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비호감 정치, 한국만의 문제일까?
② 정치인의 이권으로 물든 지역구, 풀뿌리도 민주주의도 없었다
③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정치판 이야기입니다
④ 새로운 대안, 개방형 비례대표제
저번주에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선거제도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은 선진국 중 어떠한 나라보다도 특정 집단에 유리한 우리나라의 선거제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강자와 권력자만을 위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우리나라의 선거제도가 왜 강자에게 더 유리하고, 약자에게는 더 불리한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약육강식의 정치판, 소수정당은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제도는 강자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엄격한 제도입니다. 우리는 저번주 게재된 선거제 개혁 특집 제2편(정치인의 이권으로 물든 지역구, 풀뿌리도 민주주의도 없었다)에서 소수정당은 아무리 높은 득표율을 획득하더라도, 그만큼의 의석수를 차지하지 못하는 기이한 구조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는 소수정당에게 불공평한 결과가 만들어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 줍니다. 그러나 의석수 배분 이외에도 소수정당을 힘겹게 만드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지난 20대 대선 중, 후보 간 선거공보책자의 두께와 정당 의석수가 비례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군소정당 후보의 입장에서 선거공보물은 자신을 알릴 큰 무기 중 하나입니다. 군소 후보는 토론 방송과 인터넷 매체 등을 이용한다 할지라도 자신을 알리기가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일례로 주요 대선 후보들의 대선 토론 시청률은 지상파 3사 총합 39%, 군소 후보들의 시청률 총합은 4%로 10배가량 차이가 났습니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군소정당의 후보들은 선거공보물조차 제대로 제작할 수 없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법으로 정해진 상한인 16쪽을 전부 다 사용해 자신의 이력과 정책을 홍보한 반면, 심상정 정의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공보물은 그의 절반인 8쪽에 불과했습니다. 군소 후보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했습니다. 기호 5번을 배정받은 오준호 기본소득당 후보부터는 전부 공보물이 4쪽 이하였으며, 이번에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김동연 후보의 공보물은 단 두 쪽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불리한 상황 속에서 유권자들이 군소 후보들에게 눈이 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군소정당이 매번 불리한 상황에 놓이는 이유는 역시 돈 때문입니다. 선관위는 대선 선거보조금 465억 여원을 의석수와 득표율 등을 기준으로 지급했는데, 그 중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배정된 돈은 약 90%(약 419억원)에 달합니다. 정의당과 국민의당은 각 31억원(6.6%)과 14억원(3%)에 그쳤으며, 원외 군소정당의 상황은 더욱 처참했습니다. 오죽하면 지난 총선과 지선 기간 동안 정의당에서는 후보를 안 내는 것이 오히려 당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까지 나왔습니다.
뉴스1. 2014. "정의당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불출마 선언 배경은" 출처: https://www.news1.kr/articles/1577851
사회적 약자에 불리한 선거제도
소선거구제는 권력이 없는 군소정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뿐만 아니라 여성, 청년, 장애인 등의 사회적 약자에게도 불리한 제도입니다.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1위로 당선될 가능성을 가장 중시하기 때문에 정당은 보편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후보자를 공천합니다. 1등만이 당선되는 제도 하에서는 정당은 사회의 균형을 고려할 유인이 없기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천을 등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아래의 <표 1. 제 21대 총선 정당별 여성 후보 수>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표 1. 제 21대 총선 정당별 여성 후보 수
출처: 박민규∙가상준, 2021, 「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통해 본 여성 후보의 선거 경쟁력」, 『동서연구』33권4호, pp. 5-31
제21대 총선은 역대 가장 많은 여성후보자가 공천된 선거였습니다. 여성 지역구 후보자는 209명으로 제17대부터 제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의 여성 후보자 65명, 132명, 63명, 98명과 비교해 볼 때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이 중 대다수가 당선의 가능성이 희박한 소수정당(67.5%)의 후보였다는 사실을 표를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균형을 생각하고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 하는 거대정당보다 소수정당이 사회적 약자에게 공천의 기회를 더 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선거구제의 단점으로 인해 소수정당은 의회 진입에 더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러한 제도로 인해 우리나라의 여성의원 비율은 19%로 OECD 회원국 29.8%에 비해 한참 낮은 수준이며, 청년(OECD 평균 3.6, 대한민국 0.66%)과 장애인(21대 총선 비례대표 3명) 역시 정치적인 대표성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후보자/당선자 수는 소선거구제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강자에게는 관대하지만, 정작 나라의 균형 발전을 생각하는 약자에게는 엄격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도울 의지는 있는가?
얼마전 장애인의 권리 보장 문제를 두고 여당의 대표와 장애인 단체의 대표가 설전을 벌인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단순한 이동권의 문제만을 넘어, 교육과 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준 토론이었습니다. 문제는 역시 예산입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장애인 복지 예산 비율은 우리나라가 0.6%로 OECD 회원국 평균(1.9%)의 1/3 수준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새 정부에 요구하는 장애인권리 예산이 1조3000억원 규모인데, 이 예산을 온전히 반영해도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 예산 비율이 GDP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 노인 등을 위한 돌봄 예산도 OECD 평균의 1/3 수준입니다. GDP 대비 전체 사회복지 지출의 비율은 OECD 회원국 최하위인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제도는 왜 이렇게 사회적 약자에게 엄격한 것일까요? 다수의 연구자들은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과 선거제도가 깊은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말합니다.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일수록 정부는 국가의 균형 발전을 중시해 다양한 집단에서 정치인들을 선출하고 전체를 위한 사회복지에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한다고 합니다. 반면,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를 채택하는 국가일수록 지역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지역별 예산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고 합니다. 아래의 그림은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왼쪽 아래, 한국,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일수록 사회복지에 더 적은 지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림의 X축은 가족과 고용 관련 지출이며, Y축은 GDP 대비 공적 사회 지출입니다.
그림 1. 사회지출과 가족∙고용복지 지출의 국가별 차이 (2007년)
정의룡, 2015. 선거구 제도가 복지지출에 미치는 정책효과 분석: OECD 국가들을 중심으로
소선거구제 역시 국정운영의 안정성 등 확실한 장점이 있는 제도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선거제 개혁 1, 2편에서도 보았듯이 소선거구제는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은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정치∙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된 나라에서는 그 폐해가 더욱 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줄 정치인의 수가 부족해지는 상황과 그들을 도울 예산 역시 부족한 상황이 하나의 연결고리처럼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거제 개혁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정치권에 반영하고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 내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