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특권이었다

by 공익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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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 유럽여행을 갔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다음 해에 떠난 여행이었다.


서유럽으로 떠나는 한국인들은 보통 첫 번째 국가를 영국 아니면 프랑스로 잡는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나도 영국 런던으로 입국했다.


런던은 새삼스러운 도시였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했다. 런던아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너무 자주 본 탓에 지겹게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내 오랜 동네처럼 편안하다가도 갑자기 한국과는 다른 현실의 모습이 보일 때는 문득 낯설어졌다.


이다음으로 내가 내뱉을 문장은 누군가에게 무례하게 다가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내가 경험이 모자라 당시에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런던에서 며칠 보내다 보니 이런 감상이 들었다.


‘런던에는 장애인이 정말 많구나.’


내 시야 안에는 거의 항상 장애인이 있었다.

팔이 하나 불편하거나, 걸을 수 없거나, 목소리 대신 손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 곁에서 함께 걷고, 관광하고, 예술 작품을 관람하고, 식사를 했다.


처음에는 런던이 사람이 많아서 그만큼 장애인도 많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인구수는 서울이 백만 명 가까이 더 많았다.


이 생각은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에 오르는 장면을 보고 난 후 완전히 뒤집어졌다.

나는 앉을자리가 없어 버스의 뒷문 근처에 서 있었다.

낯선 동네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무조건 출입문 근처에 있는 게 베스트다. 그래야 내릴 곳을 지나쳐도 재빠르게 뛰쳐나갈 수 있다.


활짝 열린 뒷문 너머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그의 보호자가 올라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저분들이 버스에 빨리 올라타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을 테니,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건 내 기우였다.

그들을 재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버스에 타는 두 사람을 기다렸다.


이제야 안 거지만 저 생각 자체가 이상했다.

왜 그들에게 짜증을 낼 거라 생각한 걸까? 그들이 버스에 탑승할 때 비장애인보다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인데.


시내버스에서 경사로가 내려왔고, 두 사람은 천천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승객들은 두 사람이 휠체어석(휠체어 탄 사람이나 유모차를 위해 만들어 둔 버스 내의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길을 비켜주었다.


그걸 보고 나서야 알았다.

런던에 장애인이 많은 게 아니라, 한국에서 일상 활동을 하는 장애인들을 보지 못했던 거라고.


지난달 22일, ‘서울 장애인 차별 철폐 연대’가 지하철 4호선 혜화역과 서울역에서 40여 분간 열차를 타고 내리는 시위를 했다.

이들이 시위에 나선 이유는 서울시가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에 담긴 내용을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관련 예산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지 않아서였다.


‘이동권’이란 단어가 이질적이게 느껴질 수 있다. 비장애인에게 ‘이동’은 권리를 붙일 만큼 거창한 게 아니니까.


그러나 인권은 대부분 당연한 것들 뒤에 붙는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동은 집을 떠나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의 기본적인 근간이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타인과 교류하고, 배우고, 노동하는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올해 3월, 교통약자들이 현재 현실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들을 보완할 수 있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일부 개정되어 발의됐다.


이동권을 위해 도입된 것 중, 비장애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바로 저상버스다.


저상버스는 차체가 낮고 계단이 없다. 그래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어린이와 같은 교통 약자들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는 2007년 ‘제1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발표하며 2011년까지 저상버스 보급률 31.5%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2020년 9월 기준 28.4%밖에 되지 않는다.


지역별 격차도 크다. 2020년 서울의 저상버스 보급률이 57.8% 일 때, 충남은 10%였다. 거의 6배에 가까운 차이다.


저상버스 보급률이 저조한 이유는 저상버스 도입이 의무가 아니어서다.


저상버스는 일반 버스보다 가격이 9천만 원 이상 비싸다. 이 차액을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버스회사에게 보조하기로 했지만, 지자체는 예산 부족을 핑계로 차액 지원을 외면한다.


법에 ‘예산의 범위에서’라고 명시되어 있어서다.


개정안은 버스의 사용기한이 만료되거나 운행거리를 초과한 차량 등을 교체할 때 저상버스를 우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해외 주요국들 또한 신규 버스를 저상버스로 도입할 것을 법적으로 명시해두었다. 미국의 경우 버스 사업자가 신규 버스를 구입하거나 임차할 때 장애인이 쉽게 이용 가능한 버스를 선택하도록 의무화한 지 벌써 30년이 지났다.


비장애인들은 지역 간 이동을 할 때 손쉽게 고속·시외버스를 선택한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아니다.


현재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시외버스는 서울-당진 노선뿐이다. 놀랍게도 이게 나아진 거다. 몇 년 전에는 단 한 개도 없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속·시외버스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탑승할 수 없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며 국토교통부에 대책을 마련하라 권고했다. 2019년 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고속·시외버스의 시범 운행이 시작됐으나, 현재는 단 하나를 제외하고 전면 중단됐다.


관련 예산도 줄고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약속이 저상버스를 포함하여 벌써 두 가지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건 몰랐던 이야기가 아니다. 알면서도 생각지 않았던 문제다.

나도 고속·시외버스를 이용하는 동안 휠체어 탄 장애인이 함께 동승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지역 간 이동이 필요할 때마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는 걸까?


장애인을 위한 이동수단 중에는 ‘특수 교통수단’이란 것이 있다. 이동에 심한 불편을 느끼는 교통약자에게 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휠체어 탑승설비 등을 장착한 차량이다. ‘장애인 콜택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현재 각 지자체들은 이동지원센터를 통해 장애인들의 특별교통수단을 연결해주고 있다. 장애인의 지역 내 이동의 37.5%가 특별교통수단을 통해 이뤄질 정도로 이용률이 높지만, 안타깝게도 지역 간 연결이 되고 있지 않다.


거주하는 지역을 벗어나면 특별교통수단을 호출할 수 없거나, 지역 간 환승이 매끄럽지 못해 길에서 오랜 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개정안은 도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도 내에 통합이동지원센터를 설치할 수 있고, 설치와 운영에 소요되는 자금의 일부를 국가가 의무적으로 지원하도록 한다.

시·군 간의 통합 운영을 통해 장애인들의 지역 이동이 지금보다 용이해질 수 있다.


대한민국 인구의 약 5%는 장애인, 약 30%는 교통약자다. 게다가 고령화로 인한 교통약자 인구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 중 10명 중 9명은 ‘후천적 원인’으로 장애를 갖게 된 것으로 나타난다. 현재는 비장애인이지만, 언제라도 사고나 질환으로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위한 교통수단 증진만큼 사람들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최근 중증장애인의 저상버스 이용과정에서 저상버스 배차간격, 저상버스 노선과 함께 기사의 몰이해와 불친절, 편의시설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장애인은 ‘우연히’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 ‘항상’ 주변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냉정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다.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린다. 그런 의미로 장애인들의 ‘이동권’ 증진이 갖는 의미는 크다.

있는 사람을 없는 것처럼 격리시킨 사회의 분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일상이 특권이 되는 사회를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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