 나는 밖에 비가 오는데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 끼고 빗소리 백색소음을 듣는다. 이게 뭔. 그러고보면 나도 집에 있을 때는 대회보는 거 좋아했는데 오늘 자기 전에 경기 영상 좀 보다잘까 어쩔까.    


요즘 맞춤법 검사도 안 하고 발행을 누르는 것도 벌써 이게 3번째 글인가

  



작가의 이전글 히키코모리 탈출은 쉽지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