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사회복지는 '욜로'에서 온다

by 공익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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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해외인데, 한국인 거 같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분위기를 기대하며 도착한 일본의 오사카가 부산 시내처럼 느껴질 때가 그랬고, 『중경삼림』을 떠올리며 향한 홍콩에서 에뛰드하우스와 삼겹살집을 발견했을 때가 그랬다.


그리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를 보고 난 후에는 미국이 한국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한국이 점점 미국 같아지는 거지만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미국은 그동안 군대를 동원하여 여러 나라를 쳐들어 갔으나, 매번 실질적인 수확 없이 사상자만 만들고 돌아왔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군인들에게 휴식을 주고, 마이클 무어 감독을 세계 여러 나라로 파견 보내어 무력 없이 미국에 필요한 것들을 뺏어 오는 작전을 실시한다.”


임무를 수락한 마이클 무어 감독은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핀란드, 포르투갈, 노르웨이, 튀니지, 슬로베니아, 아이슬란드로 향한다.

그리고 노동자, 대통령, 저소득층, 거대 은행의 CEO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난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미국의 평화를 위해 그 나라의 장점들을 성공적으로 빼앗아 돌아온다.


그 말은 즉, 마이클 무어가 뺏어 온 것들은 미국에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다.


마이클 무어가 뺏어 온 것들은 아래와 같다.


- 직원들이 스트레스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보장하는 8주간의 유급휴가

- 아이들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국가에서 관리하는 고퀄리티의 학교 급식

- 어느 학교를 가도 똑같은 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립학교

- 대학 등록금 무료

- 회사 운영을 결정하는 임원진의 반은 반드시 노동자로 이루어져야 한다

- 과거를 직시하고, 객관화하여 역사에 책임감을 가지고 사는 삶

- 무료 의료 서비스와 마약 합법화

- 죄수자의 의사와 자율을 존중하는 교도소

- 사실적인 성교육을 통해 미성년자 임신율을 낮추고, 낙태가 사회적 낙인이 되지 않는 사회

- 여성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인정해주고, 적극적인 정치·사회 활동 참여를 독려하고 보장함.

- 고위층의 범죄 행위에 대해 확실한 책임을 묻고 처벌.


이 작품의 재미는 페이크 다큐 같은 설정과, 미국의 불행한 현실을 무덤덤하게 내뱉음으로써 상대방이 진정으로 안타까워하는 리액션을 끌어내는 데에 있다. 위트 있는 척 던진 말 안에 든 뼈가 사람을 ‘웃프게’ 만드는 것이다.


허나 한국인인 나는 유머러스 하지만 냉소적인 감독의 연출을 보며 미국인인 그를 안타까워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마이클 무어 감독이 뺏어 온 것들은 한국에도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한국은 생각보다 더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을 ‘벤치마킹’하고 있었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의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는 그 누가 살아도 좋은 나라다.”

“미국은 이미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지금이라도 노력한다면 변할 수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영화가 벌써 7년 전 작품이라는 거다. 7년 간 미국은 변하지 않았고,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공통된 질문을 한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 수가 있는 거죠?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 번뿐이니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적인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은 사치, 소비, 우월감, 차별에서 오지 않았다.


큰 사고 없이 웃으며 이웃의 안부를 물을 수 있고, 가족과 식사를 하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날씨가 좋을 때 카페테라스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삶이 그들의 행복이었다.


옆에서 어린아이가 밥을 굶고 있고, 노동에 희생되어 죽어가는 사람이 눈에 띄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는 건 잘못되었다는 거다. 그들이 봤을 때 한국은 미국만큼 기이한 나라일 게 분명했다.


현재 파리바게트의 본사, SPC 앞에서는 임종린 화섬 식품 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이 한 달이 넘도록 단식 투쟁 중에 있다. 그녀가 단식 투쟁을 하는 이유는 52시간이 넘는 노동시간, 상식 밖의 저임금, 노골적인 괴롭힘을 통한 노조원 탈퇴 작업 등 때문이다.


노조는 무리한 요구 사항을 들이 미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회사에 해를 끼치거나 회사를 망하게 하려는 의도도 아니다.

그저 이 회사에서 다 같이 오래 일하고 싶으니, 사람답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뿐이다. 본질적으로 이 회사를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깔려 있기에, 포기하지 않고 한 달이 넘는 단식까지 오게 된 것이다.


임종린 지부장의 단식 소식은 ‘화성 식품 노조 파리바게트지회’ 트위터 계정을 통해 생생히 볼 수 있다. 동시에 사람이 30일이 넘게 굶으며 떠드는 데도 꿈쩍 않는 기업과 관심 없는 언론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다.


아마 언론에서 이 사태에 대해 국민들에게 알렸더라면, 그 많은 사람들이 포켓몬 빵을 구하려고 새벽부터 편의점 오픈런을 뛰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같은 세상, 동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유럽인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을 미국인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것에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문제의 해답은 단순하다는 것에 희망을 느낀다. 해결의 본질은 보편적인 행복이다. 어떤 삶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행복인지 성찰해보고, 그에 따른 선택 하면 된다는 거다.


마치 냉전시대의 상징처럼 영원히 있을 것만 같았던 베를린 장벽이 누군가 갑자기 시작한 망치질 한 번으로 무너진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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