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의 대가’, ‘살아있는 윌가의 아이콘’, ‘오마하의 현인’ 버크셔 해서웨이 CEO ‘워런버핏을 수식하는 별명은 그의 투자인생을 압축하고 있다. 올해 94세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버핏이 ‘은퇴’를 입에 올렸다.
그는 지난 3일 미국 네브래스카주(州)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연례 주주총회에서 “이제 아벨이 최고경영자가 되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시가총액 1조 1000억 달러의 거대한 회사를 자식이 아닌 전문경영자에게 넘기고 2선으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천명한 것이다.
증권시장의 역사에 ‘투자의 구루(Guru)’는 많다. 하지만 버핏만큼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은 흔치 않다. 2025년 세계최고 부자순위에서 버핏은 1,440억 달러로 6위였다. 하지만 버핏이 천문학적인 부를 일군 것으로 그쳤다면 그는 단순히 ‘투자의 귀재’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재산 99%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실천해 왔다. 그가 위대한 것은 '투자의 제왕'이자 ‘기부의 제왕’이기 때문이다.
#신문팔이소년이었던 버핏
어린 시절 ‘워런버핏’은 돈을 밝히는 아이였다. ‘주식거래상’인 아버지가 걱정할 정도로 돈을 좋아했다. 하지만 부모에게 손을 벌리진 않았다. 6살 때부터 껌과 콜라, 신문배달 등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다.
버핏은 수년 전 언론인재단 기금 마련 행사에 참가해 어린시절 자신의 배달구역에서 가장 빨리 신문을 배달할 수 있던 비결을 들려주었다. 멀리서 베란다를 향해 던져도 신문 속지가 빠지지 않도록 직접 신문 접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후 그는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뉴욕의 웨스트체스트라는 거대한 배달구역을 얻게 됐다고 한다. 그의 독특한 발상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다.
버핏은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11살 때 주식에 입문했다. ‘시티즈’라는 에너지회사를 주당 38달러에 3주를 샀는데 28달러까지 떨어졌다가 40달러로 반등하자 바로 팔아치웠다. 하지만 이 주식은 200달러를 돌파했다. 이때 버핏은 ‘장기투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재산 90% 60대에 축척한 대기만성형 투자가
그는 34세 때 직물회사였던 버크셔의 경영권을 확보한 1965년 이후 연평균 21.6%의 수익을 거뒀다. 이는 1,826,163%에 달한다. 경이적인 수익률이다. 특히 그는 대기만성형 투자가다. 현재 그의 재산은 1440억 달러 규모(204조)로 90% 이상을 60대 중반 이후에 축척했다.
그의 주식투자 원칙은 딱 세 가지. 첫째 돈을 잃지 말라, 둘째 첫 번째 원칙을 잃지 말라, 셋째 빛을 지지 말라다. 지금 당장의 이익을 위해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우선 원금을 지켜내고 최선의 수익기회를 얻어내라는 것이다. 이 말은 가급적 저렴할 때 사라는 뜻이다.(저렴의 기준을 모르겠다면 증권시장이 급락했을 때 사면된다)
특히 가치투자는 기본적으로 주식을 저렴하게 사서 주가가 기업의 내재가치에 접근할 때까지 기다리는 투자법이기 때문에 빚을 져서 투자한다면 시간싸움에 불리하게 된다. 즉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 내에서만 투자하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버핏도 때론 실패를 맛보았다.
버핏은 코로나 사태 때 항공사 투자 실패로 큰 상처를 입었다. 버핏은 2016년부터 미국 4대 항공사에 본격 투자했는데 코로나사태에도 남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던 항공주를 집중 매입했다. 하지만 2020년 항공주 매입은 투자실패로 결론 났다. 손절매하면서 60조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버핏은 "이번 투자는 내 실수였다"고 쿨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버핏은 증시가 폭락하면 평소 눈여겨보았던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다며 좋아했다.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원칙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주식시장이 붕괴될 것처럼 폭락하면 공포심에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핏을 그것을 이겨내면서 장기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버핏은 "사람들이 공포감에 빠져있을 때 욕심을 부리고 사람들이 탐욕을 부릴 때는 공포를 느껴라"라는 투자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중산층 수준의 검소한 삶
버핏이 사는 네브라카주 오마하는 우리나라로 치면 충주나 부여쯤 되는 조용하고 한적한 소도시다. 이 도시의 파르남 가(Farnam street) 36번지에 있는 14층 키위트 플라자 빌딩이 사옥이다. 그나마 중소기업 사옥 규모인 이 빌딩 꼭대기층만 쓰고 있다. 사세가 좀 커졌다 싶으면 서울 도심 노른자땅에 번듯한 고층빌딩을 올리고 싶어 안달하는 기업인들과는 마인드가 다르다.
버핏의 재산은 화수분처럼 불어나지만 생활은 '짠돌이'수준이다. 장녀인 수잔은 어른이 될 때까지 자신이 엄청난 부자의 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아무래도 버핏의 알뜰한 생활방식 때문에 자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고 있는 집도 미국의 중산층 수준을 넘지 못한다. 65년 전 오마하의 주택가에 자리 잡은 3만1500달러(약 3800만원)에 매입한 자택에서 지금껏 살고 있다. 건물 면적이 약 541.6m²(약 164평)로 주변 집들보다 약간 크지만 미국인들이 선호하지 않는 도로 옆에 위치해 주변 집들보다 가격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중고차를 타고 다니고 할인쿠폰을 좋아한다. 빌게이츠에게 식사대접을 한다며 맥도날드에 데리고 가 할인쿠폰으로 햄버거를 사준 유명한 일화도 있다.
#버핏의 장수비결
미국 경제지 포춘(Fortune)이 ‘워런 버핏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요? 코카콜라, 사탕, 그리고 삶의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94세 생일을 맞은 버핏을 소개하면서 국내 언론도 그의 식단을 집중 조명했다.
슈퍼리치의 식단은 어떨까. 당연히 최고의 영양사가 공들여 정한 맞춤형 건강식이 식탁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그는 ‘서민식단’도 아닌 6살 아이들이 즐기는 ‘정크푸드’에 푹 빠져 거의 1세기를 살아왔다.
버핏은 아침식사로 맥도널드에서 소시지 패티 2개, 계란, 치즈 또는 베이컨으로 구성된 3.17달러(약 4200원) 짜리를 먹고 매일 12온스(355㎖) 분량의 코카콜라를 5개씩 마신다. 점심엔 칠리 치즈 핫도그와 견과류를 곁들인 아이스크림을 먹고, 간식으로는 사탕을 자주 먹는다.
아이들이 이렇게 먹었다간 엄마가 경을 칠 일이고 어른이라면 의사로부터 엄한 경고를 받겠지만 버핏은 이런 ‘정크푸드’를 평생을 먹고도 건강만큼은 자신하고 있다.
왜 버핏은 구순을 넘어서도 건강할까. 포춘은 네 가지 비결을 제시했다. 충분한 수면, 두뇌를 위한 최고의 운동이라는 ‘브리지게임’, 독서와 사색, 인간관계 등을 꼽았다. 모두 공감할만한 내용이다.
# 기부의 왕 버핏
버핏은 ‘자린고비’ 소리를 들어가며 검소하게 살면서도 기부에는 큰 손이다. 2023년에도 나이 차이를 떠나 친구처럼 지내는 빌 게이츠 재단과 자선단체 5곳에 무려 53억달러(7조 3000억원)을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20년간 393억달러(55조원)를 기부했다.
그는 자신이 사망한 이후에는 재산 거의 전부를 세 자녀가 공동관리하는 공익신탁에 넘겨줄 것으로 보도됐다. 현재 보유한 주식은 1420억 달러. 자녀들의 공익재단은 신규로 설립된다.
맏딸 수지 버핏(71)은 유아교육과 사회 정의를 장려하는 셔우드 재단 이사장과 대학 장학금을 지원하는 수전 톰슨 버핏 재단 의장을 맡고 있다. 아들 하워드 버핏(69)은 농장을 운영하며 식량안보, 분쟁 완화,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활동을 하는 하워드 G 버핏재단을 이끌고 있다. 막내 피터 버핏(66)은 작곡가로 원주민 공동체를 지원하는 노보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버핏은 평생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선한 자세로 베풀며 기부에 앞장서왔으니 마음이 평안하고 잠도 잘 왔을 것이다. 당연히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버핏은 "시장경제는 나 같은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지만 가난한 사람에겐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기부가 필요하다"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