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60대 중반의 사업가는 젊은 시절부터 경영하던 지방의 작은 건설회사 두 곳을 직원들에게 맡기고 라오스에서 3년째 살고 있다.
그는 라오스로 떠나기 전 두 곳 회사에서 매월 일정액의 급여를 받는 대신 나머지 이익은 모두 직원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적자가 난다면 직원들이 감수해야 할 일이다. 그는 육십이 넘어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적인 기반을 찾자 매년 열 번 정도 지인들과 함께 골프백을 들고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로 놀러 다녔다. 이를테면 그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 '희랍인 조르바'의 조르바처럼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골프와 술을 좋아하고 늘 연애를 꿈꿨다. 아무 때나 떠나고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이를 위해 그는 하루 만보 걷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체력관리를 했다.
그런 그가 정착한 곳이 라오스였다. 그곳에서 친분을 맺은 라오스인의 명의로 수도 비엔티안의 고급 맨션도 임대하고 스타렉스도 구입했다. 그의 수입을 정확히 공개할 수 없지만 라오스 공무원 월평균 소득의 30배 정도 된다. 그러니까 그는 라오스에서 상류층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위치다.
그는 일 년에 네 번 정도 한국에 들어온다. 언젠가 고향을 찾은 그와 식사를 하면서 왜 다른 나라도 아니고 라오스인지 물어봤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이 바로 라오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마살이 낀 그가 터를 잡은 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어떤 매력이 있기에 그를 주저앉혔을까. 내가 라오스를 간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메콩강변 작고 허름한 호텔
친구 세 명과 함께 (코로나19가 발생하기 한 달 전인 2019년) 1월 중순 라오스로 출발했다. 7일간 일정이다. 겨울방학이 낀 1월은 여행 성수기다. 그래서 항공료도 비수기에 비해 30% 정도 비쌌다. 하지만 넷의 일정을 맞추려면 1월 밖에는 시간이 없었다. 국적기에 비해 저렴한 저비용항공사를 택했다.
비좁은 의자에 앉아 기내식으로 나오는 주먹밥을 먹으며 다섯 시간을 날아갔다. 가는 길은 지루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도착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라오스는 그리 덥지는 않았다, 비엔티안 공항은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규모는 청주 국제공항과 비슷하다.
우리가 닷새간 묵을 호텔은 공항에서 불과 10분 거리인 메콩강을 바라보고 있는 5층짜리 작고 오래된 호텔이다. 콘크리트 구조에 외관이 라오스식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고풍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시설은 낡았다. 내부는 마치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관공서처럼 대리석 바닥에 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었다.
싱글 침대 2개가 있는 방은 벽을 흰색으로 칠하고 천정이 높아서 인지 열대지방임에도 왠지 썰렁한 분위기를 풍겼다. 방안의 유일한 전자제품은 LG전자가 금성사였을 때 생산된 작은 TV 뿐이었다. 그 TV에서 의외로 연합뉴스 TV가 잡혔다.
메콩강의 석양
그나마 이 호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5층 레스토랑이었다. 방비엥을 다녀왔던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아침식사를 해결한 이곳은 메콩강 쪽을 향해 레스토랑이 위치해 있는데 홀 3분의 1을 발코니가 차지했다.
그래서 유럽인이 대부분인 손님들은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을 접시에 담아와 발코니 식탁에서 메콩강의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했다.
메콩강 너머에는 농차이라는 태국의 작은 도시가 보였다. 이 발코니는 무엇보다 메콩강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강의 하류를 따라 붉은 해가 넘어가는 황홀한 광경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한국 같으면 파리를 날릴 이 낡고 허름한 호텔은 늘 외국인들로 꽉 찬다. 내부 시설이 우리나라 여관에도 못 미칠 만큼 보잘것없는데도 손님이 많은 것은 전망 좋은 메콩강변에 있기도 하지만 강변에 늦은 밤까지 노천식당이 줄지어 서있는 비엔티안의 핫 플레이스이기 때문이다.
강변을 따라 1km 남짓 노천식당이 이어지고 옷과 공예품을 파는 야시장도 형성돼 있다. 뿐만 아니라 강변 둔치엔 부모 손잡고 온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미니 테마파크도 불야성을 이룬다. 그래서 밤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온 젊은이들과 연인들, 중산층 가족들, 반바지 차림의 유럽 관광객들로 쾌 붐빈다.
메콩강변 노천식당
라오스에 머무는 동안 현지인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었다. 항공 티켓만 끊고 왔으니 충분히 가능했다. 일어나고 싶을 때 기상하고 식당은 맛있다는 곳을 찾아다녔다. 골프를 치는 친구 2명은 골프장으로 향했고 나와 한 친구는 도심의 프랑스인이 주인인 카페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거나 백화점이나 전통 사원을 구경했다.
비엔티안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조용한 수도다. 프랑스 식민지배 기간 동안 도시가 정비되긴 했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 외부 세상과 단절된 채 빈곤한 나라의 수도로 명맥만 유지해왔다.
밀레니엄 이후 도로가 포장되고 빠르게 도시화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발전이 더딘 우리나라의 지방 소도시 같은 인상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비엔티안은 동남아시아 수도중 가장 낙후된 도시 일 것이다. 인구가 82만 명이라고 하지만 시내 인구는 20여만 명 정도고 나머지는 외곽이 사는 듯했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 중심가의 개선문
도심의 번화가를 찾아갔다. 고층빌딩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3층 이상의 현대식 건물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건축된 듯 수십 년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길거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전봇대였다. 검은 전선이 수백 개가 연결돼 있어 보기 흉할 정도였다. 자동차가 들이받아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대형 정전사고가 우려됐다. 왜 저렇게 지저분하고 위험하게 방치할까 의문이 들었다.
도심의 거리는 낮엔 한산했지만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오후 4시쯤에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좁은 도로에 오토바이와 차들이 엉켰다. 일과를 끝낸 사람들은 도심의 상가 앞에 저녁때만 영업하는 노천 음식점에서 술자리를 갖거나 과일주스나 야식을 즐겼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외국인에게도 대체로 친절한 편이었는데 특히 일본인에 비해 한국인에게 우호적이었다. 현지에 사는 교민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한류의 열풍도 있지만 한국 관광객들이 돈을 잘 쓰는 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돈 냄새 풍기는 과시형 관광객이 많은 것이다. 유럽인들과 일본인들은 불필요한 소비는 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렸다.
라오스 쌀국수
맛 집으로 소문난 쌀 국숫집도 가보았다. 시내 중심가의 규모가 제법 큰 식당이었다. '도가니 쌀국수'를 시켰다. 느끼할 것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매콤한 양념과 함께 레몬을 짜서 뿌리고 야채를 뜸뿍 넣은 도가니 쌀국수는 기대 이상으로 입을 즐겁게 했다.
한국에 있는 프랜차이즈 쌀국수보다 훨씬 맛있고 가격도 저렴했다. 한 그릇에 1달러 50센트 남짓했다. 덮밥, 볶음밥도 가격은 비슷했고 라오스 전통 요리도 5달러 안팎이면 실컷 먹는다. 그나마 비싼 음식이 한식과 프랑스·이태리 음식으로 보통 10달러 안팎이었다.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카페
이 나라에서 가장 흔한 태국 프랜차이즈 카페인 '아마존 카페'의 아메리카노 한 잔이 1달러 정도니 적은 돈으로 푸짐하게 식사를 하고 차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공산품을 보면 최빈국의 안쓰러운 현실이 담겨있다. 비엔티안 최고급 백화점은 얼핏 보면 그럴듯하게 꾸며놓았지만 대형 상가나 다름없다.
입구에는 북한이 운영하는 '금강산식당' 미모의 접대부들이 낮에만 나와서 산삼주를 팔고 있었다. 고객은 주로 한국 관광객이라고 한다. 하긴 이 나라 물가 수준으로는 비싼 산삼주를 마실 라오스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1층 화장품 코너는 구색도 거의 없고 물건엔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나마 일층은 고객은 별로 다니지 않아도 불을 환하게 켜놓았으나 2층은 조명의 절반을 꺼놓아서 어둠침침했다.
소득 수준이 낮은 라오스인들이 자주 올 것 같지도 않았다. 중산층들은 메콩강 너머 태국 국경도시 농차이로 장 보러 가고 상류층들은 태국 방콕이나 베트남 사이공 하노이, 홍콩 등 인접한 외국으로 나가서 쇼핑한다고 한다.
이 나라의 경제 수준을 보면 이해할 수도 있다. 소위 글로벌 기업은 전혀 없고 대기업을 찾기 힘들다. 그나마 손에 꼽는다면 한국계 회사로 연매출 1조 원 규모의 '코라오그룹'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간신히 굴러다니는 폐차 직전의 중고차를 싼값에 사서 라오스 인들에게 팔아 돈을 번 오세영 회장이 2009년 설립한 코라오는 자동차 조립, 판매사업을 시작해 바이오 에너지, 전자유통, 건설, 금융, 레저 등 8개 분야에 진출해있다.
지금은 현대·기아차를 수입 판매하고 있으며 코라오 모터사이클을 통해 오토바이 시장에서 35%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현지에서 조립 생산하는 트럭 브랜드 ‘대한’도 출시하고 있다.
코라오는 라오스 경제에서 11%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라오스 내의 최대 기업으로 손꼽힌다. 뿐만 아니라 코라오는 라오스 청년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민간기업이기도 하다.
코라오 외에는 대기업이 없다. 평균수명이 짧아 30세 이하의 인구비율이 절반이 넘는 젊은 나라에 속하지만 능력을 갖춘 청년들이 취업할 만한 번듯한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라오스 정부가 베트남처럼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내륙 국가이다 보니 항만도 없고 그 흔한 철도조차 없는 교통인프라가 극히 낙후된 라오스는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여건도 안돼 있다.
수치상으로는 매년 8% 이상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고 하지만 비엔티안의 도심을 지나다 보면 역동적이라고 할 만한 활력을 느낄 수 없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도로와 공공시설은 모두 외국의 원조로 건설됐다.
도심에는 비즈니스 빌딩을 거의 볼 수 없으며 비엔티안 주변엔 광활한 땅들이 놀고 있다. 러시아워 때엔 시내에 승용차와 오토바이로 혼잡하지만 변두리 도로엔 중앙선도 없고 신호등이라야 대통령궁 인근에만 몇 개가 설치될 정도니 교통질서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색할 정도로 무질서하다.
비엔티엔 근처 배를 타고 식사할 수 있는 식당
인구도 7백만 명 수준으로 경제규모도 작고 열악한 교통인프라와 낙후된 제도를 본다면 글로벌 기업들이 공장을 짓거나 유통 거점을 마련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을 것이다.
라오스의 경제구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농업(26%)도, 공업(34%)도 아닌 서비스업(40%)이다. 그래서 관광산업이 그나마 '달러박스'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란쌍왕조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 아름다운 카르스트 지형을 배경으로 배낭 여행자들의 천국인 '방비엥', 여유롭고 한적한 섬 풍경이 돋보이는 '씨판돈'에 가보면 나라 규모에 비해 관광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념 있고 미래지향적인 국가지도자라면 관광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해 관광수입을 늘릴지 고민할 것이다. 토양이 열악해 농업을 육성하지 못하고 공업국으로 성장하기가 한계가 있다면 관광분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라오스 대중교통수단인 툭툭이
하지만 이 나라는 그런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실례로 비엔티안에서 방비엥까지는 거리가 160km다. 땅덩어리가 큰 미국과 중국 기준으로는 옆 동네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면 자동차로 1시간 40분이면 주파한다. 하지만 라오스에선 4시간 이상 걸린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도로 사정이 엉망이라 중앙선도 없는 구불구불한 산악지대를 달릴 때는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나마 방비엥은 약과다. 루앙프라방까지는 자동차로 8시간이 걸린다. 한숨이 나온다. 여행 가이드는 "라오스에선 느린 삶이 아주 자연스러운 슬로라이프를 추구하라"고 친절하게 안내하지만 이런 식으론 국민들도 덕을 못 보고 나라살림에도 보탬에 안된다.
라오스처럼 인구도 적고 내륙국가인 스위스가 어떻게 해서 관광대국이 됐는가. 아름다운 자연환경의 보존과 개발에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스위스도 라오스처럼 강대국 틈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로 지냈으며 산악지대가 많아 땅이 척박했다. 하지만 역발상 전략으로 20세기 초에 터널을 뚫고 산악철도를 건설해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 모았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융프라우는 노약자도 편리하게 오를 수 있다, 스위스는 산림면적이 강원도보다 작은 규모지만 관광산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매년 40조 5천억 원에 달한다. 사업가의 창의적인 발상과 성실한 국민성, 국가지도자의 리더십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비엔티안 부근 재래시장 과일가게
반면 '은둔의 땅' 라오스는 접근성 때문에 관광객 수요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막상 관광객이 찾아와도 관광수입으로 국가재정에 기여할 수 있는 시스템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어떤 측면에서 정부가 나서서 관광산업 육성을 억제하는 듯한 인상도 받게 된다.
비엔티안에 13년 거주한 한 한국 교민은 "라오스가 재정도 부족하지만 GNP가 높으면 해외 원조를 받지 못할까 봐 일부러 팔짱만 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다. 이 와중에 중국이 라오스에 자본을 투자하면서 경제·외교적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이런 나라에선 국민들이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이 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높다고 하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집권층의 마인드가 이런 식이니 라오스 사람들에겐 교육에 대한 열의를 찾기 힘들고 청년들에게 꿈도, 야망도 보이지 않는다.
교육 수준이 떨어지고 직업군이 한정된 하향 평준화된 사회에선 청년들에게 진취적인 도전정신을 기대할 수 없다.
메콩강 노천식당에서 춤추는 라오스인 처녀
워낙 기업이 없으니 양질의 일자리도 없고 공무원은 급여가 낮을 뿐 아니라 때로는 급여가 밀리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진다.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청년들은 거의 몸 쓰는 일만 하다 보니 손에 쥐는 돈이 뻔하다. 메콩강변 노천식당은 밤늦게 까지 흥청거리지만 이곳엔 라오스인은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젊은 여성들 중에는 어엿한 직장인도 있지만 외국인을 만나 50달러라도 받을 수 있다면 언제든 어떤 데이트에도 응한다. 이런 여성들은 비엔티안 백화점이나 방비엥 카페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의 은퇴한 사업가는 싼 맛에 골프와 온갖 유흥을 즐길 수 있는 이 나라에 푹 빠졌다. 북한처럼 폐쇄된 나라라면 모를까 글로벌 시대에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되고 해외 관광객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신들의 처지를 실감하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라오스 지도자가 국가개조를 위해 베트남의 '도오모이 정책'처럼 혁신과 개혁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세계 최빈국중 하나인 이 사회주의 국가는 과연 변할 수 있을까. 짧은 기간 라오스에서 머물며 이 나라의 미래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평균 연령이 낮지만 경제적 활기를 잃은 나라, 젊어서 더욱 슬픈 라오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