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비호감 정치, 한국만의 문제일까?
② 정치인의 이권으로 물든 지역구, 풀뿌리도 민주주의도 없었다
③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정치판 이야기입니다
④ 새로운 대안,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
우리는 3주 간에 걸쳐 지금의 선거제도가 우리 사회에 어떠한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정치불신과 지역주의, 불평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소선거구제의 개혁은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이에 공익허브의 ‘선거제 개혁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는 여태까지 논의되었던 선거제 개혁 방안을 점검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각 방안에 대한 효과와 현실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고, 최종적으로 공익허브는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小)선거구가 문제라면 선거구를 늘리면 되지 않을까? 중대(中大)선거구제!
소선거구제는 한 지역구에 단 한 명만의 의원을 뽑는 제도입니다. 앞선 2편에서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정당의 수는 많은데 선출되는 의원은 한 명뿐이니 민의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거대정당의 독점이 일어나기 일쑤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 대부분이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 지역구에서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뽑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요? “여러 명을 뽑는다면 다양한 후보자가 선출될 확률이 높아지고, 국민들의 민의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다”라는 것이 중대선거구제의 아이디어입니다. 한 선거구에 2~6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몇몇 국가들이 이러한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는 것도 타당성이 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또한 현재 중대선거구제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루고 있어 실현가능성 역시 높아 보입니다.
그러나 정치권이 바라는 데로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까요? 공익허브의 조사 결과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은 다당제의 실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아 보입니다. 기초의원을 뽑는 시군구 단위에서는 이미 중대선거구제가 실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정당의 독점체제를 깨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는 4명의 기초의원을 뽑는 선거구가 총 28곳(28 * 4 = 총 112명의 의원을 선출)이 있었습니다. 그 중 당선된 소수정당의 후보는 얼마나 될까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소수정당 후보의 당선인 비율은 6.3%였습니다. 민주당(61.6%)과 한국당(19.6%)에 비해 한참 낮은 수치입니다. 한 지역구에 다수의 의원들을 뽑아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중대선거구의 취지인데, 어째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일까요?
그 이유는 지금의 중대선거구제도가 한 정당이 한 지역구에 여러 명이 출마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4명을 뽑는 지역구에서 기호 1번 정당은 1-가 후보부터 1-나, 다, 라 후보까지 총 4명의 후보를 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중대선거구제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거대정당의 힘만 키우는 꼴이 되었습니다. 지역주의가 강한 지역에서는 지역의 색채를 가장 많이 부각시키는 정당이 당선자를 싹쓸이 해갈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4명의 의원을 뽑는 전남 화순의 ‘가’ 선거구에서는 민주당 후보만 4명이 당선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4명을 뽑는 선거구임에도 불구하고 제1야당이나 소수정당, 무소속 후보가 한 명도 당선되지 않은 것입니다. 아래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4인 선거구가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돕는 비율은 단지 2.6% 증가했을 뿐입니다.
표 1. 2018년 제7회 지방선거 선거구 당선자 현황
완벽한 비례성을 추구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지난 21대 총선,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놓고 정치권이 설전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의 의석수와 비례대표의 득표율을 연동해 전체 의석수를 계산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어떠한 A 정당이 40%의 정당 득표율을 얻고 지역구에서 70석을 얻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21대 총선 이전의 제도에서는 지역구 70석에 비례대표 18석 정도를 해서 총 88석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정당득표율에 맞추어 총 120석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지역구 70석에 모자란 50석을 비례대표로 채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당의 득표율이 의석수와 완벽히 연동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10%의 득표율은 얻은 정당은 득표율대로 국회의 10%의 의석수인 30석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벽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역구의 의석을 줄이거나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합니다. 소선거구제로 인해 아쉽게 당선되지 못한 정당에게는 득표율 만큼을 비례의석으로 채워주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그만큼의 비례의석수가 더 많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실현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지역구의 의석수를 줄이는 것은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밥그릇을 줄이는 것이기에 의원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힘들고,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약 70%가까이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은 이에 대한 절충안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 꼼수로 인해 비례성을 맞출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소수정당만 피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정당은 20대 총선(약 15%, 총 44석, 무소속 제외)과 비교해 21대 총선에서 12석(약 4%, 무소속 제외)만을 획득해 소수정당의 의석이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그림 1. 20대 총선과 21대 총선의 소수정당 의석수 비교
새로운 대안,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
우리는 ‘선거제 개혁 특집 1~3편’을 통해 현재의 선거구제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소선거구제가 자아낸 정치불신과 지역주의, 공천 갑질과 불평등 등의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중대선거구제 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역시 실현가능성과 효과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국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 한 번에 여러 명의 국회의원을 뽑으면서도, 국회의원의 수는 늘리지 않는 선거제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도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가 최대한 일치하고 비례대표의 명단도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권역별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당선자를 정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비례대표의 명단을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개방형 명부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이전에도 몇 차례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지적된 다른 제도의 단점을 가장 잘 보완한 주장은 하승수(공익법률센터 농본) 변호사가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를 제안한다”라는 책에서 주장한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입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한다”에서 제시된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겠습니다.
* 아래의 글은 하승수 변호사의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를 제안한다”를 참고했습니다.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도란?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17개의 지역구로 나누어 국회의원을 뽑는 제도입니다. 지역구는 현행 제도 그대로 253명으로 유지하고 나머지 47명에 대한 의석은 보정의석으로 활용됩니다. 보정의석은 권역별로 아쉽게 의석을 배분 받지 못한 정당도 보정의석을 통해 의석을 배분 받게 하는 제도입니다.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가 실행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래의 <그림 2>를 통해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림 2.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울산 지역의 투표용지
하승수, 2020,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를 제안한다』, 한티재, 56
우선 각 지역구마다 정당은 후보자 명단을 제작합니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그 명단에서 마음에 드는 정당과 후보를 선택하여 투표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그림 2>에서 울산시 선거구 유권자 A씨는 각 정당이 표시된 칸 중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C’정당에 표시를 했고, 그 정당이 낸 ‘갑’부터 ‘기’후보 중에서 ‘을’후보에 표시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유권자들의 투표가 완료되면 각 정당은 얻은 득표 비율에 따라서 의석을 배분 받습니다. 울산광역시 권역에서 각 정당의 득표율이 <표 2>와 같이 나왔다면 울산시에 배정된 6석과 각 정당의 득표율을 곱하면 정당의 의석수가 산출됩니다. 이후 소수점으로 나오는 숫자는 소수점이 큰 순서대로 정당에게 채워줍니다.
<표 2> 권역별 비례의석 배분
하승수, 2020,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를 제안한다』, 한티재, 59
<표 2>에서 볼 수 있듯이 A, B, C당은 득표율대로 각각 4석, 1석, 1석의 의석을 배분 받았습니다. 그 후 A당과 B, C당은 자기 정당의 후보자 중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의원 당선자를 결정하면 됩니다. 반면 D당은 5%의 득표율을 기록했음에도 의석을 하나도 배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D당은 모든 권역의 의석 배분이 끝난 이후에 전 지역의 득표율을 합산하여 47석의 보정의석에서 그만큼의 득표율만큼 의석을 배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보정의석을 통해 배분 받는 의석은 낙선자의 득표율 순서대로 당선자가 결정됩니다. 보정의석은 당선자를 정할 때 홀수 번째에 여성, 청년, 장애인 등을 지정할 수 있게 하여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표성을 보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가 보여주는 미래
이러한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소선거구제에서 일어났던 사표 발생과 공천(밀실공천과 공천갑질), 불평등, 위성정당 등의 문제를 모두 해소할 수 있습니다. 우선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장점으로 꼽히던 표의 비례성 문제가 해결됩니다. 정당은 득표율만큼의 의석수를 보장받아 사표가 사라지고 거대 양당이 의회를 독점하는 일이 사라질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밀실공천, 공천갑질 등의 문제가 완화됩니다. 현행 비례대표제는 투표 때 국민들에게 정당만을 선택하게 강제하여 정당에서 정한 순위에 따라 비례대표가 결정되는 폐쇄형 명부 방식이었습니다. 이에 정당의 공천이 중요하게 작용했고, 특히 지방선거에서 이를 이용한 공천 갑질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공익허브 선거제 개혁 2편 참고). 그러나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정당의 후보자들은 국민의 선택에 따라 당선이 결정됩니다. 정당 혹은 국회의원의 공천갑질로부터 벗어나 유권자의 순전한 선택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국민들은 더욱 다양한 후보자들을 직접 고를 수 있어 선택권의 폭이 확대됩니다. ‘정당의 역할이 줄어들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이 제시될 수도 있지만, 후보를 심사하고 명단에 올리는 순위 등을 정당이 결정하기 때문에 정당의 역할은 크게 줄어 들지 않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 위성정당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위성정당의 문제는 1인 2표제(지역구 의원 선거와 비례대표 의원 선거를 같이 하는)였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거대정당들은 비례의석을 받기 위해 위성정당을 창당했고, 자신들이 만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합의안까지 어겨가며 국민들에게 위성정당에 투표해달라고 호소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국민들은 한 정당의 한 후보에만 투표해야 하기 때문에 위성정당에 투표하는 일이 사라집니다.
네 번째는 선거제로 인한 불평등이 완화됩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후보자로 내던 소수정당이 의석을 차지할 확률이 높아져 정당 간 불평등이 완화되며, 정당이 지역구나 보정의석에 사회적 약자를 홀수 번째에 배치할 수 있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당 내 불평등도 완화될 수 있습니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47석에 해당되는 비례의석에만 30%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자리로 강제할 수 있었지만, 완전한 비례대표제가 된다면 30%를 전체 후보자 명단에 강제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지역주의가 완화되고 지방자치가 발전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광역시∙도를 몇 개의 작은 지역구로 나누고 그 곳에서 국회의원을 뽑습니다. 때문에 지역구 국회의원(후보자)은 그 작은 지역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신이 구청장, 구의원처럼 행동하며, 온갖 지역개발 공약을 쏟아냅니다. 이는 무분별한 예산 낭비와 지역주의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권역별 개방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국회의원을 더 이상 시군구 단위로 나누어 뽑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국회의원들은 광역시∙도 단위로 뽑히기에 국민들은 시군구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구의원, 구청장에게 맡기고, 지방자치 차원에서 풀 수 없는 문제들은 국회의원에게 맡기면 됩니다. 이렇게 권역별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는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지방자치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치불신과 사회갈등 문제가 완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거제 개혁 시리즈 1편에서 승자독식 시스템의 양당제 국가일수록 정치불신이 형성되고 상대방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반대로 완벽한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일수록 이러한 현상은 완화되었습니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권역별로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이들은 국민 대다수의 목소리를 정치권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 덕분에 사회적 갈등이 매우 적은 편입니다(그림 3 참조). 사회갈등이 우리나라 최대의 문제로 떠오른 지금, 모두의 목소리를 반영해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시급합니다.
그림 3. 각국의 사회갈등지수(2015년)
총 4주간 네 편에 걸쳐 연재된 공익허브의 선거제 개혁 시리즈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우리는 현행 선거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일으킨다는 것을 수많은 데이터와 사례로 확인했고, 이러한 문제는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남아있을 것입니다. 얼마전 대선에서 있었던 두 후보 간의 미세한 득표율 차이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고합니다. 또한 바로 이틀 전 있었던 지방선거에서는 부산, 대구, 울산, 광주가 한 개의 정당에 의해 모든 의석이 점령당했습니다(이외에 영호남 지역은 한 정당이 95% 이상의 의석 점유율을 보이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를 개혁한다던 정치권의 약속은 지난 총선 때도, 이번 지선 때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선거제가 일으킨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우리가 제도에 대한 개혁을 요구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