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없는 나라 라오스 콕사앗 소금마을 풍경.

by 박상준


해발 4천m가 넘는 고원지대에 사는 티벳 사람들의 신산(辛酸)한 삶을 다룬 EBS 다큐멘터리‘차마고도(車馬高道)’에는 소금밭 염정(鹽井)이 나온다. 염정은 바다의 융기 덕분에 내륙이 된 티벳 란창강 강물로 소금을 만드는 옌징 홍염마을에 있다.


강가 지하수를 양동이에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날라 나무 구조물로 만든 소금밭을 일구는 티벳 여인들이 거칠고 억척스러운 삶을 보면 경외감이 느껴진다. 소금은 이들에게 ‘신의 선물’이다. 이들은 황량하고 척박한 오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금 때문이다.




흔히 소금생산은 바닷물을 원료로 하는 천일제염법을 연상하지만 랑창강변 홍염마을처럼 지하수(지하 200m)를 끌어올려 소금을 생산하는 암연(巖鹽)도 있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근교에도 암염으로 소금을 만드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서울 변두리에 염전이 있는 셈이다. 이곳은 내륙지역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제법 규모가 큰‘콕사앗’마을 염전이다. 지금은 연륙교가 있는 서해안의 섬, 증도의 바닷가 염전을 연상케 한다.


아마 이곳은 수만 년 전에 바다였을 것이다. 이 때문에 지하수는 짠맛이 나는 간수가 올라와 식수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을주민들은 소금기가 있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전통적인 방식으로 염전을 일구고 소금을 만들었다.

항구도, 철도도 없고 변변한 공장도, 커다란 농장도 없는 빈곤한 나라 라오스는 공산품을 물론 식료품도 대부분 수입과 원조에 의존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금만은 자급자족한다.




콕사앗 주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으로 소금을 생산해 라오스 전 지역에 공급한다. 차마고도 홍염마을은 소금을 만드는 전 과정을 여자 혼자 감당하지만(남자들은 차와 소금을 말에 싣고 차마고도로 불리는 수백km의 험준한 강 길과 산길을 걸어 도시 시장에서 생필품과 교환한다)콕사앗 마을 주민들은 온 가족이 새벽같이 일어나 소금생산에 매달린다. 물론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따라 나선다.


콕사앗 염전에 들어서면 실망스럽다. 비엔티안의 입장료 안드는 패키지 여행코스이기도한 염전에 오래 머무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 소금창고는 다쓰러질 듯 낡고 흙길엔 먼지가 풀풀 날리며 소금밭은 단조롭다.


바다가 없는 내륙마을의 염전이라는 호기심만으로 관광객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을 터다. 하지만 안으로 깊숙이 뻗어있는 염전과 소금창고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바라보면 매력적인 풍경에 빠지게 된다.




소금밭에 지하수를 퍼 올린 물을 부어놓으면 뜨거운 남국의 햇살에 물기가 마르며 소금결정체가 서서히 하얗게 드러난다. 마을주민들에겐 고생스런 삼의 애환이 스며있는 터전이지만 소금밭 풍경은 그림처럼 시선을 잡아당긴다.

이 소금을 온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와 밀대로 밀어 중간 중간 쌓아놓는다. 한창 학교 다니거나 멋부릴 나이인 10대 여학생이나 20대 처녀들도 소금밭에서는 남자 못지않은 귀한 일꾼이다. 20대 초반인 가녀린 몸매의 처녀는 소금밭에서 ‘선머스마’처럼 맨발로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사진 찍는 나를 소박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이렇게 쌓아놓은 소금을 마을 장정들이 손수레를 이용해 장작불로 펄펄 끓는 철판위로 옮긴다. 고품질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염전노예’가 사회문제가 될 만큼 ‘극한직업’이지만 이곳 주민들은 햇볕이 따갑고 짠내 나는 소금밭에서 온 종일 일하면서도 표정이 밝다.


요즘처럼 비가 내리지 않는 라오스 건기(乾期)엔 염전도 성수기다. 쌓아놓은 소금을 손수레로 나르는 마을주민들은 대부분 맨발로 일하고 있지만 힘든 내색 없이 일에 집중했다.




소금물이 흘러 밀가루를 풀어놓은 듯 물색이 하얗게 변한 염전 옆 도랑풍경은 무척 생경했다. 소금기 때문인지 도랑에는 수초(水草)도, 물고기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황톳길 옆 나무로 얽기 설기 만든 낡은 창고로 들어서면 소금을 가열시키는 재래식 소금공장을 설치했다.


염전에서 햇볕으로 말린 소금을 대형 사각형 철판에 부은 후 다시 나무 장작으로 20시간 끓이면 살균처리가 된 소금만 남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이를 대나무 바구니에 넣고 남은 물기마저 완전히 제거하면 양질의 ‘천일염’을 얻을 수 있다.


품질좋은 소금을 얻으려면 소금물을 오랫동안 저어줘야 할 만큼 고된 노동이 뒤따른다. 염전에서 막 가져온 탁한 소금덩어리위의 파란바구니에 담겨진 정체된 양질의 순백색 천일염은 뽀얗게 빛난다.


소금밭 끝에 줄지어 선 낡은 소금창고는 콕사앗 소금마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알려준다. 그 옛날 이곳에 정착한 마을 주민들은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지하수에 절망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지하수가 소금을 만들고 돈을 벌어다주는 귀한 물이 됐다. 소금을 만드는 과정이 고생스러워도 지하수는 마을주민들에게 삶을 지탱해주는 생명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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