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날이다. 시간 참 부지런하다 부지런해!
일하고 사람만나고 먹고 살고. 난 지루하게 분주한데 봄은 참 예쁘게도 분주하다.
도보 옆 작은 흙에는 연두빛이 하루가 다르게 번져가고 수묵화 같던 나무들은 온통 꽃을 피우느라 바빠보인다. 먹을 수 있는지 모를 쑥처럼 보이는 것들과 벌써 져내릴 태세를 취하는 흰목련, 붉은 목련나무. 또 내가 좋아하는 조팝나무도 언제 저렇게 길어졌나 싶게 오밀조밀 흰 꽃줄기를 피어내고 있다. 정말 예쁘다.
출장으로 최근에 제주도에 잠깐 다녀왔다. 업무이니 정신이 없었지만, 이동중에 본 제주도는 벌써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차도를 따라 흐드러지게 벚꽃나무의 길은 오래도록 이어졌고 벌써 질 것 처럼 무겁게 꽃머리를 터뜨리고 있었기에 아주 실컷 벚꽃구경을 했다.
밤의 벚꽃길과 한 낮의 다양한 꽃들이 일 중간중간에 눈과 귀에게 쉴 틈을 주었다. 제주여서 볼 수 있었던 오렌지만한 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던 귤나무들이, 바라만 봐도 좋았다. 그 짧은 순간에도 출장이어도 스쳐지나가는 나무들과 제주의 봄은 나에게 정말 오랜만의 환기였기에, 더 자극적인 위로였다. 현장에서의 고된 일정과 안해도 될 저녁 회식만 아니였다면, 지척에 있던 제주 바다와 벚꽃길을 아침에 걷고 싶었다.
제주의 봄 덕분에, 짧지만 괜찮은 출장이었구나 싶다.
서울로 복귀하니, 이젠 서울에 봄이 올라온거다. 기분으로는 긴 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오늘은 지난 계절의 옷을 세탁소에 맡기고 바지 수선도 부탁하고 빨래도 하고 밥해먹고 뒷 산 산책도 했다. 산책길에 왠지 저녁을 먹고 나온 것 같은 강아지들이 종종 보여서 좋았다. 해가 떠있을 때 집 주변 공원이나 산책길을 걸을 때가 많이 없었어서 몰랐는데, 꽃도 많이 폈있었고 꽤 큰 나무들도 있더라. 이 동네 주민인데 처음 온 사람처럼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걸었네.
고맙게도 집 작업테이블에도 흰색 장미(?)와 분홍빛의 국화가 꽃병에 예쁘게 있다. 바깥의 꽃나무들을 보다가 얘네를 보니까 참 눈이 부시게 예쁘고 또 약해보인다.
일상 공간에 꽃이 있는건 기분좋게 시선을 둘 곳이 있어서 좋다. 꽃병이 유리이고 크기가 꽤 큰데, 꽃이 시드는 속도가 아쉬워 안아서 침실에 옮겨 가져가기도 한다. 자기 전에도 주변에 두고 보려고.
근데 내가 자면서 내뿜는 이산화탄소때문에 더 빨리 지려나? 좀 미안하네
친한 친구 둘이 아주 좋은 곳에 일을 구했다. 친구들이 대단하고 기쁘고 새로운 곳에서도 언제나 그랬듯이 잘해나갔으면 좋겠다.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것도 사줬으면 좋겠네ㅋㅋ!
좋은 계절에 결혼식도 많고, 다른 친한 친구는 아기도 생기고. 그러고보니 이번 해 봄은 주변에 새로운 시작들이 유난히 많다. 마음이 기쁘면서도 불안하고 생각이 많아지려고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봄은 약간 그런 기분이 일게하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