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정신차려보니 2024
기간제 교사 면접을 봤고, 면접을 붙은 학교는 대전에 있다. 기회와 고독의 도시 서울을 떠나 대전으로 이사했다. 삶 속 중대한 일들이 동시에 또 빠르게 바뀌었고, 와중에 다양한 이별도 겪었다.
숨 쉴 틈없이 학기가 시작했고 처음해보는 수업 및 공무 행정업무에 연초에는 쓰러지기도 했다. 참 운이 좋게도 가족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집밥도 먹고 따뜻하게 자고 부족한 점 없이 지냈지만, 교사라는 직업이 정말 쉽지 않은 직업이더라. 세상천지 쉬운 일이 어딨겠냐만... 그렇다고 안 힘들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냥 했다. 왜냐하면 아프던 말던 그 수업은 해야했고, 학생들이 학교에 있다. 회사일과 학교일 사이의 커다란 차이점은 학생이다. 학교에는 학생이 있기 때문에 교사는 수업이든 업무든 멈출 수 없고, 내 업무를 잘 처리해두었더라도 맘편히 연차를 쓴다던지 자리를 비울 수 없다. (물론, 어디든 어쩌구 질량보존의 법칙대로 맘대로 하는 교사도 있다.)
난 고등학교에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치는 사고 스케일도 작진 않고, 공휴일이든 방학이든 가정 내 보호자에게서도 곧잘 연락이 온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하곤 있지만, 교사든 뭐가되었든 나도 인간인지라 지치고 분노하고 슬플 때도 많다.
동료 교사들 말로는, 내가 초임교사인데 3년치 사고 및 업무를 당했다고 한다. 체감상 그런 것 같아서 동의했다. 교권하락과 가정 내 세대교체, 학생과의 세대차이에서 느끼는 실질적인 어려움을 넘어서, 예상하지 못했던 인간적인 모욕과 감당하기 쉽지 않았던 폭력사고 등등등등을 겪어야 했으니까.
그 와중에 열심히 본인들의 고민을 마주하고 행동하는 학생들을 보며 중도포기하지 않고 2023 교사로의 첫 해를 마무리 했다. 학생들이 날 나락으로 보냈다가도 구원해주기도 한다. 빌어먹을~
1년 계약제이므로 다음 해엔 뭘 하지~ 라는 고민이 생길 때 쯤, 계속 이 학교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솔직히' 윽.. 여기서 이걸 더? 노땡큐~' 라는 마음이 5m 파도처럼 일었다. 하지만 관리자 면전에 바로 노땡큐 하긴 마음이 불편해서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결론은 담임하던 친구들 졸업은 시켜보자하는 마음에 1년 더 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아주 실망스러운 부분도 많고, 곰방대 시절의 업무처리 방식도 여전히 뜨악스럽지만... 뭐 나도 어떤 이들에겐 한심해보일 것이기 때문에 뭐 잘났냐 싶어 우선 해보기로 한다. 애들 졸업해서 나가는 모습 보고싶기도 하고... 그래도 뭐든 얻어서 나갈 수 있었으면 해서.
올해엔 쓰러지기 싫어서 몇 일전 어쩌구저쩌구 예방접종도 미리 맞았다. 접종 후 생각보다 아파서 억울했다. 수업 준비하다가 글 쓰는 중인데, 분명 수업 때 하기 싫다고 시발시발대는 십대들의 얼굴이 벌써부터 눈에 선해서 혼자 살풋 빡이 친다... 그래도 애들이 안전하게 그 때만 즐길 수 있을만한 시간을 보내며 재미있게 방학을 보내고 있으면 좋겠다. 따뜻하고 사랑받는 느낌도 받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