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감각이 아니라 마음으로 먼저 맞이한다는 말이 있다. 이 날따라 유난히 파란 하늘에 햇볕이 부드럽고 화사한 한탄강에서 새삼 실감했다.
한탄강 권역에 있는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포천은 겨울이면 철새도 움츠릴 만큼 동장군(冬將軍)의 위세가 대단한 고장이다. 하지만 경칩도 되기 전에 봄이 찾아왔다. 설사 변덕스런 꽃샘추위가 닥친다 해도 겨울은 이미 떠난 듯하다.
28일 마이힐링로드가 찾은 포천 한탄강 주상절리길 4코스 멍우리길 들머리인 화적연은 여전히 냉기를 품고 있지만 강가에 선 내 마음속엔 '봄'이 들어왔다.
한탄강변 거대한 물개가 누워있는 듯한 화적연은 최동훈 감독의 영화 '외계+인'에도 등장하지만 영상이나 사진보다 티끌하나 섞이지 않은 눈부신 햇살을 받은 실물은 더 기이하다. 조선시대 최고의 풍경화가인 겸재 정선은 금강산 가는 길의 명승을 그린 화첩에다 화적연을 그림으로 남긴 것을 보면 강한 인상을 받았을 터다.
화적연에서 멍우리협곡 출렁다리까지는 내내 한탄강을 굽어보며 걷는 숲길이다. 가뭄이라지만 겨우내 얼어붙었던 강물이 녹아내려 물소리는 제법 경쾌하다. 줄기가 말라비틀어져 얼기설기 누렇게 지봉을 이룬 나무 곁에는 꽃망울이 부픈 물오른 나무가 대조를 이룬다. 환절(換節)의 길목이 담아낸 풍경이다.
송진내음이 가득한 소나무숲길을 빠져나오면 하늘에 걸쳐있는 멍우리협곡 출렁다리가 보인다. 이 다리를 건너면 마힐로가 7년 전에 걸었던 한탄강 주상절리길 3코스 벼룻길로 이어진다. 완만하고 평탄해 걷기엔 편하지만 협곡 아래 억겁의 세월이 빚어낸 비경은 볼 수 없다.
마힐로는 코로나팬데믹 이후에 오픈한 멍우리길로 직진했다. 멍우리길은 벼룻길보다 난도가 높다. 해빙기에 산비탈에 쏟아진 돌무더기가 강길을 덮은 통제구역도 있고 오르막내리막이 수시로 등장해 가뜩이나 포근한 날씨에 진땀을 흘리게 하지만 협곡을 휘돌아 흐르는 한탄강 뷰는 주상절리와 어우러져 보기 드문 절경을 뽐낸다.
하늘다리를 거쳐 도착한 멍우리길 시그니처 풍경인 비둘기낭폭포는 협곡아래 숨어있다. 하지만 가뭄 때문에 물이 말라 폭포수를 볼 수는 없다. 초행인 회원들에게 환상적인 정취를 못 보여줘 못내 아쉬웠지만 에메랄드 빛 신비로운 용소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천연기념물 제537호로 드라마 '추노'와 '선덕여왕', '킹덤'의 촬영지로 주목을 받았던 현무암 침식 폭포의 아우라는 여전히 살아있다.
2월의 마지막날에 걸은 화적연~비둘기낭폭포 코스는 겨울과 봄이 혼재한다, 겨울의 잔재가 풍경을 붙잡고 있지만 '동토(凍土)의 강' 한탄강은 약동하는 봄의 품고 있다. 영어의 '스프링'이 아닌 우리말'봄'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마힐로는 오로지 한탄강에서만 누릴 수 있는 '봄'의 정취를 마음껏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