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지난 26일 트레킹 카페 회원들과 단체로 전남 구례 지리산 피아골을 찾았다. 이날은 산림청단풍예측지도에서 절정으로 표시된 날짜다. 그래서 도착하기 전 걱정이 태산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피아골단풍축제'가 열린 날이기 때문이다. 피아골 계곡 들머리인 연곡사까지 비좁은 도로에 차량이 혼잡하면 오도 가도 못하고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단풍인파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비좁은 도로는 뻥 뚫렸다. 더 걱정할 일은 단풍을 볼 수 있는가 여부다. 새벽부터 일어나 160km 달려 찾아왔는데 피아골이 온통 초록빛이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불길한 예측은 현실화됐다. 연곡사 주차장에서 내려 피아골계곡으로 들어서는데 도무지 가을 느낄 수 없었다. 풍경만 보면 늦여름이라고 해야 할까. 산림청 단풍예측지도만 믿고 왔다가 제대로 뒤통수 맞았다.
내가 더 안타까웠던 것은 구례군청이다. 단풍축제를 맞아 축제인력을 대거 배치하고 피아골 들머리 주변에 깨알 같은 조형물을 설치한 것은 물론 이벤트행사를 준비했다. 근데 정작 축제의 주역인 ‘단풍’이 없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다. 탐방객들을 위해 거액의 예산을 들여 준비한 ‘보물찾기 선물’은 무용지물이 됐을 것이다.
피아골대피소를 목표로 출발했던 우리 일행은 결국 ‘단풍’이 물든 나무는 한그루도 구경하지도 못한 채 ‘삼홍소’에서 뒤돌아야 했다.
산림청 단풍예측지도가 엉터리인 것은 이번만 아니다. 지난해는 대한민국 대표 단풍명소인 내장산에 갔다가 잊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때도 내장산 단풍이 절정이라는 이맘때였다.
나름 회원들에게 뜻깊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추령~유군치~장군봉~연자봉~내장사~원적암~백련암~일주문 코스를 잡고 힘겹게 산을 올랐다. 하지만 장군봉에서 내려오는 내려오는 길은 초록의 물결만 가득했다.
더구나 내장사에는 단풍을 보기 위해 엄청난 인파가 몰렸지만 ‘이상기온’으로 제대로 단풍 본연의 때깔을 드러내지도 못한 채 말라비틀어져 떨어졌다. 예전 같으면 내장사에서 사찰 앞 상가까지 4km의 길엔 단풍터널을 이뤘으나 단풍은 없고 울긋불긋한 아웃도어를 입은 수많은 탐방객이 실망한 표정으로 터벅터벅 걷는 모습에 우리 일행 역시 힘이 빠졌다.
단풍 감상을 못했다고 산림청만 탓하는 것은 아니다. 사계절에 적응해 살아가던 나무에게 예고 없이 찾아온 이상기온은 나무에게도 큰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가을에 나뭇잎이 물드는 것은 나무가 겨울나기를 위해 낙엽 만들기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잎으로 가는 물과 영양분을 차단하고 나뭇잎에 들어 있던 엽록소가 햇빛에 파괴되면서 양이 줄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엽록소가 파괴되면 녹색의 엽록소 때문에 보이지 않던 다른 색의 색소가 더 두드러져 나뭇잎이 다양한 색을 나타내게 되는데 단풍이 들기 전에 잎을 떨구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단풍의 시작은 단풍이 들기 전 1~2달의 기온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이때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단풍시작일이 나흘이나 늦어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시기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 현상이 지속되면 2050년 이후엔 아예 11월에나 단풍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문제는 나무에 관한 한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산림청이 단풍예측지도를 발표하면서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예측을 한다는 점이다. 단풍 시작은 주요 수종이 50% 이상 물들었을 때를 기준으로 하고 산 전체가 80% 이상이면 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26일 지리산 피아골의 경우 단풍이 80%는커녕 10%에도 밑돌았다. 이런 식이면 산림청 단풍예측지도는 탐방객들에겐 헛걸음을 하게 하고 축제를 준비하는 지자체에겐 혈세만 낭비하게 된다.
산림청은 요즘같이 이상기온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보다 정교한 단풍예측지도를 만들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발표하지 말 것을 권한다. 속는 것도 한두 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