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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바위와 유기방 수선화 '서산 비경속으로'

by 박상준

4월 최고의 여행지를 꼽는다면 서산을 빼놓을 수 없다. 개심사엔 왕벚꽃이 피고 유기방 고택엔 새초롬한 수선화가 새 단장을 마치고 손님을 기다린다. 곁들여 황금산 코끼리바위도 서해를 향해 강렬한 아우라를 내뿜는다. 하루 일정으로 황금산과 그곳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유기방을 다녀왔다. 기상청 강풍주의보에도 아랑곳없이 코끼리도, 수선화도 봄 햇살에 밝게 빛났다.


황금산에서 만난 코끼리


이런 바닷길은 흔치않다. 모래사장이 없다. 그렇다고 갯벌도 보이지 않는다. 해변엔 삐쭉 빼쭉 모난 바위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그런데 이 해변을 품고 있는 산 이름이 ‘황금산’이다.

무릇 전설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 다양한 ‘썰’이 있다. 금이 발견됐다는 말도 있고 이 일대가 노을이 지면 온통 금빛 찬란한 장관 때문이라고도 하고 주변 해역이 해산물이 풍부한 황금 어장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산은 도심의 허파 노롯 하는 우리 동네 뒷산만큼이나 평이하다. 해발 155m로 낮은 산이다. 다만 산 정상의 임경업 장군을 모신 황금산사(黃金山祠) 전망대에서 바라본,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처럼 생긴 가로림만(加露林灣) ‘뷰’는 길게 늘어선 섬 때문인지 서정적인 감흥을 불러일킨다.



황금산을 넘어가 바닷가로 내려서면 억겁(億劫)의 세월이 빚은 주상절리 절벽이 해안을 바라보며 버티고 서있고 해변은 온통 바위투성이다. 아마도 주상절리 암벽의 파편이 거친 해풍을 이기지 못해 바닷가에 깔린듯하다. 그래서 이 길은 한 발 한발 조심스레 내딛지 않으면 바위 틈새로 발이 빠지게 된다.

황금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코끼리바위이다. 영락없는 코끼리 모양을 한 높이 5m의 거대한 바위가 긴 코를 바다에 내리고 바닷물을 마시는 형상에 입이 딱 벌어졌다. 진짜 코끼리가 봐도 친근감을 느낄 정도다.

썰물 때는 구멍이 뚫린 아치형 코끼리 바위 아래로 길이 이어지는데 마침 이날이 썰물 때였다. 그래서 거의 모든 탐방객들이 코끼리 바위 코 아래에서 '포즈의 경연'을 벌이며 인증샷을 남겼다.


마침 날씨도 더없이 좋았다. 기상청은 며칠 전부터 주말 서산에 강풍에 봄비가 내린다고 호들갑을 떨어 마음을 졸였지만 하늘은 우리 편이었다. 대당 550억원이라는 기상청 슈퍼컴퓨터가 제 기능을 못한 것이 우리에겐 다행일 만큼 하늘은 화창하고 포근했다.


100년 고택과 싱싱한 수선화 군락

4월 최고의 여행지를 꼽는다면 서산을 빼놓을 수 없다. 이때쯤이면 운남면 유기방 가옥의 노란 수선화와 인근 천년고찰 개심사의 청벚꽃과 왕벚꽃이 바통터치하며 꽃망울을 터트리는 시기다. (그러고 보니 개심사를 못 들린 게 아쉽다)



고택은 서산 유씨 집안의 종갓집이고 유기방(77)은 이 집 주인장 이름이다. 수백 년 된 소나무 숲이 껴안듯 품고 있는 고택은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배치된 전형적인 전통 양반가옥으로 남쪽 전망이 시원하게 트였다.


고택을 지나 나지막한 산자락을 올라가면 온 산을 수놓은 수선화가 미풍에 물결친다. 물가에 자라는 수선화가 산자락에 화사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으니 참으로 이채롭다.

무엇보다 송림숲과 수선화 군락의 기막힌 조화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주인장은 뒷산에 울창한 대나무 뿌리가 담을 헐거나 소나무를 고사시키는 것은 물론 음침한 기운도 싫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베고 그 자리에 다른 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려 23년간 농사짓듯 오로지 수선화만 심었다.



이젠 그 수선화 군락이 봄이면 매일 수천, 수만명의 상춘객을 불러 모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드라마 배경(직장의 신/미스터선샤인) 이기도 했던 유기방 가옥은 수선화로 인해 전국구 관광지로 떠올랐다.

아랍 속담에 "두 조각의 빵이 있는 자는 그 한 조각을 수선화와 맞바꿔라. 빵은 몸에 필요하나 수선화는 마음에 필요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토록 넓은 수선화 군락에 반짝이는 샛노란 별 모양의 꽃은 어지러운 세상사쯤은 아득히 잊어버려도 좋을 만큼 탐방객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고 힐링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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