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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4월은 잔인한 달인가

by 박상준

T.S 엘리엇은 1922년에 발표한 434줄짜리 장문 시(長文詩) ‘황무지’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기지개를 켜고 생동감 있는 시간을 시작하려는 ‘4월’ 입장에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들판에 막대기만 꽃아도 푸른 잎이 돋아나고 꽃이 필만큼 온갖 생명이 살아나면서 대지에 활력을 불어넣는 시기가 아닌가. 그래서 인디언(블랙푸드족)들은 4월을 아예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난 올해만큼은 ‘잔인한 달 4월’에 격하게 공감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약동하는 봄을 찬양하고 싱그러운 봄꽃을 보며 소소한 기쁨을 누리기엔 너무도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글로벌 경제는 시계(視界) 제로의 상황에 직면했다. 예측불가의 트럼프 관세정책에 주식시장과 세계경제는 ‘핵폭탄 급’ 충격을 받고 있다. 지난 3일과 4일 이틀간 뉴욕 주식시장에서 사라진 시가총액이 무려 9.652조원에 달한다.

그 여파로 한국 증시도 원투펀치를 맞은 것처럼 그로기 상태다. 국장(國場)이든 미장(美場)이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증시에 목을 맨 MZ 세대에겐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경제가 앞으로 전방위적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대외적인 하방 압력을 더욱 크게 받고 이로 인해 수출 피해 규모 확대로 내수는 더욱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에 울고 싶은 자영업자들은 뺨을 맞은 기분일 것이다. 골목상권뿐만 아니라 대로변에도 ‘폐업’과 '임대'라고 붙인 상가가 즐비하다. 보기만 해도 남일 같지 않게 씁쓸하다.

이런 4월에 대한민국 리더십은 실종됐다. 찬탄과 방탄 세력의 거리 집회로 한국 사회가 갈등과 충돌을 겪는 와중에 윤석열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여야는 조기 대선의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와중에도 야당은 경제사령탑인 최상목 경제부총리 탄핵을 예고하고 있다. 암담한 경제 현실이다. 기업도 악재에 시달리고 있지만 600만명에 육박하는 자영업자에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재앙이 펼쳐졌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이 아니다’라는 뜻의 고사 성어다. 4월이면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지만 엘리엇의 표현처럼 겨울이 외려 따뜻했을지도 모른다.

시 ‘황무지’의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적 문화적 혼란기였다, 전쟁은 문명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고 고전적 가치의 붕괴와 분열된 시대의 모습을 드러냈다, 엘리엇은 당시의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시적으로 그려냈다.


‘황무지’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 투영된다. 벚꽃과 개나리와 진달래가 절정을 지나는 4월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엔 잔인한 달은 아닐지라도 대책 없이 불안하고 심란한 달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6월 3일 누가 대권을 잡더라도 지금의 정치구도상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질 것 같지 않은 암울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차라리 4월만 잔인한 달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6월엔 희망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한낱 맹목적인 기대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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