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말, 그의 눈
9년 전 그녀와 그.
“나는 내 집 거실에 TV는 없으면 좋겠어.
TV가 주인공인 집은 안 만들 거야. “
벽에 걸린 TV에 빼앗겼던 그의 시선이, 그녀를 향한다. 그녀는 입을 한번 삐죽거리고는 냉면을 돌돌 말아 입에 넣는다.
뜨거웠던 여름날, 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두 사람은 시원한 냉면집에 마주 앉아 더위와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그래도 TV는 있어야지, 다들 있는 건데... ”
그는 얼음을 휘젓던 젓가락을 멈추고, 다시 냉면을 크게 한 젓가락 삼킨다.
그녀의 눈이 살짝 찡그려졌다 펴진다. 차가운 국물을 마시자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우리 집도 TV만 보면서 밥 먹는데, 나는 그게 너무 싫었어.
이제 내 집에서만큼은 대화하면서 밥 먹고 싶어. 어때? “
“어... 그래도 TV는...
... 알겠어.”
그는 무언가 목에 걸린 듯했지만, 뱉어내지 않았다. 그는 삼키는 것에 익숙했고, 그것이 그녀에 대한 애정이고 배려라 생각했다.
그의 한마디에, 그녀는 그도 동의했다고 믿었다.
그녀는 TV만 없으면 되는 줄 알았고, 그는 고요함을 대신할 말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그들의 거실엔 TV가 없다. 아담한 주방 겸 거실엔 커다란 식탁이 자리했고, 그녀가 원하던 대로 식사시간엔 소소한 대화가 오갔다. 그녀가 꿈꾸던 가정의 모습이 만들어져 가는 듯했다.
그가 휴대폰을 들고 식탁에 앉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는 식탁에 앉자 자연스레 폰을 꺼내놓았다. 즐겨보던 스포츠클럽의 글들을 검색한다. 그에겐 그것이 쉼의 방식이고, 하루의 위로였다. 다만, 식사시간과 겹쳤을 뿐. 마지막으로 물을 내온 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그의 폰에 시선이 멈춘다.
“뭐 봐? 밥 먹고 봐.”
“응...”
그는 휴대폰에서 손을 떼고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처음 가본 동네 마트이야기, 반찬 만든 이야기, 아랫집 사람 이야기 등등을 늘어놓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듯하더니 어느새 손은 스크롤을 올리고, 눈은 이미 화면에 빠져있다. 그의 손과 눈을 따라가던 그녀의 이야기가 잦아든다.
“내 얘기 들었어?”
“어? 응... 동네 마트에 갔다고?”
“아니, 그 얘긴 벌써 끝났어. 아랫집 사람 이야기 하고 있잖아.”
“아... 하하하. 알았어. 잘 듣고 있을게.”
그녀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의 폰을 노려본다.
그는 그녀의 시선을 의식한 듯 휴대폰을 뒤집어 놓는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가 멈추는 순간, 그의 손은 다시 폰을 더듬는다.
홀로 있는 그녀의 낮 시간.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빨래를 개킨다.
창밖의 낯선 풍경이 익숙한 행동마저도 어색하게 만든다.
그의 셔츠를 집어든 손을 내려놓는다.
낯선 환경과 낮 동안의 정적은 자꾸만 그녀의 입을 열게 했다.
그도 폰을 보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말을 길게 이어가는 데 서툴렀던 그는, 대화가 이어지는 식탁이 낯설었다. 그녀의 기대가 어느 순간 과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려 애썼다.
하지만 하루의 피곤함이 몰려오면 그녀의 목소리가 아득해지고, 화면 속 세상이 그를 붙잡아 당겼다.
그렇게 그들의 식탁에서 사소한 다툼이 시작됐다.
그녀는 매 끼니마다 “폰 좀 치워.”를 외쳐야 했고, 그는 그 순간만을 견디다 결국 다시 화면을 찾았다.
그녀의 말은 점점 짧아졌고, 그의 말없음은 더 깊어졌다.
그들의 식탁은 조금씩 더 조용해져 갔다.
말이 사라진 자리엔, 고요보다 더 무거운 침묵이 앉았다.
* 일러스트는 AI(챗GPT) 이미지 생성 기능으로 직접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