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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호 Sep 07. 2023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아침 먹기 전 불안에 시달리다가

 오늘의 시작도 늘 그렇듯 깜깜한 새벽에서 출발했다. 잠의 끝으로 가는 길마저 중도포기한 내 몸뚱이로 핸드폰 시계를 확인한다. 몇 시인지 확인하자 이미 가슴이 답답하다. 다시 눈을 감고 자려고 해 보지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핸드폰을 눌러서 시계를 보는 일만 몇 번 더 반복하게 될 뿐이다.


 그렇게 누워있다 보면 가슴의 답답함은 점점 그 강도가 올라 가슴 전체에 독안개가 스멀스멀 차오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속이 불타 녹으며 쓰리고, 조여지는 느낌. 마음이 불안하다.  


 깜깜한 방 안의 그 무엇보다도 가장 새까만 것만 같은 내 가슴을 공업용 천공기로 뚫어 개운하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쳐본다. 효과는 딱히 없다.


'지금 일어나면 너무 일찍이라 나중에 피곤할 텐데.'   

'그냥 좀 누워있자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영원히 잠들었으면.'


같은 생각이 피어오른다.


 이런 생각들과의 동침이 이제는 너무 힘겹다. 내 침대에서 나가줘. 내 이불을 당겨서 가져가 덮고 자고 있는 불안한 생각들을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한 지난 10년 동안의 잠자리와, 이 똑같은 기상 과정도 이제는 화가 날 정도로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요즘 며칠 동안은 눈이 떠지면 몇 시건 간에 아무 생각 않고 그냥 몸을 일으켜 세운다. 가슴에 구멍을 뚫어주는 것 같은 효과가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일어나서 코를 골며 밤새 깨지 않고 통잠을 자고 있는 룸메를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룸메가 깨지 않게 조용히 옷장 문을 연다. 겉옷을 챙기고 큰누나가 준 텀블러에 담긴 물로 목을 축이고, 형이 사준 운동화를 신고 방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선다. 대학교 캠퍼스는 이른 아침에 제일 한적해서 나를 어떻게 볼지 의식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좋다. 그런 점에 편안함을 느끼는 내가 참 못나 보이면서도 안도감에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산속에 있는 미대를 향해 산책을 시작하자마자 내가 32살에 대학교 2학년인 이상한 아저씨라는 사실이 또 떠올라서 괴로웠다. 두 눈으로 방 밖의 세상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게 되면 항상 이렇게 불쑥 내가 히키코모리라는 사실을 지각하게 된다. 부끄럽고, 숨고 싶어지고, 아니면 그냥 죽고 싶어 진다.


 그래서 그동안은 나오는 일을 없게 만들었다. 그래도 요즘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히키코모리 생활을 청산하고,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아침에 햇볕을 쬐고 걸으면서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산책을 시작했다. 햇수로 딱 10년을 히키코모리였던 나에게는 단순한 산책도 내 지난 10년의 도피와 그 죗값을 내 안으로 초대하는 의식의 역할을 한다.


 그 죗값은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몰랐던 매우 앳된 얼굴의 학생들의 전유 공간에 내가 있다는 위화감, 당혹감이다. 또 다 죗값은 학교에 있었어야 할 나이와 사회로 나갔어야 할 시기를 방 안에서 낸 내 20대의 모습을 마주 보는 형벌다. 그런 고통들을 이제는 피하지 않고 그냥 마주하고 받아들이면서 무감각해지고 싶다. 더 이상 지나간 과거를 보지 않고 지금을 살아내고자 하는 노력, 그것이 나에게는 산책의 의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었다. 어릴 때 벌어놓은 근육과 체력들이 그나마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긴 세월 방치 끝에 그것들은 밑천을 드러내더니 끝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래서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허리도 뻐근하고 숨도 가빠 발걸음이 더뎠다. 나이가 들어 노화가 시작된 육체를 체감할 때쯤에 산속 미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오늘 떠오른 해는 날이 좋아 어제 산책할 때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걸음을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느꼈던 '그냥 그때 학교를 나갈걸, 그 말을 들었을 때라도 복학을 할걸, 이걸 몇 년만 빨리 시작할걸.' 하는 후회들을 씻어내고 싶어서 눈을 찡그리면서도 온몸으로 햇볕을 받았다. 동시에 오랜 칩거 생활로 퀴퀴하게 곰팡이가 핀 것만 같은 내 육체와 정신도 제발 정화됐으면 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극적인 연출이 금세 스스로 민망해져서 관뒀다. 쉬면서 숨을 고른 후 다시 내려와 기숙사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돌아오니 여러 가지 두려움이 다시 찾아온다. 구체적으로는 8년 만에 재입학한 학교에서 강의를 멀쩡히 들을 수 있을까. 조원들이 10학번이랑 같은 그룹이라 망했다고 생각할까, 이 사람은 뭘까 하고 생각할까 같은 두려움. 막연하게는 집 안에서 엄마의 희생으로 누렸던 10년 동안의 편안한 일상과 현상 유지 상태를 뒤로 하고 뒤늦게 홀로서기를 시작한 죄 많고 역겨운, 육체에 비해 미숙한 정신의 인간으로서 마주해야 하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   


 생각하지 말자, 그냥 하자. 글을 쓰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써보라던 셋째 누나의 말을 들어 보자. 지금까지는 '남의 말을 들었다면.' 하는 후회를 해봤으니 지금부터라도 다른 사람이 주는 조언들을 실천해 보자. 그렇게 내 두려움을 잠시라도 잊어보기 위해, 뭐라도 몰두할 것이 필요해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이 글이다. 집에 있는 10년 동안은 그게 게임이었는데.


 글을 쓸 줄도 모르고 책도 몇 권 읽어본 적 없는 무지렁이라 글이 앞뒤도 안 맞고 담긴 내용 자체도 불편하겠지만 그냥 쓰자. 남들이 이런 나를 어떻게 볼지,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지나치게 생각하다 히키코모리가 된 부분도 있었으니 이제는 신경 쓰지 않고 해 보자. 나는 특별하지 않다. 남들은 날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 ''남들은 날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요즘 학교를 다니기 위해 밖으로 나갈 때마다 주문처럼 되뇌는 말인데 이번엔 응용해서 이 글도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이 좀 편하다. 이상하게 지금 기분으로는 앞으로 내 폐인 생활과 히키코모리 탈출기를 적어 보는 게 기대가 되고 약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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