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들은 왜 지하철을 점령했을까?
2021년 2월 10일 지하철이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할 명절날에 서울의 지하철 4호선 열차가 멈춰 섰습니다. 그 이유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였죠. 이들은 2월 10일 오후 3시 20분경부터 4개 조로 나뉘어 휠체어를 탄 상태로 4호선 하행선 열차를 반복적으로 타고 내렸습니다. 5시 50분까지 이어진 이들의 시위로 인해 그날 4호선 열차는 전구간에서 지연 운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단체행동에 나섰던 것일까요?
2 너무나 당연한 이동의 자유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법이 보장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이 권리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하죠. 하지만 우리 사회의 누군가는 행복을 위한 여정의 출발점부터 난관을 마주하게 됩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나고, 친구를 만나며, 때로는 맛집을 찾아서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바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이죠. 만약 어떤 국가의 정부가 국민들 중 일부에게 혼자서는 집 밖을 나서지 못하게 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등 이들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다면 그것은 이들의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즉,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는 행복의 너무나도 당연한 전제조건인 것이죠.
하지만 남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의식조차 되지 않는 이 당연한 전제조건이 장애인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장벽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지하철을 점령했던 장애인들은 이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그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들
서울에 거주하는 장애인 A 씨는 오랜만에 친구와 약속을 잡았습니다. 최근에 SNS에서 핫한 유명 맛집을 가기로 한 것이죠. 그리고 친구와 약속을 확인하기 전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인터넷에서 로드뷰를 통해 해당 식당의 주변 길 상황과 식당의 정문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휠체어를 타야만 이동할 수 있는 자신이 집에서 식당 내부까지 큰 불편 없이 갈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었거든요. 그마저도 해당 로드뷰 자료가 최근의 사진이 아닐 경우에는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처음 가보는 곳을 갈 때는 늘 불안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야 합니다. 로드뷰가 정확하다고 해도, 목적지가 좁은 골목에 있을 때는 혹시 그곳에 불법 주차한 차량이 길을 막고 있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기도 한다네요.
식당에 미리 전화해서 휠체어가 진입하는 것이 가능한지 알아보는 방법도 있겠지만, 실제로 식당에 문의했을 때 실제로는 문에 턱이 있음에도 들어올 수 있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비장인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몇 cm의 턱이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을 때가 많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이런 대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기엔 작은 턱 정도는 넘을 수 있을 것 같고 넘기 어렵다고 해도 잠깐 휠체어를 들어서 넘기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휠체어의 무게는 100kg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여러 사람이 함께 힘을 쓰는 것이 아니면 들어 옮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도 드물게 찾아오는 저상버스를 타기 위해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뿐 아니라 지하철 역사 내의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이미 다른 사람들이 가득 차있어 타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이뿐 아니라 평상시에 돌아다닐 때에도 울퉁불퉁한 돌길들이나 좁고 가파른 경사로 등은 장애인들이 이동하는 매 순간을 편안한 이동이 아니라 불안한 모험으로 만듭니다. 그렇다 보니 장애인들은 수많은 쇼핑카트들을 위해 턱없이 이동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쇼핑몰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선호한다고 하네요.
4 이미 이들을 위한 제도가 있지 않은가?
물론 지금 한국에는 장애인들의 이동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대중교통에 있어서는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 및 저상버스의 도입과 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지원하기 위한 변화들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해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장애인 콜택시 서비스도 존재하고요. 하지만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도 멉니다.
한국에 오래 거주하신 분들이라면 한 번씩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려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특히 서울에서 버스를 탄다는 것은 전쟁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무척 많습니다. 내가 당신의 버스를 타고 싶다고 온 몸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냥 정류장에 서있기만 한다면 버스가 제대로 정차하지도 않은 채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가는 경우가 많으며 정차를 할 때에도 정류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버스가 정차해 차도로 직접 걸어 나가야지만 버스를 탈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장애인들이 버스를 타는 것도 이렇게 피곤하고 스트레스받는 일인데 장애인들에게는 오죽할까요.
이 뿐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대중교통은 보급률조차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2020년 9월에 나온 기사 내용에 따르면 전국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의 도입률은 28%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탈 수 있는 버스가 올 때까지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3배가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죠. 또한 이 수치는 시내버스를 대상으로 산출된 수치이며 마을버스 중에서는 저상버스의 비율이 사실상 0%에 가깝다고 하니 오히려 마을 내 이동수단을 더 필요로 하는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인 이동수단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상버스 도입은 지자체의 역량에 기대는 측면이 강하다 보니 지역에 따른 차이도 심각합니다. 2020년 7월 기준 서울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도는 56.4%였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저상버스 보급률을 보이는 지역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충남지역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10%에 불과했죠. 한국은 안 그래도 경제적인 지역 불균형이 심각한 문제인데, 이에 더해 국민들에게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이동권에서조차 지역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속버스의 경우, 휠체어 탑승 가능 고속버스가 2019년부터 시범운행되었지만 고가의 휠체어만 탑승 가능하였으며, 운행노선 또한 이미 ktx로 이동할 수 있는 구간이어서 굳이 버스를 탈 이유가 없는 등의 이유로 시범운행 1년이 지난 시점까지 실제로 고속버스에 탑승한 휠체어 이용객이 16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여주기 식 사업이라는 비판이 많았었죠. 지하철 또한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역들이 존재하며 승강장과 차량 사이의 높이 차이와 틈 때문에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에서는 장애인 콜택시를 운영하고 있지만 수요가 많지 않다 보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이용할 수 있다고 하네요.
5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사회적 단절
위의 문제에 더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이동권 격차는 단순히 원하는 장소로 갈 수 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많은 연구결과들이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 사이의 연결고리를 설명하고 있거든요.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사회적인 연대가 있기 위해선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적 구조가 전제조건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 사이의 접촉빈도가 많아질수록 이러한 연대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도 이야기했죠.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같은 공간을 공유할 수 있고, 또 그러한 기회가 많이 주어져야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특정한 유형의 사람들에게만 같은 공간을 향유할 기회가 주어지고, 누군가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은 해당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암묵적인 사회적 배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효과를 연구한 논문들은 일관적으로 장애인의 이동권과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 논문에서는 설문조사와 위치 데이터를 이용해 장애인의 실제 이동거리와 면적에 따라서 이들이 경험하는 사회적인 배제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가설을 확인했습니다. 이동성이 떨어지는 장애인들은 그에 따른 사회적 자본의 결핍을 경험한다는 사실에 대한 실증적인 근거가 제시된 것이죠.
6 어찌해야 하나?
그렇다면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개선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이 이들에게 사회적 차원에서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입니다.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아 왔던 것이죠.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이동권의 가장 큰 문제는 장애인들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시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인에게 친화적인 시설로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선 관련 예산의 확대가 필수적입니다. 방금 얘기한 것처럼 전 사회적으로 장애인 이동권이 중요한 이슈라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이에 기반한 예산의 확대 또한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일 것입니다.
구체적인 제도적 개선점으로는 노선별로 저상버스 보급 비율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의 핵심은 이들에게 비장애인과 동일한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이지만 현재와 같이 일부 노선에만 저상버스가 존재하는 것은 결국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이동권의 격차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장애인 친화적인 업체들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 또한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장애인을 태울 때마다 택시 기사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고 하네요.
7 마치며
비장애인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이 권리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일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권리입니다. 장애인들이 걸림돌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사회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