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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금학기 성적 조회'

아침 먹기 전 운동에 시달리다가

by 온호

오늘의 소제목은 '아침 먹기 전 불안에 시달리다가' 라는 내 첫 번째 글에서 따와봤다. 그때와 마음이 많이 달라진 것이 느껴져서다. 이따금 내 지난 글들을 다시 읽어보는데, 그러면 당시에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와 얼마나 힘들었었는지가 기억이 나면서 새삼 지금의 내 상황이나 마음 상태가 놀랍게 느껴진다.


요즘 아침은 불안이 아니라 운동에 시달리는데, 사실 대구를 맞추기 위해 시달린다고 표현했지만 운동을 하고 나면 하루를 잘 연 느낌이 나고 몸과 마음이 상쾌하고 뿌듯해서 좋다. 오늘 아침 운동 후 글을 조금이라도 써놓을까 싶어 노트북을 펼치는 내 모습은 10개월 전쯤 불안에 시달리던 상태에서 살기 위해 노트북을 펼치던 나와 정말 많이 다르다. 그런 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 모든 것(살아있음)이 거짓말 같다.



7월 2일 화요일부터 이번 학기 성적 공시 기간이 시작이라 성적을 확인해 봤다. 그 결과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는 성적, 올 A+을 받았다. 기대를 안 했던 몇 개의 과목에서도 뜻밖에 좋은 성적이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해냈다.'는 성취감도 들었다. '두 번째는 다르다.'는 것이 또 한 번 드러났고,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뭐든 한 번 경험하고 연습 과정을 거치면 곧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효능감을 가질 수 있었다. 사소한 성공으로부터 효능감을 가지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시작이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고 살고 있는 순간이다. "죽었다가 살아난 기분으로 두 번째 인생을 열심히 살아보고 있습니다."라는 내 말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로도 이번의 평균 4.3점은 유용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긍정적으로 해보는 생각이고(성적을 보고 기분이 좋았던 것은 거짓이 없다) , 다음은 내가 가지는 솔직한 생각이다.

1. 중국인 유학생들이 깔아주잖아.

2. 한국인 애들도 공부하는 애들은 별로 없는 거 같은데.

3. 어떤 과목들은 시험 수준 저질.

4. 코로나 수혜로 상대평가 45% 까지가 A-인데.

5. 내가 뭐 연애를 하나, 선후배동기들이랑 동아리 활동을 하나


기본적으로 강의시간에 강의를 듣는 학생이 많지 않다. 사실 거의 없다. 제일 앞 한두 줄에 앉은 몇 명 빼고는 상당수가 패드나 랩탑으로 자기 할 일 하거나 카톡을 하거나 인스타를 보거나 한다. 앞에서 말을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는 찾기가 쉽지 않은 미덕이다.

'이런 애들이랑 경쟁하는데 성적을 못 받아도 문제다.'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은 동굴벽화나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바빌로니아 점토판, 헤시오도스의 책과 소크라테스의 말 같은 것들처럼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 류의 아랫 세대를 폄하하는 윗 세대 편견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지금 이 말을 하고 싶다. 애들이 공부를 안 한다 진짜로..

공부뿐만 아니라 과제 제출이나 강의 일정, 학사 일정 등 교수님이 강의시간에 일러주거나 학교 메신저로 전달이 된 내용들도 잘 모르고 물어보고 그런다.


내 자존감의 문제로 내 성취를 깎아내리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넌 진짜 치열한 경쟁을 한 것도 아니야.'라는 생각에서. 하지만 분명히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강의 시대 이후의 학점 인플레는 분명 있는 팩트다. 이것들이 전부 '겸손해야 된다.'는 구실에서 찾은 이유들일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지만 대학 교육도 기로에 서있는 시점은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기지개센터에서 테라리움을 만들었다. 원예활동이 끝나고 작년 사업 막바지에 알게 돼 가끔 모임을 통해 교류하고 있는 청년 분과 막걸리&파전을 먹으러 갔다. "비 오는 날에는 막걸리에 파전이지."라는 것에 공감을 안 하기 때문에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는데 청년분이 막걸리가 드시고 싶다 하여 전집을 검색했다. 덕분에 '비 오는 날 막걸리 파전'이라는 인생 콘텐츠도 누려보아서 즐겁고 행복했다.

기분 좀 내게 사장님께 항아리도 하나 달라고 해서 담아 먹었다.

막걸리 제조날에 가까울수록 맛이 더 맛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셔서 '막걸리 살 일 있으면 눈여겨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모임에서는 항상 본인 이야기를 내세우기보다는 늘 사람들(특히 나 같은 수다쟁이) 이야기를 들어주기 바쁘셨던 분이셔서 이번에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처음으로 이 분 속마음도 조금 듣게 되었다. 안 그럴 것 같아도 참 나랑 비슷하기도 하구나 또 한 번 많이 느꼈다. 모임의 대부분 청년들이 공통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니까 비슷한 아픔을 가지게 되었겠지. 자조모임은 확실히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안심이 되는 상대여서 그랬는지 막걸리 6병을 나눠 먹은 후 평생 처음 느끼는 취기 수준에 이르렀다. 가장 많이 흔들거렸다. 나는 인사불성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탁해서 귀가하는 것이나 필름이 끊겨보는 로망이 있는데(평범한 인간에 대한 선망인가 보다.) 이번에 청년분이 식사자리 이후에 내 목적지로 함께 버스 이동을 해주셔서 하나는 어느 정도 이뤘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내 다음 목적지라는 것은 강남 성심병원이었다. 동생이 웃자란 무릎뼈를 잘라내는 수술을 해서 입원을 해있었기 때문이다. 전 날 병문안을 갔다가 이번엔 보호자로 갔다. 선뜻 '내가 갈게.' 해놓고 술이 된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하필 오빠 놈이 인생 한을 푸는 날이었다. 미안하다 동생아.


다행히 자고 일어나니 멀쩡해서 아침부터는 하루종일 자질구레한 병시중을 성심성의껏 들었다. 쉬통을 치워준다든지 식판을 치워준다든지 얼음팩을 갈아준다든지 물을 떠다 준다든지 했다. 휠체어를 타고 바깥공기도 쐬고 오려했지만 생각보다 동생이 아파해서 3분 만에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원무팀을 찾아가서 중간 수납 내역을 끊어오고 머리를 감겨주고 환자복을 받아왔다. 이 모든 것을 최대한 귀찮아하지도, 도울 수 있어 기쁘다는 내색도 하지 않고 그냥 하려고 애를 썼다. 기꺼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는 것처럼. 아프면 마음에도 신경질이 나기 마련이고 좋은 것도 되려 나쁘게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내 얼굴의 작은 표정으로 해석의 여지가 될만한 것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 동생의 심기가 최대한 편안했으면 했다.


그렇게 하루는 유치원 일을 하지 않고 간병 침대에서 보냈다. 아이들 시중드나 동생 시중드나 비슷해서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동생이 나한테 무슨 말을 했을 때 "할머니한테 하던 거에 비하면 쉽다."라고 괜찮다고 했었는데 진심이었다. 할머니 대소변도 치우고 목욕도 시키고 살았는데 젊은 동생 머리감기고 요강 몇 번 비우는 게 대순가. 이것도 두 번째라서 수월했나 보다. 할머니 때는 첫 번째여서 더 힘들고 어려웠겠지.

동생 지인이 병문안 와서 주고 간 것들을 펼쳐놓고 인증용으로 찍어달라 해서 찍었다.


유치원 안 가고 간병 침대에서 돈키호테 2권 읽으면서 나름 쉰다고 쉬었다. 낮잠도 10분 잠깐 자고.

점심은 내 두려움의 대상 중 하나였던 서브웨이에서 해결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안 먹어본 메뉴를 하나씩 먹어봐야지. 길을 지날 때마다 유리창 안에서 모자를 쓰거나 편한 옷을 입고 샌드위치를 베어 무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되고 싶었는데 조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웃기네..



다시 오늘로 돌아와서 아침 9시 30분에 유치원 출근을 해서 6시에 퇴근을 했다. 모르겠다 이제 어느 정도 무념무상이다. 일단 돈을 벌어서 내가 필요한데, 쓰고 싶은데 조금씩 쓸 수 있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일이다. 나쁘지 않다, 좋다.


욕심인 것을 알지만, 괴로운 것이 사라져 얻는 평안도 좋지만 때로는 즐거움과 기쁨을 추가로 얻어 누리는 행복도 가지고 싶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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