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시절인 2017년 가을,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을 때 화제를 모은 것 중 하나가 만찬 메뉴다. 청와대는 '구황작물 소반'과 '독도 새우'를 식탁에 올린 반면 일본이 대접한 음식은 햄버거였다. 그것도 320g의 미국산 소고기 패티 2장이 알차게 들어간 빅사이즈 먼치스 버거. 메뉴엔 당시 한^일 양국 정부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192cm 장신에 '한 덩치'하는 트럼프에게 햄버거는 최애 음식이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 때 CNN과의 인터뷰에서 맥도널드 필레오피시와 쿼터파운더 치즈 햄버거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햄버거가 ‘정크 푸드(쓰레기 음식)’가 아니라 외려 믿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6,500원짜리 쿼터파운더 치즈버거 세트>
맥도널드에서 6천500원에 파는 쿼터파운더 치즈버거 세트는 배우 하정우도 영화 '신과 함께' 시사회 기자회견에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라고 밝혀 함께 자리한 배우들을 웃겼다. (다른 배우들은 어머니 또는 할머니의 손맛이 듬북 담긴 음식을 꼽았다)
가격이 저렴하고 드라이브 스루에서 주문하면 5분 안에 포장될 만큼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로 불렸던 햄버거는 질 낮은 식자재로 한동안 정크 푸드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요즘 햄버거의 위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프리미엄 햄버거는 맛과 신선한 재료로 까다로운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폴트버거’ ‘바니시버거’ ‘엘더버거’등 ‘세프’들이 선보이는 수제버거 맛집이 속속 등장하고 교촌치킨(리얼리 치킨버거), 채선당(메이크버거), 미니스톱(슈퍼바이츠), 노브랜드(노랜드버거)등도 햄버거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햄버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끔 맥도널드나 버거킹에서 5천 원 안팎의 세트 메뉴를 사먹다가 얼마 전 방문한 대학가 수제버거집의 가격에 살짝 놀랐다. 까르보나라 소스를 토핑 한 졸라피노 버거를 주문했더니 가격이 음료수 포함 1만 2천 원에 20분 정도 걸렸다. 하지만 맛은 만족스러웠다. 신선한 채소를 곁들인 구운 파인애플, 구운 양파는 아삭했고 BBQ패티엔 육즙이 가득했다. 이러니 가격이 안 비쌀 수 없다.
미국 뉴욕 일대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쉐이크쉑의 국내 진출도 햄버거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놓았다. SPC그룹이 들여온 쉐이크쉑은 세트메뉴 기준으로 1만 원이 훌쩍 넘지만 벌써 국내에 20호점을 돌파했다.
31,000원짜리 고든 랜지 버거
햄버거 가격의 정점(頂點)은 축구선수 출신 스타 세프가 출시한 ‘고든 램지 버거’가 찍을 것으로 보인다. 오는 30일 임시 개장(정식 개장은 내년 1월 7일)하는 ‘고든 랜지 버거 레스토랑’의 대표 버거 가격이 3만 1천 원이다. 같은 메뉴가 미국에선 17.99달러(약 2만 원)에 팔려 가격차별 논란을 겪고 있는 것 과는 별개로 아무리 프리미엄 햄버거라지만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신라호텔 망고 빙수가 한 그릇에 6만 4천 원에 팔리는 것과 비교하면 한 끼 식사인 램지 버거를 무작정 비싸다고만 할 수 없다. 오로지 소비자의 기호와 선택에 달린 문제다.
햄버거 마니아 중엔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억만장자 워런 버핏도 있다. 버핏은 출근길에 맥도널드에 들러 아침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는 2017년 미국 케이블 채널 HBO와의 인터뷰에서 “세 가지 모닝 세트 중 소시지 패티 두 장이 들어간 2달러 61센트(3천 원) 짜리 메뉴를 주로 주문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만 91세인 버핏이 여전히 건강한 것을 보면 햄버거가 정크푸드라는 말은 편견일 수가 있다. 그나저나 콜라와 감자튀김과 함께 햄버거를 맛있게 먹으며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3천 원이든 3만 원이든 가격이 뭔 상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