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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Feb 14. 2023

노인이 죽어야 나라가 사는가

19세기 일본의 산골마을. 70세를 맞이하는 오린은 나라야마산을 가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겨울이 되면 나라야마산으로 가겠다고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알린다. 맏아들 다츠헤이는 그런 어머니를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그 해 가을은 유난히 흉작이었다. 집을 떠나는 어머니를 붙잡기엔 양식이 턱없이 부족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한다. "내일 난 나라야마산에 갈 거다. 그날 새벽. 어머니는 아들에게 업혀 산으로 간다. 험한 산기슭을 기를 쓰고 가는 다츠헤이.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붉어진 눈을 부릅뜨고 그는 정상으로 향한다. 


홀로 집에 돌아온 다츠헤이는 아들의 노래를 듣는다. "할머니는 운이 좋아. 눈이 오는 날에 나라야마에 갔다네" 나라야마산은 70세 노인이 반드시 가야 하는 산, 결코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다.


198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를 보면 고려시대 ‘고려장’이라는 (풍속이 아닌) 설화가 오버랩된다. 하지만 일본 에도시대에도 '우바스테야마(姥捨山)'가 있다. 늙고 병든 사람을 지게에 지고 산에 가서 버렸다는 설화다.


입에 풀칠하기 힘들 만큼 곤궁했던 시대의 초상이다. 곳간이 텅 빈 겨울은 굶주림의 계절이다. 척박한 토양에서 거둬들인 한 줌도 안 되는 수확물로는 온 가족이 겨울을 날 수 없다. 그래서 칠순이 된 노인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경제대국’ 일본에 ‘우바스테야마’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전성기를 지나 하강기에 접어들었다는 리포트가 줄을 잇고 있지만 GDP(국내총생산) 세계 3위, 2017년 기준 27년째 세계 1위의 채권국, 외환보유액 세계 2위 등 지구촌에선 빈부격차가 별로 없고 사회가 안정된 선진국으로 통한다.


일본의 경제성장을 이끈 것은 단카이세대를 주축으로 한 고령자다. 그런 일본에서 노인 경시를 넘어 극단적인 노인 혐오를 부추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엔 영화감독 하야카와 치에(46)가 영화 ‘플랜 75’를 개봉해 논란을 일으켰다. 은퇴한 노인들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안락사를 자원하도록 하는 가상의 영화다.


최근엔 아예 ‘노인들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식의 과격발언도 나왔다. 그것도 정치인의 포퓰리즘 발언이 아니라 엘리트 교수입에서 나왔다. 나리타 유스케(37) 미국 예일대 조교수는 “노인들에 대한 의료 복지 혜택이 일본경제에 부담이 된다”며 “고령인구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엔 아예 고령화 사회의 해법으로 노인들이 집단 자살하거나 집단 할복을 제시해 충격파를 던지기도 했다. 인구감소로 ‘인력부족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약 120조원에 달하는 사회보장비의 66%가 고령자 관련비용이라니 극단적인 발언이 나올 만 하지만 한편으론 섬뜩하다. 그의 발언은 젊은 세대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인 혐오’는 한국에서도 발등의 불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고려장’ 설화가 다시 등장할지도 모르는 사회적 갈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한국이 2045년부터 세계 1위 고령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통계청)때문이다. 동아시아를 관통했던 ‘노인 유기’ 전설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국가의 과제가 됐다. 


아일랜드 시인 월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첫 구절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고령자를 '암적(癌的) 존재'로 보는 시각과 발언이 미디어를 장식하는 것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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