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우리의 목숨 값이 샤넬백보다 못해야 하나
1. 750만원 vs 553만원
여러분, 샤테크란 말 들어보셨나요? 샤테크란, 유명 브랜드인 샤넬과 재테크의 합성어입니다. 샤넬백을 사두면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주식, 부동산처럼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말이지요. 실제로 샤넬 미디엄 백의 경우 최초 300만원에 판매됐지만 지난해 시세가 750만원을 넘어섰다고 하니 샤테크란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산재 사망에 따라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얼마일까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산재사망으로 기업에 부과된 벌금은 평균 553만원 이었습니다. 샤넬 미디엄백의 작년 시세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인 것이죠. 한 사람의 목숨 값이 명품보다 못하다는 자조 섞인 비아냥이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게 된 것이죠. 대체 어쩌다가 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게 된 걸까요? 무엇이 우리를 OECD 산재사망률 1등 국가로 만든 걸까요? 네, 산업재해에 대한 처벌이 너무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안전문제에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분노하였고, 공감하였습니다. 실제 청원에 따라 법안은 지속적으로 만들어졌고, 개정되어 왔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되고, 개정되었으며,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기도 하였으니까요.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은 산재사망률 1등 국가라는 불명예 타이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요. 이제부터 그 이유와 진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2. 중대재해처벌법이란
먼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수정 보완한 법제도로,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습니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인 김미숙 씨가 올린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위한 중대 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청원에 동의를 얻어 통과된 것인데요.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 발생 시 안전보건 관리 책임자 뿐 아니라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까지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업 측의 책임에 주목한 것인데요. 여기에는 말단 관리자와 노동자만 처벌하는 꼬리 자르기식 처벌로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며 기업을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김미숙씨의 절절한 호소가 담겨있습니다.
법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명 이상의 노동자가 사고로 죽게 될 경우, 사업주에 게는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법인에는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대형 재해 대부분이 노동자 개인의 실수로 인한 것이 아니라, 기업 내 위험관리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고, 안전에 대한 의식수준이 낮은 조직문화를 공유함에 따라 나타나기 때문에, 기업차원의 책임을 더욱 강화하고자 한 것입니다.
나아가 중대산업재해 뿐 아니라 중대시민재해를 포함하여 시민들에게 피해가 생겼을 때에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보상의 범주를 넓혔는데요. ‘중대재해’란 1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타나거나 동일한 사고로 인해 2명 이상의 부상자가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중대시민재해’는 사망자 1명 이상, 또는 같은 사고로 2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10명 이상이 발생한 경우를 의미합니다. 대구지하철참사,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은 사례에 대한 처벌도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실제 손해액보다 최대 5배까지의 손해 배상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고의적으로, 혹은 반복적으로 법을 어길 시에 이와 같이 손해배상의 부담을 크게 함으로써 사고를 더욱 예방하고자 한 것입니다. 처벌의 수준을 강화한 것이지요.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의 맹점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었음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요. 왜일까요? 법안 시행에 대한 시기와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실제 법안의 문제점들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미루어지는 법안 시행, 죽어가는 노동자들
첫번째 문제점으로는 법안이 통과된 이후, 즉시 시행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2021년 1월 통과된 법안은 2022년 1월에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 되기로 결정되었는데요. 나아가 50인 미만의 사업장에는 3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하여 시행 후 2년의 유예기간을 더 갖게 됩니다. 사실상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은 먼 훗날의 일이 된 것입니다.
특히 2020년 기준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 671 곳 중 80.3%가 50인 미만의 사업장이라는 것을 감안하였을 때, 3년이라는 유예기간은 지나친 것으로 보입니다. 2020년 기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708명 가량의 근로자가 사망하였기에, 유예기간 동안 매일 평균 1.9명 이상의 근로자가, 3년 간 2,080명의 추가적인 희생자를 배출하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에 공감하며 언론 역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관련 사안들에 대해 많은 보도를 쏟아내고 있기에 이와 같이 긴 기간의 유예가 꼭 이루어져야 하는지 매우 의문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당장의 이익보다는 한 사람의 목숨 값에 더욱 높은 가치를..
중대재해처벌법의 또 다른 문제점은 처벌의 수위가 매우 약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법안은 경영책임자 10억원, 법인 50억원 이하의 벌금의 상한선만 지정하고 하한선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요. 이는 기존에 이루어지던 방식으로 굉장히 낮은 수준의 벌금을 부과하고 끝마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실제 영국의 산재 사망 시 벌금 최소액은 8억여원으로 현재 한국 노동자 177명분의 목숨 값에 해당됩니다.
또 다른 사례로 2008년 영국이 건설노동자 산재 사망에 부과한 벌금은 6억9000만 원이었습니다. 동일 시점의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사고에 한국이 부과한 벌금이 50만원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과 비교하였을 때, 한 사람의 생명 값에 부여하는 가치가 이렇게나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매년 600~700명의 숫자를 기록하며 영국보다 11배나 많은 건설노동자가 산재 사망에 이르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업은 물론 이윤을 목적으로 하기에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직입니다. 그러나 근로자의 생명에 이와 같이 낮은 값을 매기며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실제 매년 산재 사고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5년 20.4조원에서 2016년 21.4조원, 2017년 22.2조원, 2018년 25.2조원을 거쳐 2019년에는 27.6조원에 이르러 매우 높은 비용을 지불하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산업재해에 낮은 벌금을 징수함에 따라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고 오히려 더 많은 손실을 껴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EU 안전보건청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4년부터 5년에 걸쳐 안전 보건에 비용을 투자한 결과 13개 사 중 11개 사가 4년 내 투자한 비용을 도로 거두어 들이고, 생산성과 품질향상으로 오히려 이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장기적 관점에서 현재의 중대재해처벌법의 규제 수준이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 또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3) 허울 뿐인 규제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알리고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1년간 노동자 산업재해 사망이 가장 많이 발생한 기업을 선정하는 캠페인입니다. 2021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는 한익스프레스가 선정되었는데요. 그밖에도 오뚜기 물류서비스, 포스코, GS, 현대, 대우 등 순위권의 대다수가 대기업에 해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기업에서 이토록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재의 처벌 수준으로는 안전과 관계한 법을 지키지 않아도 기업에 큰 타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벌금을 납부하는 것이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힘쓰는 것보다 용이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대기업과는 상반되는 중소기업들의 입장도 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기업의80%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도입할 시 기업 경영에 있어 큰 부담을 느낀다는 답변을 했다고 밝혀졌습니다. 대기업과는 다른 처지에 있는 것이지요. 결국 기업의 규모나 매출수준, 업종 등 다양한 변수들에 대하여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기준으로 벌금을 부과하였기 때문에 실제 가장 많은 재해가 발생하는 기업에서는 법안이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사고가 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기업에 산업재해와 관련해 법안을 지킬 수밖에 없을 수준의 벌금이 부과되어야 할 것입니다.
4.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
이와 같이 중대재해처벌법의 맹점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실질적으로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를 줄이는데 보탬이 될까요?
이를 위해서는 첫째, 처벌 시기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합니다. 과거부터 유사한 형태의 산업재해가 반복되어 시기를 앞당길수록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인데요. 실제 경기 이천의 물류센터 냉동창고에 화재가 발생해 작업 인부 40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한 대형 사건이 있었는데요. 냉동창고 기계실에서 시작된 화재는 지하1층, 지상2층까지 연면적 2만 9519 규모의 냉동창고 전체를 불태울 만큼 크나큰 사건이었지요. 그러나 당시 화재에 대해서는 벌금 2000만원 가량의 벌금만을 지불하고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2020년에도 이천시 물류창고에서 유사한 화재가 발생하였고, 마장면의 G물류창고에서, 이천시 모가면의 H사의 남이천물류센터에서, 최근 쿠팡 물류센터 화재까지 4번 가량의 참사가 반복하여 발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강화된 법안의 시행이 즉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벌금에 대한 기준을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10억원 혹은 50억원 이하라는 상한선만 존재했기에 하한선에 대한 사항을 추가해 관습적으로 벌금을 낮게 징수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상한선, 하한선에 대한 규제 뿐 아니라 벌금의 기준을 매출액에 두어 소규모의 기업만이 아니라 모든 기업들이 산업재해가 발생 시 실제적인 타격을 입을 수준의 비율로 벌금을 징수해야 합니다.
실제 영국에서는 ‘기업 살인법’을 통해 산업재해에 대하여 벌하고 있는데요. 이때 기업 살인법은 기업의 매출 규모에 따라 벌금을 규정합니다. 연간 매출액의 2.5~10% 범위에서 산업재해 벌금을 내도록 하여 매출 규모가 5천만 파운드(약 755억 원) 이상인 기업의 벌금 상한은 최대 2천만 파운드(약 302억 원)에 이릅니다.
한국에서 또한 실제 매출액의 10%를 벌금으로 부과하는 처벌법안이 발의되기도 하였는데요.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나 배진교 정의당 의원, 이낙연 민주당 대표 모두 이같은 법안을 지지하여 매출액 기준 벌금 사항에 대한 반영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처벌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기업 측의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안전사고와 관계한 당사자 모두를 포함하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대표적으로 공무원에게는 건설의 인허가만이 아니라 안전 관리·감독의 의무가 있습니다. 이러한 위치에서 불법 청탁을 받거나 관료적으로 안이한 태도를 보여 제대로 감독하지 못할 시에는 안전 사고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이지요. 실제 건물 철거 과정에서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건물 붕괴사고는 공무원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관련 공무원이 청탁을 받고 철거 공정을 감독하는 감리업체를 선정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과거 2019년 서초구 잠원동에서 건물이 붕괴사건 되어 차량 4대를 덮치고 사상자가 7명이 발생하였음에도 철거업체 현장 노동자에 대한 처벌만이 이루어지고 건축주와 담당 구청 공무원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청탁과 각종 비리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위치이기에 공무원에 대한 처벌 또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5. 죽지않고 일할 권리를 위하여
‘울산에서 컨테이너 청소하던 30대, 40대 노동자 2명 질식사,
아산 자동차 공장에서 30대 이주노동자 설비에 머리 끼여 사망,
인천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50대 일용직 노동자 굴착기에서 떨어진 200㎏ 무게의 돌에 맞아 사망,
세종의 제지공장에서 50대 화물 노동자가 컨테이너 문 열다가 300㎏ 넘는 폐지 더미에 깔려 사망,
인천 남동공단의 기계공장에서 일용직 노동자 300㎏ 무게의 철판 구조물에 깔려 사망, 창원 부산신항에서 물류센터 30대 근로자 42t 대형 지게차에 깔려 사망,
동해 시멘트 공장에서 협력 업체 소속 60대 기사 크레인 추락으로 사망…’
근로자의 날이 있는 2021년 5월의 마지막 열흘 간, 사업장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 기록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제도적 맹점이 개선되어 산업재해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