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가족 계획’

충남 논산 선샤인랜드의 '1950 낭만스튜디오'에서.

by 박상준

충남 논산 탑정호수에 가는 길에 들린 테마파크 선샤인랜드의 ‘1950 낭만스튜디오’는 시대극 촬영명소를 관광지로 꾸며놓은 곳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대를 재현했다고 하지만 1970년대 초반의 지방 소도시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얼핏 보면 그럴듯한 세트는 조잡하긴 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흑백 필림같은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명절에 개봉영화가 상영되는 날이면 매표구 앞에 줄을 섰던 중심가의 단관극장, 서민들에게 따뜻한 한 끼로 마음을 위로했던 국밥집, 쇼윈도에 걸린 화려한 원피스로 여심을 자극했던 양장점 등 낡고 조악한 건물은 공간적 배경은 다를지언정 몹시 낯이 익었다.

적산가옥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으며 신기해하던 청년세대에겐 조선시대 만큼이나 먼 과거의 흔적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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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전란의 여파를 보여주기 위해 파손된 채 복구되지 않은 건물은 전쟁의 비극을 웅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내 눈에 띤 것은 건물 여기저기에 붙은 표어였다. '자신의 사치가 국토통일의 방해', '예식은 엄숙하게 차림은 간소하게'등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검소하게 사는것과 국토토일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을까. 신랑^신부도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같은 분위기의 요즘 결혼식장을 반세기 전 어르신네들은 상상하긴 했을까.

국가시책을 집약시킨 표어는 시대상(時代相)을 반영한다. 당시엔 절박한 현실을 담고 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황당한 내용이 많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병원 앞에 걸린 살벌한 표어다. 당시 정부가 아예 한 명도 낳지 말라는 의미로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것은 아닐 것이다. 가급적이면 한 두명만 낳으라는 뜻일 테다.

그때는 인구증가가 심각한 문제였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60년대 초까지 연례행사처럼 춘궁기 ‘보릿고개’를 겪었다. 자식이 많은 빈농은 식구들 모두 굶주리기 일쑤였다. 농업국가임에도 열악한 식량 사정 때문에 도시 서민들도 힘겨운 시기였다. 그 때 보건사회부는 대한가족계획협회와 함께 ‘신혼부부 첫 약속은 웃으면서 가족 계획’이라는 표어를 거리에 붙였다.

부부간 사랑뿐만 아니라 생식능력도 왕성한 신랑^신부에게 피임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정부가 나서서 산아제한을 강요했으니 잠자리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 우리나라 신생아는 60만 명에 육박했다. 난리 통에도 인구는 꾸준히 증가한 셈이다. 흔히 거론되는 ‘58년 개띠’는 무려 9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은 연간 신생아 수가 27만 명대로 반토막이 났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을 거쳐 선진국대열에 합류해 먹고 살만해 졌으나 비혼이 늘고 젊은 부부는 출산을 기피 한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10년간 100조 원 이상을 썼는데도 도무지 전혀 성과가 없다. 외려 인구가 빠른 속도로 감소하는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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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정책 실패가 잇따르면서 청년들의 결혼 포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반기업 정서로 양질의 일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인천공항공사 사태가 보여주 듯 공정한 취업 기회를 박탈하면서 청년들이 좌절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고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급등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도무지 출산율이 높아질 수 없는 구조적인 현실이 인구재앙을 부채질하고 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인구 대책을 발표한 후보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인구가 줄면 경제활력이 떨어지고 국가가 쇠락해진다. 저출산의 재앙이다.

끼니를 걱정해야 할만큼 세계 최빈국 시절에도 높은 출산율을 기록했던 나라가 이젠 전 세계 출산율 꼴찌가 됐다.

1950 낭만스튜디오에 붙어있던 표어 중에는 ‘행복한 가정은 가족 계획’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 울음소리를 듣기 힘든 지금 한국은 정말 행복한 나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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