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제품은 어린이를 위해야 한다

by 공익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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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꼭 가계부를 쓴다.

그렇다고 돈을 덜 쓰는 건 아니지만,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알고 당하는 게 낫다고. 통장을 볼 때


“뭐야? 이거 다 어디 갔어?”

보다는


“… 내가 쓴 거라 할 말은 없다…”

가 마음이 편하다.


지출 내역에 고정비 외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목록 몇 가지가 있다. 장 보기 어플, 구독하면 좋아하는 아이돌과 톡을 할 수 있는 메신저 그리고 뭐든 다 있다는 생활용품 판매점.


그 가게는 이름처럼 찾는 건 다 있다.

예전에는 퀄리티는 낮았지만 급하게 쓸 수 있는 정도의 물건을 냈다면, 이제는 꽤 오래 사용할 수 있고 퀄리티도 괜찮은 제품들을 내고 있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주변에서 안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말 그대로 다 있다.


그래서 그곳에서 팔던 아기 욕조에서 기준치의 612배가 넘는 환경호르몬이 나왔을 때, 수 천명의 피해자가 발생해버리고 만 것이다.


‘국민 아기욕조’라는 타이틀이 붙은 만큼 많은 사람들이 구매해서 ‘자신의 아이’들을 씻기고 있었다.


아기욕조에서 검출됐던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2년 전 M사의 ‘ㅇㅇ 폴더 매트’에서도 검출됐다. 그때도 기준치의 최대 645배를 넘는 양이었다.


그 외에도 방부제가 과다 검출된 B사의 ‘ㅇㅇㅇ 메이크업 다이어리’. 사용 금지된 방부제를 사용한 W사의 ‘소꿉놀이완구 ㅇㅇㅇ 12 칼라’등이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데자뷔를 겪는 거 같다. 문제가 발생했는데, 같은 이유로 같은 문제가 또 발생한다. 그래서 그만큼 더 안타깝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내가 손이라도 베여 오면 안절부절못하고 종종거리신다. 자식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신경 쓰이는 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모가 자식을 위해 구매한 물건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당연히 사람들은 안전한 물건을 구매하고 싶어 한다. 보통 인터넷에서는 KC마크가 있으면 기관에서 안정성을 인정받은 것이니 괜찮은 제품이라 한다.

그러나 이것도 완전히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생활용품점 국민 아기욕조도 KC마크가 붙어 있는 채로 판매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KC마크가 붙어 판매되고 있던 고무풍선 10개 제품에서 모두 발암물질인 ‘니트로사민류’와 ‘니트로사민류 생성 가능 물질’이 검출됐다.


그런데 ‘니트로사민류’는 유아용 노리개 젖꼭지에서만 관리되는 유해물질이었다. 아이들이 풍선을 가지고 놀 때마다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지만, 관련 안전기준은 없었던 것이다.


이후 문제를 의식한 산업부에서는 노리개 젖꼭지에서만 규제하던 ‘니트로사민류’를 유럽 기준과 동일하게 입에 넣어 사용하는 탄성체의 어린이 제품으로 규제 범위를 확대했다.


문제 현상을 인식하고 변화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계속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인식을 버릴 수가 없다. 소가 외양간을 부수고 나갈 정도면 외양간의 나사가 빠져 있던지, 나무가 낡아 부서져 있던지, 눈에 띄는 징조가 있었을 것이다. 단지 주인이 귀찮으니 외면하고 있었을 뿐.


미리 징조를 알아차리고 소를 잃지 않도록 외양간을 고쳐 놓을 수는 없을까?


올해 10월 어린이 제품의 안전문제 해결을 위해 ‘어린이 제품 안전 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개정안에는 먼저 영아의 안전에 관한 규정이 추가됐다.

통계에 따르면 만 2세 이하 영아의 사고는 어린이 안전사고 중 가장 높은 비율인 40% 중후반을 차지한다. 영아기(0세)까지 포함하면 50%가 넘는다. 그런데도 현행법에는 영아의 안전에 관한 규정이 없었다.


이 개정안은 영아용 제품을 가장 엄격한 등급인 ‘안정 인증 대상 어린이 제품’으로 추가하여 관리토록 한다. 영아기와 걸음마기의 안전사고 비율이 높은 만큼 영아에 관한 더욱 엄격한 안전 관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두 번째로 어린이 제품의 원료 또는 제조공정에 변경이 있는 경우에는 안전 관련 인증의 변경을 신청하거나 확인 절차를 다시 걸치도록 규정했다.


현행법에서는 원료나 제조에 변경되는 부분이 있어도 안전 관련 인증 절차를 다시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다.


국민 아기욕조 사건도 같은 이유로 벌어졌다. 해당 기업은 아기욕조가 최초 입고 당시에는 국가 공인 시험기관으로부터 안전성 및 품질 검사를 마친 제품이었으나, 추가 입고 과정에서 제조업체가 안전기준에 적합지 않은 원료로 제작하며 생긴 일이라고 했다.


개정안이 통과되게 된다면 제품의 원료나 공정에 변경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한다. 자진해서 인증받지 않는 경우 등을 대비하여 기관은 불시에 업체를 찾아가 검사를 진행한다.


이 법안은 국내 생산 어린이 제품뿐만 아니라 수입 제품에도 해당된다. 2018년 기준 수입 어린이 제품은 국내 생산품의 약 3배에 달했다.

강화된 어린이 제품 안전관리를 통해 수입업자에게 지금보다 철저한 관리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만나면 반갑다고 인사하는 것처럼 출산율 저하가 문제라고 몇 년째 노래를 부른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 국민들은 통계를 걱정하기 이전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환경부터 만들어 달라 맞받아치며 노래한다.


반복되는 문제와 이미 태어난 아이들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시스템. 그 안에서 발생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피해는 결국 개인을 넘어 전체의 미래로 연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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