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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Oct 13. 2023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심리학을 조금 배웠다면 도움이 됐을까?

 요즘 10년 만에 학교를 다니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강의들에서 심리학과 연관된 부분을 많이 배운다. 심리학이 워낙 광범위하니 무슨 강의를 들었어도 관련된 부분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마케팅, 조직행동론에서는 인지와 지각, 의사결정 같은 부분이 많이 겹쳤고 편견이나 오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나는 어제 배운 걸 하루 만에 적용해서 의사결정을 할 기회가 생겼다. 

 

 뭐였냐면, 의사결정 과정에서 흔히 겪는 편견과 오류들 몇 가지 중에서 위험 회피 항목에 관한 배움을 써먹은 것이다. 이번 주 수요일 강의에서 교수님 강의 ppt에는 위험 회피에 대한 설명 중에 '스트레스받을 때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더 위험을 추구하고, 긍정적인 결과에 대해 더 위험을 회피한다.'는 말이 있었다. 중간고사도 얼마 안 남았겠다 기숙사에서 복습을 하면서 저 설명을 봤더니 다소 번역투로 돼있어서 그런지 말 자체가 어려운 건지 내가 멍청한 건지 이해가 곧바로 되질 않았다. 그래서 챗봇한테 물어봤다.


"의사결정에 오류를 범하게 되는 요인 중에 위험회피가 있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더 위험을 추구하고, 긍정적인 결과에 대해 더 위험을 회피한다.' 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어떤 상황을 말하는 건지 알려줘."


... 

     ... 


 "예를 들어, 직장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경우, 프로젝트가 실패할 가능성에 대해 더 크게 걱정하게 됩니다. 이 경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거나, 더 위험한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더라도,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감이 높아지면 성공을 위해 필요한 모험이나 도전을 하지 않고, 안전한 선택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설명이 참 친절하다. 그리고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답변을 들었던 다음날 목요일 아침, 바로 어제 실전 상황을 마주쳤다. 학교 도서관 행사의 일환으로 열람실 이용 학생 대상으로 선착순 500명에게 쿠키를 준다는 알림을 받은 것이었다. 쿠키는 너무 맛있어 보였고 시간은 40분 정도가 지난 상태였다. 히키코모리에게는 보통 밖으로 나가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아니겠는가. 외모가 맘에 안 든다든지, 옷이 맘에 안 든다든지, 공짜 쿠키 때문에 그런다는 게 거지 같아 보인다든지.  뭐가 됐든 전제는 갖춰졌다. 나는 방 안에서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51대 49 라도 마음이 더 기우는 쪽이 있으면 하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나가는 나'가 되기 위해서 나가기 싫은 마음을 누르고 방을 나섰다.


 그러다가 기숙사 1층 로비까지 내려가서 내가 한 생각

  1. 40분이나 지났는데 지금 가면 안 남아있을 거 같다 그냥 가지 말자.

  2. 로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추레하다. 안경 끼면 너무 못 생겼어.


 문으로 갈까, 다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갈까 1층 홀에서 앞 뒤로 갈팡질팡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글쓰기를 위한 과장이나 연출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웃기다. 

 

 그리고 이제 여기가 배운 걸 써먹은 순간이다. 나는 내가 지금 부정적인 가능성을 추구하고 긍정적인 상황에 대한 가능성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서서 생각했다. 이것도 역시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거기서 가만히 서서 잠깐 생각을 했다. 

 

 1. 오전 10시 10분이면 1교시(9:00~10:15)가 아직 끝나기 전이어서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온 녀석들은 아직 도서관에 갈 수 없다.

 2. 행사가 9시 30분부터였으니 2교시부터의 오늘 강의를 들으러 미리 등교한 학생들이나 행사를 위해 일찍 등교해서 도서관에 있을 학생들은 40분 사이에 500명이나 되지는 않을 것이다.

 3. 주된 경쟁자는 학교 근처 주거하는 학생들과 기숙사생들이고 그 녀석들도 나랑 마찬가지로 쿠키를 받으러 가지 않는다는 안전한 선택을 하면서 위험회피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4. 어쩌면 나만큼 쿠키가 별로 먹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쿠키라는 것 자체가 충분한 동인이 되지 않을 수도.


 의사 결정 수정을 했다. 밑에는 이상한 운동복 반바지에 위에는 고급진 카디건을 이상하게 입고 두꺼운 안경을 낀 채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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