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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Nov 26. 2023

'해송'과 '윤슬'이 설레는 사연많은 바닷길

충남 태안 솔향기길 1코스

그때도 초겨울이었다. 얼룩진 바다는 차가웠고 매서운 칼바람에 얼굴이 얼얼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온통 기름으로 범벅이 된 바위를 닦으러 주말 아침 일찍 서해로 향했다. 낡은 통통배를 타고 안개자욱한 작은 섬으로 들어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바다는 기름으로 뭉쳐진 검은띠가 흐르고 있고 역한 냄새가 풍겼다. 


2017년 12월 7일 충남 태안 앞바다에 홍콩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 호’와 ‘삼성 1호’가 충돌하면서 유조선 탱크에 있던 약 8만배럴이 인근 해역에 유출된 비극적인 재앙이 발생했던 바로 그해 겨울이다.


하지만 죽어가던 태안의 바다를 살리기 위해 약 123만명의 자원봉사자가 전국 각지에서 달려왔고 그들의 노고와 열정으로 바다는 다시 완벽하게 소생했다. 



지난 주말 우리가 찾은 태안 솔향기길 1코스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해안으로 이동하기 위해 걸었던 군인들의 해안순찰로와 오솔길, 임도를 트레킹코스로 만든 사연많은 길이다.


그후 이 곳을 7년만에 방문했다. 이번엔 오로지 걷기 위해서다. 트레킹 전날 갑작스런 한파가 몰려와 걱정했으나 태안의 최북단 이원반도의 땅끝마을이자 솔향기길 1코스의 들머리인 만대포구는 비교적 포근했다. 


포구에서 삼형제바위까지 이어진 해안테크길은 팔순된 노인들도 가볍게 걸을 수 있다. 하지만 ‘큰구매수동’부터는 난이도가 점차 높아졌다. 자원봉사하러 왔을 땐 몰랐는데 이 길은 웬만한 산행 못지않게 험한 길이다. 꾸찌나무해변까지 10.2km는 평탄한 길이 거의 없다. 



절벽위의 가파른 숲길을 오르고 다시 해변으로 내려왔다가 또다시 오르기를 반복해야 한다. 이 때문에 영상 3도로 쌀쌀했으나 두꺼운 패딩이 거추장스러울만큼 열기가 올라왔다. 산악인이라고 자부하는 지인도 힘겨운 표정이 역력했다. 동네 산책길만 걷다가 따라온 사람들에겐 곤혹스런 길이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풍경들은 서해의 매력을 가득 담고 있어 고행길의 피로를 잊게 한다. 가리봉 전망대는 양 옆으로 해송숲과 매끄럽게 펼쳐진 고요한 바다를 볼 수 있다. 커다란 고막껍질을 엎어놓은 듯한 여섬도 뷰포인트다. 육지에서 200m 떨어져 있어 썰물때는 바닷길이 열리고 밀물때는 요란하게 굽이 치는 파도가 장관이다. 


중막골에서 해변바위를 타고 넘으면 높이 3m의 해식동굴인 용난굴이 나그네의 시선을 끌지만 물때를 맞추지 못하면 접근할 수 없다.     

 


솔향기길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숲은 거친 태풍을 버티어 낸 해송(海松)이 빽빽하게 밀집돼 걷는 내내 피톤치드향을 내뿜었다. 무엇보다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윤슬)을 한참동안 지켜보며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을 느꼈다.

 

이 길은 거친 숨을 내쉴만큼 힘들기도 했지만 바다와 하늘이 구분이 안되는 티끌하나 없는 청명한 하늘과 청정한 바다를 보면서 자연의 복원력에 새삼 감탄했다.


 ‘순례자’의 작가 ‘파올로 코엘료는 “ 삶은 길위에 누군가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 보물찾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로 삶을 은유했지만 길이 평이하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 보석같은 풍광을 드러내는 걷기길도 그러하다. 태안 솔향기길 처럼.


*태안 솔향기길 1코스 / 10.2km


만대포구~붉은앙뗑이~근육골해변~가마봉 전망대~여섬~중막골~용난굴~기두리양식장~꾸지나무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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