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를 읽고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가 쓴 책이다. <사피엔스>는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로 등장해서 활약하고 있는 현재를 묘사하고 있는데, 호모데우스는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해 나타날 미래 인류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다. 인간은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발전해 왔고, 규범과 자본, 종교와 국가를 통해 유연하게 협력함으로써 성공했다. 유발 하라리는 집단신화를 믿는 인간이 신과 종교로부터 해방된 것을 인본주의 혁명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인본주의 혁명은 자유주의, 사회주의,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구분된다. 세 가지 인본주의 경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자유주의 인본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생명공학과 인공지능, 그리고 데이터 종교로 인해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이 약해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18세기 인본주의는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신을 밀어냈지만, 21세기 데이터교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인간을 밀어낸다. 인본주의는 건강, 행복, 힘이라는 과제를 추구했고 인간이 가진 경험적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를 통해 어느 정도 실현해 왔다. 이제 불멸, 영성과 같은 호모데우스 과제가 등장한다. 그러나 호모데우스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데 이는 인간의 뇌 용량을 벗어나는 일이다. 이처럼 결정의 권한이 인간에게서 알고리즘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권이나 민주주의와 같은 인본주의 과제들은 폐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잃어가고 있는가?
이 책은 사람의 자유의지를 핵심적으로 다루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 후 사람의 이성적 판단이 신장되어 자유의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알고리즘이 사람의 자유의지를 대체한다.”
이성적 판단과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데카르트적 자아는 ‘근대’를 상징한다. 나를 이끌고 나를 지배하는 것은 언제나 또렷하고 명징한 언어로 말하는 나의 의식이다. 인간의 내면에 ‘나’라는 유일하고 진정한 자아가 존재한다. 근대적 자아에 반기를 든 것이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이다. 내게는 내가 모를 나, 무의식이 존재한다. 무의식은 억압된 욕망이나 숨겨진 두려움으로 설명된다.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억압된 욕망과 감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근대적 인간관을 부정하며, 탈근대적 사고의 기초를 제공한다.
유발 하라리는 근대적 자아의 약화를 강조하지만 프로이트의 접근법과 다르다. 그는 뇌과학과 생명공학의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자유의지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가 없음을 주장한다. 그렇다고 물리적·화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유전자, 호르몬, 뉴런이 인간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유발 하라리의 해결책은 갈등하고 충돌하는 자아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로 구분하는데, ‘경험하는 자아’는 순간순간의 의식이며 ‘이야기하는 자아’는 내면에 대한 성찰로 이해할 수 있다.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의 구분은 불교의 무아(無我) 법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불교는 세상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감각과 감정, 생각과 마음을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오온(五蘊)으로 설명한다. 또 오온이 공(空)하므로 ‘나’라고 할 수 있는 실체적인 자아는 없다고 주장한다. 가정에서 부모로서 가지는 자아, 직장에서 직업인으로서 가지는 자아, 자동차를 운전할 때 운전자로서의 자아,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친구로서의 자아 등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다양한 자아를 가지지만 어느 것을 진정한 나의 자아로 볼 수 있는가? 불교는 이 자아도 아니다, 저 자아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무아(無我)를 주장하면서 데카르트적 자아를 전면 부정한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이 자아도 경험하는 자아, 저 자아도 경험하는 자아이며, 경험하는 자아와 소통하는 “이야기하는 자아”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자유의지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질 것인가?
인간중심의 세계관에서 데이터중심의 세계관으로 이동하면서 인본주의 과제들이 폐기될 것이라는 주장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길거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을 뜻하는 스몸비, 수많은 정보에 휩싸여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장애를 뜻하는 햄릿증후군 등은 지능정보화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말들이다. 과연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격체인가? 내가 자유의지를 가지지 못하고 인공지능이나 알고리즘이 시키는 대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과연 나는 어떤 존재인가? 이런 의심이 든다면, 인권,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전망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논쟁과 설득은 사라지고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만 강해지고 있는 정치 양극화 현상도 알고리즘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알고리즘과 군중심리가 결합되고 있다. 군중심리의 기저에 작용하는 무의식적 요소들은 민족감정이나 지도자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적절한 단어와 이미지를 활용한 메시지를 군중들에게 전파하고 수적 우위와 익명에 숨어서 과격한 행동에 앞장서도록 한다. 소외계층은 혼자 있을 때 고독과 무력감에 빠져 있지만 군중으로 모였을 때 힘을 느끼고 충동에 강하게 반응한다. 이런 현상은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과 디지털 포퓰리즘(Digital Populism)에 의해 점점 강해지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지금, 유발 하라리의 통찰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야기하는 자아와 내적인 성찰을 통해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전망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