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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돌이 아빠 Jun 20. 2023

기분이 오락가락 죽 끓듯

<매일 다른 기분> 시리즈

<Rainbowflip> 종이에 수성 사인펜, 16 x 23 cm, 2023

 대학교 졸업반 무렵 정처 없이 혼자 무전여행을 떠난 일이 있었다. 뙤약볕을 반벌거숭이로 견뎌내며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 외딴 절에 이르게 되었고, 당분간 '집도 절도 없는' 신세를 피력하며 하룻밤 묵을 자리를 청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수십평쯤 되는 건물 몇 채가 건너 건너 마주하던 곳에는 당시 아버지뻘 스님 한분이 계셨다. 지금도 '진지충', '설명충'스런 내 성격이 사춘기의 여파가 남아있던 당시에 무언가 현학적인 이야기를 나누게끔 분위기를 잡아갔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도 스님은 온갖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마디를 남겼는데 그게 이따금 스륵하고 기억을 스친다.


"여기 있는 하루간 마음이 열두 번도 바뀌어."




 나는 내가 참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러다가 문득 '언제쯤 내 또래스런 삶을 살 수 있을까?'란 늘 하는 자책을 시작해 간다. 그러다가 스스로의 다정함과 이해심에 깜짝 놀라며 박완서가 표현한 '부처님 가운데 토막'스럽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본인의 대단함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체력이 좋을 때 비위를 맞추어주는 그녀는 아주 종종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아 금세 기분이 상한다. 그리고 우중충한 작업실 책상에 앉아 이러 저런 것을 끄적인다.


'와, 어느새 엄청난 작가가 되었다!'


 내 손으로 그렸지만 어느 경지를 넘어선 그림의 아우라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며 잡히지 않는 전시와 미디어의 조명을 받는 작가들의 전시소식에 가슴에 먹구름이 드린다. 이제는 주변에서 나의 성공을 너무나도 바란다. 적당한 시기에는 질투나 핀잔이 더 많았는데, 이제는 압도적으로 나의 승전보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이들이 과반을 넘기는 느낌이고, 응원은 역설적으로 내 손목을 짓누른다. 생각에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며 '이제는 좀 잘 풀릴 때도 되지 않았나?'라는 되뇌임을 읊조리며 집으로 향한다. 하루종일 무언가 엄청 열심히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허탈함으로 몸이 텅텅 비어 현관문을 연다.


"아빠!"


 콩돌이는 본인 기분에 따라 '콩,콩,콩' 뛰어나와 신발을 벗는 나를 반색하고, 어느 때는 아무리 불러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오늘따라 아빠를 반기는 아들을 보자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아빠, 오늘 00가  바보라고 놀렸어!"


"뭬?! 그걸 그냥 둬?! 너도 한소리하고 화도 내!"


"알았어, 아빠! 우리 같이 연습해 보자!"


"콩돌이는, 바보래여~~~"


"네가 더 바보야!"


"잘했어 우리 아들!"


 속은 후련하지만 '바보'라는 말이 내 이마에 찰싹하고 달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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