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아우성치는 '호수위 화원'
전북 임실 옥정호 마실길
마치 장범준의 노래 '벚꽃 엔딩'의 한 대목처럼 벚꽃이 봄바람에 휘날려 꽃비처럼 흩날린 날이다. 마이힐링로드가 9년 만에 전북 임실 옥정호를 찾았다. 하늘은 해맑은 아이 얼굴처럼 ‘잡티’하나 없이 쾌청하고 호숫가에 터널을 이룬 벚꽃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지난 주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곳이 옥정호다. ‘뽕나무밭이 변해서 바다가 됐다’(상전벽해 / 桑田碧海)는 고사(古事)가 떠오를 만큼 최근 5년 사이 드라마틱 하게 달라졌다.
마힐로는 2017년 가을 옥정호 물안개길을 걸었다. 그때 그 길은 순도 100% 자연친화적인 길이다. 완만한 구릉을 따라 마을이 앉아 있고 포근한 분위기의 숲이 호수를 감싸고 있었다. 길을 걷다 깨밭에서 타작하는 소리를 들으며 고소한 들깨 내음을 맡고, 진한 향이 코 끝을 간질이는 구절초 군락을 마주쳤다.
대나무숲은 터널처럼 짙은 그늘을 드리운 채 이어져 있고 햇살에 반짝이는 영롱하고 조용한 호수가 붓끝처럼 세모 반듯한 문필봉(文筆峰)을 비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붕어섬은 ‘버려진 불모의 땅’으로 존재조차 희미했다.
하지만 주말 마힐로가 걸은 마실길은 전형적인 관광친화적인 길이다. 섬진강댐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절해고도(絶海孤島)처럼 고립된 땅은 ‘붕어섬’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면서 땅의 운명이 바뀌었다.
6만 6000여㎡에 달하는 붕어섬엔 2022년 10월 길이 420m, 폭 1.5m의 출렁다리가 개통되면서 임실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마힐로는 이날 국사봉 1, 2전망대에 올라 옥정호와 붕어섬 뷰를 눈에 담은 뒤 마실길의 역방향 날머리인 어리동정류장에서 출발했다. 어리동까지 가는 도로 주변은 벚꽃 터널이 눈이 시릴만큼 흐드러지게 피었다.
어리동 숲길은 제법 운치있다. 나뭇가지엔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평화롭고 고즈넉한 숲길이다. 숲길에서 호숫가로 내려가면 수변 데크길과 연결돼 입석마을을 거쳐 옥정호 출렁다리로 이어진다.
데크길을 걸어 40여분 만에 도착한 출렁다리앞 광장은 마침 벚꽃축제 개막과 겹쳐 탐방객들로 인산인해다. 가설무대에선 잡다한 음악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전혀 원하지 않은 산만한 풍경이었지만 왕벚꽃, 튤립, 수선화 팬지, 꽃잔디가 화사하게 핀 출렁다리 인근 요산공원과 전문가의 솜씨로 형형색색 꽃대궐을 이룬 붕어섬을 걸으면서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붕어섬엔 구릉지의 초화원, 수변 산책로, 하늘바라기 쉼터, 숲속 도서관, 갤러리 정원, 잔디 마당 등 걷기편한 테마공원 산책로가 조성됐다. 미로처럼 여러 갈래로 이어진 길은 5.6km에 달한다.
삼삼오오 길을 걷거나 셀카를 찍는 탐방객들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5월엔 장미 정원과 작약 꽃밭이 만개를 앞두고 있다. 섬은 그야말로 ‘미운 오리새끼’에서 ‘화려한 백조’로 재탄생한 분위기다.
마힐로는 붕어섬 탐방을 마친 뒤 출렁다리 중간에 위치한 83m의 주탑에 올라 어섬을 돌아 본 뒤 호수 위 윤슬이 시선을 자극하는 2km의 수변테크길을 걸어 전승공원에서 도보여행을 마무리했다.
도보여행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인공미’가 가득한 관광친화적인 길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같은 꽃이라도 들꽃을 더 선호한다.
하지만 때로는 옥정호 요산공원과 붕어섬같은 길도 즐거움을 준다. 솜씨 좋은 원예사가 가지런히 식재한 제철 꽃들이 꽃망을을 터트리며 아우성치는 아름다운 '호수 위의 화원(花園)'을 이때 아니면 언제 또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