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로 가다 온 이사.
주변에 슬슬 소식을 알리고 있다.
연고 없는 동네에서의 6년.
아는 사람이라 봤자 스리 친구 엄마들.
몰려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스리 놀이터에서 놀 때 잠깐씩 수다 떤 게 전부인 그들.
언니동생하며 말 놓을 때,
나는 철저히 누구 엄마의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런데
내가 이사 간다는 말을 꺼내자
하나같이 내 손을 잡고 아쉬워라 한다.
그들의 표정과 손길은 나를 당황시킨다.
'이렇게 친했던가? 금방 잊을 텐데...'
내가 이 정도로 메마른 인간이었던가?
그들은 나에게 이만큼의 정을 주었는데,
나는 마음을 닫고 지낸 거였나?
아쉽다...
그 말을 곱씹다 보니
'아쉽다'라는 말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이 아닌
나의 불편함과 허전함을 뜻하는 말이었다.
'내 아이의 친구가 하나 사라지네.
늘 놀이터에 있던 친구가 없어지네.
가끔 수다 떨던 대상이 줄었네.'
이렇게 말이다.
작은 생활리듬의 변화.
그 소소한 불편함이 아쉬움이다.
아쉬움은 익숙함의 변화이지,
정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정'은 뭘까?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아쉬움으로 끝나지 않고
정으로 이어진 관계는 어떤 모습이지?
나에게 정은,
책임이다.
부모님을 향한 안부전화.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은 친구.
비록 떨어져 있지만 잘 지내기를 바라며 전하는 문자 한 통.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 있는 관계의 모습이다.
지금 내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이들과
일 년 후, 몇 명이나 소식을 전하고 있을까?
내 손을 잡고 아쉬워하는 이들에게
이런 인사를 남긴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스리랑 저랑 좋은 추억이 한가득이에요.
평안하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