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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봄비가 두렵다

by 박상준

비는 자연이 보내온 엽서처럼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려준다. 3월의 비가 겨우내 얼고 메말랐던 황량한 대지를 녹이고 4월의 비는 땅속 깊이 잠들어 있는 씨앗들을 깨우고 뭇 생명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때쯤 대지를 촉촉이 적시던 비가 그칠 때마다 봄은 더 완연해진다. 숲속 오솔길을 걷다 보면 물오른 나뭇가지는 파릇파릇 싱싱해지고 참꽃과 진달래는 싱그러운 향기를 내뿜는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봄비가 조용히 내리고 바람이 순하면 백성들이 편안하다’고 했고 많은 시인들도 봄비를 예찬했다. 연하디연한 청초한 꽃이 행여 다칠세라 가늘고 조용히 내리는 봄비는 때로 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난 봄비가 불편해졌다. 봄비가 내리는 날엔 가급적 외출도 삼가한다. 흙비가 된 봄비를 목격한 이후부터다. 어느날 말끔하게 세차한 내 흰색 승용차가 봄비를 맞은 뒤 온통 지저분하게 얼룩졌다. 내 얼굴도 살짝 일그러졌다. 봄비가 아닌 흙탕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애써 세차한 차가 더러워졌기 때문이 아니다. ‘봄비’라는 어감이 주는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가 여지없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또 흙비가 천식 폐렴 같은 호흡기 질환, 피부 질환, 충혈·각막 손상 등 인체에 해로운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물론 흙비가 최근부터 내린 것이 아니다. ‘삼국사기’에도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토우’(土雨)라고 불렀다고 들었다. 흙비가 쏟아지면 백성들도 놀랐고 위정자도 하늘의 노여움이 아닌지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옛날엔 흙비가 매우 드문 사례였으니 기록에 등장했을 것이다.


내 기억엔 어린 시절 우물가 대야에 담긴 봄비로 세수를 할 만큼 맑았다. 10여 년 전만 해도 흙비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우리 집 마당의 빨랫줄에 걸쳐놓은 하얀 와이셔츠가 봄비에 맞아도 더러워지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가랑비에도 황사가 섞여있다. 내몽골 건조지역에서 강한 바람과 함께 한반도로 날아온 흙비는 무분별한 자연 개발과 공해로 더욱 농도가 짙어졌다. 양옥 옥상에 빨래를 널어놨다가 소낙비를 맞으면 바로 세탁기 속으로 다시 직행해야 한다.


흘러간 포크송 중 배따라기가 부른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나는 요 비가 오면 추억 속에 잠겨요”로 이어지는 이별에 대한 노래지만 연인은 봄비를 맞으며 아름다운 추억을 차곡차곡 쌓았을 것이다.


이젠 누구도 봄비를 맞으며 사랑타령을 하긴 힘들다. ‘흙비’를 맞으며 걷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님을 떠나보내 눈물로 마스카라가 검게 번진 여인의 얼굴처럼 봄비는 승용차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도 칙칙하고 씁쓸한 흔적을 남긴다. 흙비는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디스토피아적 음울한 현실을 드러낸다. 그래서 난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봄비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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