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TV만 켜면 백종원(더본코리아 대표이사)이 등장했다. 그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지 일일이 꼽으려면 열 손가락도 모자랄 판이었다. 어느 방송에선 뉴욕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소개하고 다른 방송에선 시장 골목의 작은 식당 주인에게 대박 날 수 있는 깨알 같은 노하우를 전수했다.
백종원 더본코라이 대표이사 / 홈페이지 캡처
충청도 사투리를 가미한 구수한 입담과 20대 때부터 다져온 ‘장사 천재’의 식당 영업 경험, 웬만한 셰프 빰 질만한 요리 실력까지 장착한 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방송가를 섭렵하며 멀티 엔터테이너로 등극했다. 또 예산시장 컨설팅으로 이곳을 전국구 음식장터 명소로 만들었다.
그래서 25개에 달하는 그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잘 몰라도 ‘백종원’이라는 이름과 얼굴은 유치원생도 알 정도다. 광고업계에서도 백종원은 섭외 1순위의 블루칩이었다. 더본코리아가 증시에 상장하던 날 주가는 샴페인인을 터트릴 정도로 치솟았다. 적어도 한때는.
하지만 백종원은 최근엔 TV 예능 프로그램 대신 뉴스에 실리는 빈도가 잦아졌다. 뉴스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기사가 부각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종 미디어엔 하루가 멀다 하고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추문과 백종원의 잇단 사과 소식이 실렸다. 철옹성 같았던 그의 인기와 명성에 금이 가는 듯한 분위기다.
백종원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억울할지도 모른다. 브랜드 관리와 직원 교육이 부실했다는 질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가 개인적으로 물의를 빚은 적은 없다. 일부에선 미디어가 더본코리아에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한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는 백종원이 기업인이라는 본분을 망각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는 방송인이 아닌 사업가지만 경영보다는 방송에 치중했다. 이에 대한 그의 변명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그는 자신이 방송에 나가면 회사 홍보에 기여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광고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같은 전략은 '양면의 칼'로 작용한다. 백두산 천지만큼이나 높아진 ‘백종원’의 인지도를 앞세워 회사의 성장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지만 ‘오너 리스크’가 발생하면 더본코리아 브랜드 전체가 타격을 입게 된다. 더구나 상장으로 자본 확보는 유리해졌지만 경영 정보 공시와 투명성을 요구받는다. 사소한 잘못도 더 큰 잘타를 받게 된다. 바로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사실 더본코리아는 ‘백종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과대포장됐다. 더본코리아 브랜드는 총 25개에 가맹점은 2771개에 달한다. 지난해 총매출액은 4641억5100만원인 것으로 보도됐다. 프랜차이즈 기반의 '외식사업'과 HMR, 가공식품, 소스 등 '유통사업', 제주도 더본호텔매출을 포함한 것이다. 그나마 매출의 37% 안팎이 빽다방에서 나온다.
더본코리아 매출은 국내 치킨업체 1위인 bhc 매출(5127억원)은 물론 메가커피를 운영하는 앤하우스(4660억원)의 매출에도 못 미친다. 브랜드 개수는 관리하기 벅찰 만큼 많지만 지난해 매출 1600억원 안팎을 찍은 빽다방을 제외한다면 ‘똘똘한 브랜드’하나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사업가의 본분은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확보할 수 있는 알토란 같은 스테디셀러 브랜드를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더본코라아는 홍콩반점, 새마을식당, 한신포차, 역전우동 등 기반이 허약한 군소 브랜드만 잔뜩 보유하고 있다. 브랜드는 뚝딱뚝딱 잘 만들지만 관리가 소홀해 ‘백종원’을 믿고 계약한 가맹점들이 실망을 안기면서 폐점률도 업계 평균보다 높다.
외식 브랜드 관리를 잘하려면 음식의 맛과 품질에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마진을 높이기 위해 원칙과 기준을 버린다면 고객이 다시 찾을 리 없다. 폐점율 0%대인 교촌치킨 권원강 회장은 ‘저가는 고객을 불러오지만 가치는 고객을 머무르게 한다’며 “고객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힘은 가격이 아니라 가치에서 나온다”고 했다.
대표이사가 경영보다 방송에 치중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칙과 기준이 무너지고 여러 브랜드가 상처를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백종원’의 이미지가 추락하면 회사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백종원’의 정체성은 방송인이 아니라 기업인이다. 대표이사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면 회사 경영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가맹점주와 임직원들 나아가 더본코리아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방송인으로 특출난 재능을 살려 회사에 도움을 주고 싶다면 경영능력이 탁월한 검증된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회사 경영관리는 물론 미래전략 수립에 전권을 주면 된다. 그러면 백종원은 부담 없이 방송에 전념할 수 있다.
백종원은 최근 방송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기업인으로서 집중하겠다고 했다. 때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젠 회사의 체질을 바꾸고 브랜드 가치를 높여 자신의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이번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백종원’은 한낱 거품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