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처럼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서 오는 기쁨으로 큰 잔치장으로 향했다. 잔치장에 들어서니 그곳은 무한히 팽창하고 있기라도 한 듯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그런데도 식사 공간에는 기둥 하나 없었으며, 무수히 많이 깔려있는 좌식 식탁에는 각각 셋에서 넷 정도의 손님들이 이미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좌식 식탁들에 앉아있는 어른들의 등 사이로 만들어진 길을 헤치면서 나도 내 앉을 곳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다 잔치 식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나에게 어디쯤에 가서 자리 잡고 먹으면 된다고 일러주었는데, 늘 그렇듯 그 자리는 내가 자유롭게 앉았으면 누렸을 다른 상들의 규칙적인 차림과는 다르게 몇 가지 음식만 단출하게 차려진 허술한 상이 놓인 자리었고 음식 나르는 여인들의 눈길에서도 벗어나있는 곳이었다.
"어린 개새끼들 어디 안 보이는데 숨겨놓는 것마냥 그러고 싶냐고!!"
나는 언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얼마 전쯤 속으로 한번 만들어놓기만 했던 말을 소리쳤다. 그리고 서러워서, 더러워서 안 먹겠다는 마음으로 화가 난 채 잔치장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중에 정면 유리창에 비치는 내 얼굴이 보였다. 층이 바뀔 때마다 얼굴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했지만 얼굴은 분명히 보였고 나는 그런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울고 나서 이제 더 우는 것이 좋을지 아닐지 생각할 때의 얼굴이었다. 약간 웃는 듯 보이기도 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정면 유리창 너머로 멀리 자전거 두 개 정도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더니 나는 어느 집 안으로 이동했고 거기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그 사람은 나에게 문서 한 장을 보여줬는데 거기에는 6개의 이름이 줄지어 적혀있었고 아래쪽으로는 무언가를 증명하는 내용들로 종이가 채워져 있었다. 자기 자식들만큼은 좋은 데로 챙기려는 다른 엄마들과는 반대인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 같지 않다는 느낌이 서운한 의혹에서 끝나는가 했더니 문서를 통해 의외의 실제임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엄마 아니야!!!"
이쯤에서 나는 꿈에서 깼다.
문서에서는 대충 보여주기만 했던 6개의 이름을 꿈에서 깨어 다시 떠올려보니 보르투쉬, 아나톨라 같은 느낌의 이름들이었는데 이것들은 러시아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 부분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영향을 받았거나 중앙아시아 거리에 다녔던 정보에서 형성된 모양이다. "어린 개새끼들 어디 안 보이는데 숨겨놓는 것마냥" 이라는 비유를 만들어놓은 것이 꿈속 세계 안에서 며칠 전인 것인지 아니면 실제 세계에서 얼마 전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꿈속 세계인 것 같고 꿈속 세계 특유의 생략의 결과인 것 같다.
침대에서 안 울려고 3초 정도 버텼는데 아무래도 "엄마 아니야!" 하고 소리치는 나의 어린 자아가 불쌍해서 참지 않고 울었다. 내 어른 자아가 우는 어린 자아를 말리려는 부모 자아를 막은 것이다. 꿈속 감정의 여운이 생각보다 많이 서럽고, 꿈속에서 어린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불쌍해서 눈물이 계속 났다. 심지어 친엄마가 맞는데. 꿈이 무의식을 반영한다는 프로이트적인 의미부여는 하지 않고 꿈은 그냥 개꿈이다 하고 넘기려고도 했었는데 그렇게 안 됐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기분이 계속 울적할 것 같아 그냥 이렇게 또 풀자 생각하고 일어나서 노트북을 펼쳤다.
'어릴 때의 내가 그런 것들을 생각보다 많이 서러워했구나.'
그냥 그렇게 나를 알아주기로 하면서.
성인이 되고 나서 그런 경험들이 안 좋았다고 형제들과도 서로 가끔 이야기했던 부분이다. 엄마는 교회에 외부 손님이 와서 다과를 먹거나 좋은 식사를 할 때는 우리 형제들을 따로 뺐다. "뺐다"라는 건 운 좋으면 뒤에 앉아서 음식을 먹거나 아니면 나중에 챙겨놓은 음식을 따로 먹는 것이다. 운이 나쁠 땐 그냥 집으로 올라가는 것이고. 다른 집사님 엄마들은 그러지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랑 같은 식탁에 앉아서 먹었다.
목사 사모인 우리 엄마는 아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나, 본인의 가정교육의 훌륭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가 그런 자리에서 애답게 굴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런 사정을 이해할 만큼 똑똑하고 또 엄마를 좋아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리고 엄마는 우리와 같이 앉아서 먹는 일 없이 목사님들의 시중을 들거나 목사님들 식탁 곁에 앉아 아빠가 얼마나 훌륭한 부인을 얻었는지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정숙한 여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바빴다. 나는 그럴 때의 엄마 표정과 몸짓을 어릴 때도, 지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꿈에서 깨어서 생각해 보니 나도 다른 어린애들처럼 엄마랑 아빠랑 평소와 다른 특별한 식탁에서 같이 먹고 싶어 했을 뿐이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아빠는 목사님들 테이블이, 엄마는 그 테이블 옆자리와 부엌이 당신들의 자리었다. 나도 애답고 순수했던 욕구가 있었음을 알게 돼서 어린 내가 너무 가여워서 울었다. 울어줬다. 룸메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왜 하필 무의식이 광복절이 되는 오늘 새벽에 뜬금도 없이 이런 폭탄을 터뜨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휴일이라 푹 자고 일어나서 푹 쉬려고 하고 있었디만.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한 정신적 독립을 이루라는 것일까. 의미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렇게 또 의미부여를 한다.
3일 전 기지개 센터에서 분노캔들 태우기 활동을 할 때만 해도 요즘 통 꿈을 꾸질 않아 꿈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이런 식으로 언제 어떻게 갑작스레 의식의 수면 위로 무의식이 드러날지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서 아주 성의껏 프로그램에 참여를 했었다. 그런 성의가 이번 무의식을 길어와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단어 선별이라든지, 어느 조사가 더 적절한지의 자체 검수, 문장 처음과 뒤가 올바르게 대응하고 있는지 같은 글쓰기 과정과 글쓰기에 몇 시간 동안 신경을 쏟다 보니 기분이 괜찮아졌다. 많이 시원해져서 며칠 전부터는 열어놓고 자는 창문으로 매미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매미가 울고, 아직 성에 찰 만큼 시원해지지 않았다고 가을이 오지 않았다고 하면 안 된다. 가을은 이미 와있고, 시원해지는 때는 따로 처서라고 부른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무슨 꿈을 꾸다 일어났는지와 상관없이 2024년 8월 15일 광복절이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