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노트
코리아타운 준우범지대에 아내와 단둘이 방하나의 아파트를 얻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우리 집은 1층이어서 거실과 밖의 경계가 되는 벽에 큰 창이 있었고, 그 창을 막아주는 끝이 뾰족한 창살이 붙어 있었다. 날씨 좋은 캘리포니아의 볕은 우리 현관을 교묘히 비켜갔고 어두컴컴한 집을 밝히려 커튼을 잔뜩 젖히면 같은 층 4호실 아저씨가 시계추처럼 현관 앞 협소한 통로 겸 앞뜰을 수시간씩 왕복하며 걸었다. 한국에서와는 정반대로 모르는 사람과도 스몰톡을 주고받아야 하는 커뮤니티의 관례덕에 아저씨가 운동 겸 걷기를 매일 만보 이상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나는 웃음으로 호응했지만 거실 바로 앞을 몇 분 단위로 오가는 백인 남자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내게 "어느 쪽 코리아에서 왔냐? 북한사람이냐?"는 질문에 (가뜩 예민하던 터) 짜증이 북받쳐 상종을 안 하고 그 집을 떠나 귀국했다.
대학, 군복무, 유학과 체류 기간을 거쳐 10년이 훌쩍 지나 아버지, 엄마, 형과 함께 살던 아파트 단지로 돌아왔다. 눈에 익은 듯 꽤 변한 동네만큼 익숙한 듯 낯선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 집 바로 위층에 살던 반항적인 눈매에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형은 예전과 같은 짧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 인상이 바뀌었다. 엄마를 보러 집에 갈 때면 그 형은 느린 걸음으로 흡연을 할 장소를 찾으며 이곳저곳에 모습을 나타내는데 왕왕 혼잣말을 하곤 한다.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하면 인사를 할 수 없는 텁텁한 공기를 가르고 애써 외면하는데, 그래도 내게 북한 사람이냐고 묻던 백인 아저씨의 스몰토크가 문득 떠오르는 이유는 알 수 없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무심했던 동네의 모습이 은근하고 자세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내가 전보다 나이가 들어서인 것 같다. 일반적이지 않은 행색이나 고성방가 하는 목소리의 사연을 대충 짐작하게 되는 삶의 데이터가 누적된 듯하다. 그러고 다시 단지의 쉼터, 상가를 보면 사회에 온전히 흡수되지 못하고 경계를 배회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두 단지마다 한 사람 정도는 배회하거나 혼잣말하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보여서 그 생활에 대한 궁금증, 간간이 들려오는 무서운 뉴스 따위가 복합적으로 떠올라 스쳐 지나는 잠깐동안 복잡한 심경이 된다.
한때는 열정과 광기가 똬리를 튼 화가들의 삶에 맘이 기울었다. 미술의 대명사가 된 고흐나 키스 헤링 같은 사람들처럼 '저리 대놓고 반쯤 미쳐야 예술을 하는구나'라는 인식을 갖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이 저미는 사연은 이중섭이 독보적인 것 같다.
부잣집 아들, 유학, 지나친 감수성과 드라마틱한 사랑, 그리고 운명적인 인생의 파국.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는 대작가의 팔자가 깃든 서사이다. 하도 잡아먹어서 미안하기에 그려줬던 물고기와 게, 자신의 페르소나로 색과 형태가 피고 저물던 소, 그리고 살을 맞대고 뭉쳐진 가족의 모습은 어린 시절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그의 그림과 편지 앞에 한참을 머무르게 한다. 그렇게 벼르던 개인전을 성공시킨 후 자전거를 사서 아들과 재회하는 꿈은 그의 전시가 물거품처럼 꺼지며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잘생기고 사랑스럽던 청년은 정신질환에 시달려 정처 없이 혼자 전쟁통의 조국을 배회하다가 무연고자 신세로 쓸쓸히 죽었다.
올해 5월의 개인전, 6월의 페어에서 단 하나의 성과도 보지 못한 나는 감히 이중섭의 마음을 헤아렸다. 아내에게 떡하니 목돈을 건네고픈 마음, 보란 듯이 둘째 아들의 돌잔치에서 비싼 식대를 계산하 고팠던 포부, 그리고 아빠가 사준 거라며 소중히 여기는 큰아들의 못생긴 프테라노돈 변신 로봇을 보다 좋은 것으로 대체하고 싶던 꿈이 비눗방울처럼 퐁퐁 터져 사라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 모습을 들켜 행여나 가족들이 난처할까 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걸었다. 나는 왜 작업을 할까? 나는 과연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바다건너의 마사코와 태성이를 그리워하던 이중섭과는 달리 처진 어깨로 집에 돌아온 나를 아내가 갓 구운 고등어구이와 함께 반긴다. 큰아들은 나를 보지 않고 코딱지를 파며 로블록스를 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며 낄낄거린다. 이제 막 낯을 익혀가는 둘째 아들은 자신의 겨드랑이를 입술로 간질이는 아빠를 보고 키득거린다. 광기와 원한에 사로잡힌 내 영혼을 가족들이 꺼내주었다. 재주도 돈도 없는 내게 조금만 더 힘을 내어 작업을 이어가라 채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