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여는데 오렌지레몬 나무에 꽃이 피어 있었다. 1년에 두세 번 꽃이 핀다고 하더니 벌써 두 번째 꽃이 핀 것이었다. 첫 번째 꽃은 3월 말~4월 초에 피었었다. 오랜만에 반갑게도 꽃이 핀 화분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샤워를 하고 동대문구 가족센터 1인가구 지원사업의 전체 모임에 갔다. 각 동아리별로 지금까지의 활동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나 소감을 공유하고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일하게 참석한 동아리 멤버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어리둥절한 일도 있었다. 1인가구지원팀에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그램의 신청과 선정 과정에 있어서 우선순위 대상(신규참여자, 동대문구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나보고 자기가 들은 것이 있는데- 하면서 "디뇽님은 1순위 아니 0순위예요, 0순위." 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 참여가 불발될 일은 없으니 안심하고 신청하라는 뜻으로 하는 말인 것 같긴 한데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왜냐면 그게 내 소득분위든, 고립은둔청년 경력이든, 아니면 둘 모두이든 그것들을 근거로 하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였다.그리고 나 없는 곳에서 누군가와 그런 대화를 나누었을 거라는 사실이 유쾌하지 않았다. '왜요?'나, '어디서 그런 걸 들으셨어요?'하고 물어봤어도 됐겠지만 나는 그런 질문들을 참았다. 그냥 그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어졌다.
동대문구 1인가구 전체모임은 오후 1시 30분쯤에 끝났다. 나는 저녁에 사촌동생과 식사를 하기로 되어있었고, 두 번 들어갔다 나오기는 싫어서 동대문구 가족센터에서 책을 읽으면서 4시까지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세차게 내리던 비가 멎을 때쯤 신내동으로 출발했다.
'역시 날씨는 나의 편이다. 왜냐면 내가 날씨 편이기 때문이다.'
출발하면서 멋진 말도 한 번 지어봤다. 안 좋은 날씨를 겪을 때 몇 번 날씨 편을 들어주면 날씨도 내가 필요할 때 가끔 내 편을 들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실 이건 날씨로 인해 이득 본 경우와 손해 본 경우를 공평하게 카운팅 하면 확률적으로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당연하게도 비 오는 날보다는 맑은 날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득보다는 손해를 느끼는데 발달한 인간의 감각 때문에 사람들은 날이 좋을 때는 별생각 없이 있다가도 날씨가 궂어지면 지랄발광 호들갑을 떨기가 쉽다. 별로 좋아하는 모습은 아니다.
신내동은 사촌동생과 식사를 하러 가기 전 이모도 한번 뵐 겸 이모댁에 들러서 잠깐 시간을 보내려고 갔다. 내가 집에 있던 오랜 기간 동안 엄마와 통화하시려고 집전화(집 전화로 전화를 많이 거셨다.)로 전화를 하셔서는 내가 받으면 "사랑한다", "보고 싶다", "이모집에 한 번 놀러 오렴." 많이 하셨던 이모다. 수년이 흘러 서울에 올라왔는데 이제서야 그 이모집에 가게 된 것이다.
이모가 주신 돈봉투
엄마가 이모 좋아하는 수육용 고기를 좀 사가라 하셔서 아파트 단지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샀다.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집에 먹을 걸 사서 들어가는 남자 손님이라니. 엘리베이터를 내렸을 땐 이모가 복도에 마중을 나와계셨다. 이모를 안으면서 인사를 나눴다. 내가 원래 안는다는 행위를 잘했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던 세월 중에도 여러 형태의 이별들을 경험하면서 이런 살가운 행동에도 마음이 열린 것 같다. 나는 어느새 조금이지만 그래도 자랐나 보다.
"디뇽이가 우리 집에 오니까 이모가 너무 마음이 편안하다."
누나들 집에 갈 때도 그렇고, 이모도 그렇고, 유치원에서도 그렇고, 심지어 이 날 동대문구 전체모임 때도 그랬고 이런 말을 제법 듣는 것 같다. 어쩌면 나한테 부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모와의 대화가 그렇게 원활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주로 많이 들었다. 이모는 아주 조금 아프다. 사촌동생은 그래서 평생 아팠다. 평생이 외로웠던 사촌동생과 요즘 처음으로 교류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듯 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아프겠지.' 나는 평생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그 꿈은 이미 이루어졌기에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평범하게 고통 속에 사는 것 같기 때문이다.
"느이 엄마가 임신했을 때 돼지갈비를 먹고 싶어 했어."
돈봉투를 건네는 이모가 하신 말씀이었다. 그리고 집에 있을 때랑 내가 딴 사람 같다고 하셔서 민망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딴 사람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눈 뜨면 대체로 '죽고 싶다.'는 생각 위주로 하면서 연명만 하던 사람이 아니니까.
다시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모와 포옹을 하고 사촌동생과 레스토랑으로 갔다. 여러 가지 먹었지만 스테이크가 가장 맛있었다. 사실 난 이번에 메뉴 선택에 실패했다.
음식을 먹을 동안에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잠시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큐텐 사태로 인해 사촌동생이 보게 된 피해라든지, 건강이나 일 같은 것들을 화제로. 옆자리 손님들은 모두 진작에 떠나고 직원분이 자리 정리를 너무 열심히 하셔서 신경이 쓰인 나는 동생에게 우리도 이만 일어나자고 했다.
화장실 가는 길에 있던 고양이가게에서 새끼 고양이 몇 마리가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귀여웠다. 그리고 저 고양이들이 불쌍한 것인지 운 좋은 것인지 잠깐 혼자서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아는 게 없어서 토론을 할 수 없었고, 여동생이 고양이를 "신이 창조한 가장 귀여운 동물"이라고 했었던 것만 생각났다. 생각난 김에 claude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동물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맙소사. 클로드가 개인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가장 귀여운 동물로 레드 판다를 선택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몇 해 전부터 판다의 입지가 굉장히 상승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판다보다는 레서판다가 좀 더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claude 이 녀석 나랑 귀여움 취향이 비슷했던 거야?'
이야기가 많이 샜는데 다시 사촌 동생과의 시간으로 돌아와서, 화장실에 들렀다가 이번엔 북악 스카이웨이로 향했다. 동생은 이곳에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추억이 있고 얼마 전에 오랜만에 이모, 이모부와 함께 왔었다고 한다. 나를 데리고 가주고 싶은 장소이었던 모양이다. 참 고맙게도.
예뻤다. 등산은 아무래도 해가 있을 때 가기 때문에 내려다보는 도시의 모습 속에 불이 예쁘게 켜져 있는 것은 느낌이 또 달랐다. 그리고 팔각정에서 이 산, 저 산을 바라볼 때에 이제는 그곳들이 다 가본 산들이 되었기 때문에 미지가 주는 공포를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그 자리엔 대신 정복감이나 성취감이 들어찼다. 나 잘했다.
팔각정에서 사촌 동생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 인생에 대한 이야기, 고마움에 대한 이야기, 시답잖은 이야기 등등을 나누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7월 28일 일요일
인간관계를 논할 때, "모두에게 좋게 하려다 보면 누구에게도 좋게 안된다."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날은 그 말이 생각나는 날이었다. 나는 모두에게 좋게 하려는 우유부단함이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초등학생 때부터 있었고 그걸 아직도 못 고치고 있고, 이 날은 다시 한번 그런 내 모습을 절감하는 힘든 날이었다.
저번에 아차산에 혼자 갔다가 그곳 풍경이 너무 좋아서 '여기는 사람들과 같이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초록의 풍경이 우리네 상처 많은 마음에 따뜻한 빛으로 분명히 한 번쯤 들 것 같았고, 그렇게 됐으면 바랐다. 그러다 기지개센터 활동 중, 아차산에 흥미를 보였다는 청년을 찾았고 그걸 계기로 자조모임 일정을 구체적으로 계획했다. 문제는 날짜를 정하고 시간을 정하다가 생겼다.
등산의 매력은 산 자체에도 있지만, 아침 햇살 속 다른 등산객들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건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다는 점에도 있다. 마라톤에서 다 함께 달린다는 것이 주는 에너지와 비슷한 느낌이다. 또, 일요일 약속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심적으로 월요일 전투태세를 갖추기 위해 일요일의 전반부에 빨리 끝내주는 것이 낫다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아침 일찍 모이고 싶었는데 오전에 모이는 것에 사람들 반응이 석연찮다고 생각해서 오후 4시로 변경했다.
그런데 오후 4시파였던 청년은 사정상 갑작스레 오지게 못하게 되었고, 아차산에 유일하게 뚜렷한 흥미를 보였던 청년은 오전 등산이 아니게 되자 불참하였다. 이 일이 생각보다 나를 힘들게 했다. 애초에 산에 관심을 보였던 청년에게 시간을 맞추는 게 더 맞았던 것 같은데 한 명이라도 더 같이 하고 싶은 내 욕심이 일을 그르쳤나 싶었다. 결과적으로 둘 다 못 오게 됐으니. 이 일로 공연히 누군가에게 불편감을 줬다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자책도 들면서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나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기분이 좀 우울했다.
다행히 아차산역에서 청년들을 만나고, 이동하고 산에 오르면서 일상 이야기를 하고, 정상에서 식사를 맛있게 하고 커피도 한 잔씩 먹고 내려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청년들과 같이 산에 오게 되면 정상에서 간단히 샌드위치와 음료를 마시면서 쉬는 시간을 가진다는 로망도 드디어 이뤘다. 작년 연말에 처음으로 청년들과 불암산을 갔던 이후부터 가졌던 생각이었다. 그래서 커피를 담아갈 보온병도 올초에 본가에 갔을 때 집에서 가져와서 기숙사 방에 챙겨놨는데 드디어 써먹게 되었다. 종이컵을 하나씩 나눠 돌리고 따뜻한 커피를 나눠 부어 마시는 게 왜 이렇게 기분이 좋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유는 몰라도 난 그게 너무 좋다.
생각해 보면 중학생 때도 가끔 친구 몇 놈이랑 동네 뒷산 정상에서 닭강정을 먹곤 했다.
각자 식사를 다 마치고, 오지 못한 사람 수만큼 남은 샌드위치를 양 많은 사람들이 한 개씩 맡아 추가로 해치운 이후에는 돗자리를 정리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산을 무사히 내려와서 편의점 내부 테이블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수분 보충도 하고 대화도 나눴다. 대화로 인한 수분 불감손실량보다야 섭취하는 양이 비교도 할 수 없이 훨씬 많을 것이다. 어찌 됐건 각자 기지개센터에서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한 이야기나, 할 만한 다른 이야기들을 모두 했을 때, 슬슬 떠날 분위기가 되어 편의점을 나와 다시 역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와 표정은 예전과 비교하면 훨씬 편안한 것처럼 느껴졌다. 친해지기도 친해졌고, 헤어지는 게 익숙해질 만큼 만나기도 많이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는 허리 때문에 입원해야 할지 모르고, 누구는 몸살을 앓았고, 누구는 감기약을 먹고 있다. 다음에 볼 때까지 다들 몸, 맘- 맘, 몸 건강히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