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노트
비단 문화예술 계통뿐 아니라 인간사 전체에 '사교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지대한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동종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알아가고 때마침 필요한 부분에 퍼즐처럼 맞아 들어가는 적임자가 보일 때 누군가의 운명이 전환될 기회가 깃들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도의 선후를 가리기가 참 어렵지만-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가 뛰어난 사교적 감각을 동시에 갖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 애석하다.(너무 내 이야기라 그런가?) 엉덩이 힘이 센 만큼 입까지 무거워지기 십상이고, 반대로 사람들과 교류에 익숙해질수록 붓은 점점 멀어지니 말이다.
미술활동을 하는데에 SNS가 이리도 공기처럼 작용할지 잘 몰랐고, 솔직히 회피하고팠다. 전시장에서 마주치는 분들과 아이디와 팔로우를 주고받는데 익숙지 않다 보니 스트레스거리가 되곤 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청소년기부터 태동하던 소셜미디어의 조상들 - 버디버디, MSN, 싸이월드 등-이 생각나는데 그리 유쾌한 기분이 남지 않았다. 단적으로 싸이월드를 개설해 놓고 여러 번 들어가 보아도 방문자가 적으면 김이 빠지기 십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일촌 목록이 끝도 없고 일상의 사연과 사진에 어찌도 댓글들이 주렁주렁 열리는지 참 신기하고 부러웠다. 지금도 분기마다 열정을 피워 인스타그램과 브런치를 열심히 해도 도무지 조회수는 싸이월드 때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기에 '이건 그저 재능의 영역인가' 싶다.
제작년 한 전시에 사람들을 초대해야 했는데, 편히 연락하는 사람이 몇 안되어서 난처했다. 그리고 전시 때마다 부른 사람을 또 부르기가 망설여지는데, 마치 1년에 돌잔치 초대장을 두어 번 전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정은 전시 주최 측에서도 매한가지로 경험하기에 괜스레 서로가 손님을 많이 불러들여 오프닝이 북적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 당시에 용기를 내서 연락하고 만나게 된 사람들은 무척 반갑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더불어 내 작업 성격상 직접 눈으로 보고 좋아해 주는 모습을 보면 한동안의 괴로움을 보상받는 느낌이 들어 깊은 격려가 되었다. 매번 손님 모시기를 회피하고 애꿎은 가족들만 전시장에 오라할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을 오랜만에 맛봤다.
한창때 폼을 내고 싶어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들고 다니다가 가깝게 지내던 지인 분 댁의 개가 1권을 사정없이 물어뜯은 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워낙 안 읽히던 글이어서 잘 됐다 싶은 맘에 독서를 중단했는데, 기억나는 부분과 이해한 내용은 협소하다. 그래도 본문에 주인공이 기억으로 진입하기 위해 흡입하던 마들렌과 홍차의 향기, 파티장을 누비며 소설가의 꿈을 키우는 모습 정도는 생각이 난다. 그리고 주인공은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수채화처럼 번져나가는 삶의 이미지들을 우직하게 써나간다. 결국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그는 사교장에서부터 한 평의 책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 해가 저물고 새로 시작될 때마다 엷어지는 인간관계에 고민이 생긴다. 내 할당이 넓어지는 경조사와 사회적인 입지를 곱씹다 보면 불안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것 같아 숨을 헐떡이게 되는데, 아내가 괜찮단다. 가족이 있지 않냐면서. 몇 번이나 마음을 고쳐먹고 SNS에 사진과 소개글을 남겨도 제자리걸음은커녕 문워크로 뒷걸음질 치는 느낌이다. 그래도 아내가 계속하란다. 자기가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냐면서. 나에게 소셜클럽이 갖는 의미는 몹시 크고 두렵다. 그만큼 잘하고 싶고 원만한 사람들의 태도에 부러움이 일곤 한다. 그래도 "내가 있지 않냐."면서 내 무거운 엉덩이가 움찔거리며 말을 하는 것 같다. 덕분에 고난한 작업도 이어간 지 몇 년째이고 그렇게 애써 만들어간 작업들로 소셜클럽의 한가운데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도 받아보았으니 만족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