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공감되는 가슴 뭉클한 메시지
조각가이자 목사인 장동근 작가 인터뷰
마치 모래사장을 표현한 듯 거친 질감의 하얀색 바탕에 작은 조약돌 13개가 멀리서 보면 잔잔한 바다위 물결처럼 점점이 박혀있는 입체회화 작품이 가로로 긴 액자에 담겨있다. 작품은 단순해보이지만 사유(思惟)를 이끌어내는 아우라가 있다. 조각가이자 목사인 장동근 작가의 작품 ‘THE SECRET’ 연작중 하나다.
관람객의 시선으로 보면 구상작품인지 추상작품인지 알쏭달쏭하지만 작품에 담겨있는 메시지를 알고나면 보는이로 허탈한 웃음과 함께 깊은 성찰을 느끼게 한다. 제목은 생텍쥐베리 소설 ‘어린왕자’의 한 귀절인 “내 비밀을 말해줄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에서 따온듯 하다.
정상인들은 ‘더 시크릿’ 연작에 주목하면서도 머리를 갸우뚱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손으로 만지며 마음으로 공감한다. 조약돌의 배치에 진한 감동과 위로를 전달할 수 있는 가슴 뭉클한 메시지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정작 눈이 밝은 정상인들은 모르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작품에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는 정 작가 작품은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아이러니하고 혼돈이 가득한 현실을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다.
장동근 작가가 5월말까지 충남 천안 복합문화공간인 ‘그레이스7’ 2층 갤러리에서 특별전 ‘THE SECRET’을 갖는다. 이 전시가 의미를 갖는 것은 그동안 종교적인 성향이 내재된 작품에서 벗어나 ‘입체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구김살없이 자란 청년처럼 해맑은 인상을 갖고 있는 장 작가는 ‘팔방미인’이다. 본업은 목사(오병이어교회 담임목사)지만 기성가수와 함께 음반도 낸 가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중견 조각가다.
탄탄대로의 삶을 살아온것 처럼 보이지만 어린시절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알콜중독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던 그는 가수 임희숙의 노래 가사처럼 ‘등이 휠것 같은 삶의 무게’를 견디며 신앙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 그리고 20년간 철과 돌을 소재로한 조각과 입체회화는 그의 스토리있는 삶이 농축돼 더욱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작품제작에 여념이 없는 장동근 작가를 그가 운영하고 있는 천안예술의전당 인근 ‘그레이스7’ 갤러리에서 만났다. 목회자로 일하면서 작품활동을 하다보니 늘 시간에 쫒긴다고 했지만 표정은 차분하고 여유가 흘러 넘쳤다.
-대학 미술교육과에서 조소를 전공했으나 뒤늦게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왜 진로를 미술교사에서 목회자로 변경했나.
“장애를 가진 홀어머니밑에서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취미인 미술로 아픔을 잊었다. 고교졸업후 대학 갈 형편이 안돼 일용직 노동자로 3년간 막노동을 하면서 밤엔 작품제작에 매달렸다. 하지만 알콜중독에 대인기피증까지 겹쳐 대학생활이 엉망이 됐다. 그러다가 신병(神病)을 앓다가 교회에 가서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때 그림도, 미술교사도 포기한건가
“고학을 하면서 신학대학원을 5년만에 마친뒤 전도사 시절인 2004년 고향인 천안에 개척교회인 오병이어교회를 세웠다. 이후 신앙생활에 매진하다가 교회가 어느정도 기반을 닦은 40대 초반에 재능을 살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철을 소재로한 다양한 조각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왜 하필이면 다루기힘든 철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나.
“초창기 ‘찾아가는 전시회’를 열었는데 도자기와 나무 등은 표현의 한계가 있을뿐 아니라 작품을 이동할때 파손될 위험이 많았다. 무엇보다 나는 대학때부터 철의 곡선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만큼 친숙했다. 당시엔 공사판에 버려진 철을 얻어와 ‘부활과 재탄생’을 의미하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작품 사이즈가 커지면서 철재료를 구입해서 사용한다”
-철로 만든 ‘입체회화’작품을 보면 삶과 종교적인 상징적인 표현이 간결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작품을 만들때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가.
“음악을 듣는것도 노래를 하는것도 즐긴다. 작업장에 음향장비를 설치해놓고 음악을 들으며 이밎지가 떠오르면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스케치에 들어간다. 처음엔 종교적인 이미지에 초점을 맞췄으나 지금은 가급적 종교적인 색채를 걷어내고 주제의 스펙트럼을 넓히려 한다”
-4월에 시작하는 특별전에 전시되는 ‘더 시크릿’ 연작을 보면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작품에 어떤 의미가 담겼나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의 마음을 치유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작품 소재로 철도 쓰지만 돌도 사용하고 이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이 글을 읽을때 사용하는 점자(點字)를 입체회화의 포인트로 삼았다. 일반인이 볼때는 독특한 조형적인 느낌을 받겠지만 시각장애인들이 만지면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메시지가 숨어있다. 이를테면 마음으로 봐야 감동이 전해질 수 있다”
- 그렇다면 일반인과 시각장애인들이 동일한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전혀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어린시절 불행한 삶을 살면서 사람들이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이 환경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지금 이 나이가 되보니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시각장애인들이 ‘더 시크릿’을 감상하면 작품의 숨겨진 비밀을 금방 알겠지만 정작 정상인들은 잘 모른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장 작가는 복합문화공간인 ‘그레이스7’도 운영하면서 지역문화발전에 일조하고 있지만 전시가 다소 편중됐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레이스7은 전시공간일뿐 아니라 작은 콘서트와 문화프로그램 장소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전시의 경우 대관은 하지않고 엄정한 심사를 통해 초대전 작가로 선정되면 100만원을 지원한다. 앞으로는 보다 많은 훌룡한 작가들이 전시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할 계획이다”
장 작가는 얼마전 ‘그레이스7’ 갤러리에서 열린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을 집필한 윤혁민(89) 작가의 생신모임에서 빼어난 가창력으로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열창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알고보니 그는 그룹 ‘일기예보’ 출신인 가수 ‘나들’과 음반도 취입했다. 젊은시절 절망의 늪에 빠졌던 그를 구원하고 목회자로, 미술작가로 키운 것은 신앙이 결정적이었지만 조각과 음악 등 예술가적인 DNA도 한몫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