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준 Mar 06. 2024

시니어타운은 '노인지옥'인가

최근 C일보 기사 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실버(시니어)타운은 노인지옥이었다’는 기사다. 우리나라에선 노인 주거복지시설이 공급에 비해 수요가 턱없이 부족해 시니어타운 개발 시장이 뜨거울 만큼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데 ‘노인지옥’이라니 납득이 안갔다.



물론 관련기사가 나온 곳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일본 언론에 소개됐다는 내용은 이렇다. 도쿄 토박이로 부인과 별거 중인 77세 남성은 3년 전 치바현 카모가와시에 새로 생긴 럭셔리 시니어타운에 갔다가 한눈에 반해 홀로 여생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오션뷰 수영장에 노천욕탕, 휘트니스클럽, 가라오케, 극장, 마사지룸, 도서관, 마작룸, 당구장에다 의료서비스도 좋으니 활기찬 일상에 심심할 일도 건강 걱정도 덜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바다로 산으로 첫 1년은 마치 천국에 온듯한 기분이었지만 점점 일상의 무게에 짖눌리기 시작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쇠한 노인들과 과거 자랑만 잔뜩 늘어놓는 ‘라떼족’외에는 자신과 소통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선택은 거액의 보증금만 손해 본채 고향 도쿄로의 귀환이었다. 

하지만 도시라고 모두에게 답이 될 순 없다. 자녀가 있는 도시로 거처를 옮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다. 90대 초반인 지인의 부친은 고향인 충북 음성의 산골마을에서 홀로 산다. 걱정이 된 장남이 모셔가려고 해도 완강히 거절한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마을 노인정에는 친구와 지인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점심과 저녁은 주로 노인정에서 함께 식사한다. 

“나이가 들면 새소리가 들리는 곳보다 자동차 소음이 있는 곳에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적적하고 생활 인프라가 없는 시골보다는 병원이나 편의시설이 많은 도시가 살기에 더 낫다는 말이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C일보 기사는 핵심을 벗어났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스먼이 설파한 ‘군중속의 고독’은 도시인들의 고립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인구가 밀집된 아파트 단지에 살아도 이웃과 단절되고 배우자나 친구가 먼저 떠나 외로움을 겪는다면 네온사인이 번쩍번쩍 빛나는 도심 한가운데 살아도 고독할 수밖에 없다. 

결론은 '일상의 무게'에 짓눌리게 하는 것은 ‘장소’가 아니다. 함께 ‘소통’하고 취미를 공유하고 놀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여부다. 호흡이 잘 맞는 배우자나 말이 통하는 친구가 있다면 환경이 열악한 섬이나 외국에 가서도 재밌게 살 수 있다. 

내가 아는 80대 후반의 어르신은 젊은 시절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이민가 온갖 고생 끝에 LA 호텔을 두 곳이나 인수할 만큼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일찍 부인과 사별한 그는 호텔을 아들 둘에게 나눠주고 지금은 귀국해 역시 서울에 살다가 홀로 충남 천안의 시골에 자리 잡은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미국의 고급 저택에서 얼마든지 호사스럽게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천안 시내에서도 40분 이상 들어가는 깡촌의 농가주택에서 생활하는 것은 고교시절부터 70여년간 인연을 맺어온 친구 때문이다. 두 분은 교대로 식사 당번을 자처하고 틈만 나면 카페 투어를 하거나 전국의 축제장을 드라이브 삼아 다니며 여생을 즐기고 있다.

새소리가 들리는 시골의 노후가 누구에게나 외롭고 적적한 곳이 아니듯 시니어타운은 ‘노인지옥’이 아니다. 모든 것을 갖춘 시니어타운에서 금슬 좋은 부인과 함께 살고 이웃과 적당히 소통한다면 ‘천국’이다. 경제적으로 부담만 안된다면 누구나 들어가서 품위 있게 살고 싶을 것이다.

사는 곳이 도시나 시골 또는 시니어타운인가 집인가가 문제가 아니다. 곁에 누가 있느냐가 노후의 관건이다. ‘시간은 금’이라고 하지만 ‘시간보다 소중한 오직 하나는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이다’ 작가 리오 크리스토퍼의 명언이다. 

작가의 이전글 새해 '바닷길'을 걷는다면 호미반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