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익허브 Jun 21. 2022

그래서 ‘버닝썬’은 어떻게 됐다는 건데?

이 글을 쓰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아마 뉴스 확인 후 곧바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더라면, 이 글의 시작과 끝은 쌍욕으로만 가득 차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승현이 2심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했다. 1심에서 3년을 선고받았던 그의 형량은 2심에서 1년 6개월로 반이나 줄어들었다. 이쯤에서 이승현이 누군지 궁금할 것이다. 빅뱅의 승리, 그가 바로 이승현(이하 이 씨)이다. 


대법원은 이 씨에게 100만 달러(약 11억 5천여만 원)를 추징해야 한다는 검찰의 상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저 금액도 이 씨에게는 큰돈이 아니다. 그가 운영했던 클럽 ‘버닝썬’은 매주말마다 20억씩 벌어들였다고 하니까. 


결국 그는 어떠한 금전적 손실도 없이 1년 6개월 동안 얌전히 감옥에 갇혀 있기만 하면 죗값을 다 치르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돈 없고 인맥 없고 실력 없던 연습생 생활도 1년 반을 보낸 이 씨이니, 저 정도 시간쯤이야 뭐 그리 어렵겠는가.


내가 그에 대해 이리 잘 알 수밖에 없는 이유.  

안녕하세요. VIP(빅뱅 팬클럽명) 2기, 최애는 승리, 하루 방문자만 2천 명이 넘는 빅뱅 팬블로그를 운영하던 운영자입니다. 저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제 인생 첫 아이돌을 이렇게까지 증오하게 될 줄은. 내 삶을 이토록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준,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이 씨에게 박수. 팬일 때도 내 돈으로 승리 밥 먹였는데, 팬 아닐 때도 내 돈(세금)으로 이 씨에게 밥을 먹이는구나. 

오빠 니 출소하면 연락해라. 그동안 모아 둔 빅뱅 앨범이랑 DVD, 승리 솔로 앨범까지 전부 오빠한테 보내버릴라니까. 당근에 무나로 올렸는데 아무도 안 가져가더라 그거. 


이승현이 성매매 알선, 매수, 업무상 횡령, 상습도박, 특수폭행 등등 9개의 죄목에 대해 1년 6개월밖에 선고받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이 ‘버닝썬 게이트’에는 더 큰 문제들이 남아 있다. 사실 이승현은 이 거대한 사건의 꼬리일 뿐이다. 그것도 꼬리의 아주 끄트머리 부분. 


버닝썬 게이트의 본질은 크게 세 가지다.


1.     클럽과 경찰과의 불법적인 유착관계.

2.     상습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거대한 마약 카르텔.

3.     위의 두 가지를 이용한 성범죄.


하지만 현재 미디어에서는 이 세 가지 중 그 어느 것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모두가 승리, 정준영, 최종훈과 같은 연예인의 범죄 사실에만 주목 중이다. ‘버닝썬 게이트’는 어느새 ‘정준영, 최종훈 황금 폰 몰카 사건’과 ‘승리 성매매 사건’으로 바뀌어 있었다. 


2018년 겨울에 시작된 버닝썬 사건은 2022년 5월 말 이 씨가 최종 선고를 받으며 모든 것이 마무리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미성년자 출입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버닝썬 대표에게 돈을 받은 전직 경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았다. 건네받은 돈을 찾을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전직 경찰을 통해 230만 원을 받은 현직 경찰은 뇌물수수가 아니라 직무유기로 입건됐다. 그도 불기소 판정을 받았다. 

승리를 도와 그가 운영하던 클럽 버닝썬과 몽키뮤지엄의 뒤를 봐주던 전 '버닝썬 경찰총장'도 벌금형과 정직 3개월에 그쳤다.  


마약 카르텔에 관해서는 박유천의 전 여자 친구 황하나와 그녀의 죽은 애인과 동료 이야기로 포커스가 옮겨졌다. 현재 한국에서 마약을 구하기가 얼마나 쉬운지에 대해서 다루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접근도 간편해져 미성년자들이 용돈벌이로 마약 운반책 일을 하며 카르텔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내용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리고 그 유통의 중심에 버닝썬과 그곳의 직원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지워져 버렸다. 


두 범죄는 그 각각의 사실만으로도 이미 심각한 범죄다. 하지만 이것이 합쳐져 무고한 성범죄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밑바탕이 됐다는 점에서 더 악질적이다.


버닝썬의 직원들은 클럽을 찾은 VIP에게 일명 ‘물뽕’이라 불리는 마약 GHB를 제공했다. VIP는 술에 마약을 섞어 클럽에서 만난 여성에게 먹였다. 정신을 차린 뒤,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관한 피해사실을 인지한 여성은 경찰서를 찾았다. 하지만 경찰은 버닝썬과 VIP의 편이었다. 용의자는 해외로 출국하였고 수사는 중단되었다.


버닝썬 사건에 관하여 실질적인 몸통 부분에 해당하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사실 위에서 언급된 연예인들도 제대로 처벌받았다고 보기 힘들다. ‘게이트’라는 단어가 붙을 정도로 사건의 본질은 거대했지만, 마치 손 에 쥔 해변가의 모래처럼 서서히 전부 빠져나갔다. 결국 이번에도 남은 건 피해자뿐이다.


어찌 보면 현대의 대중들은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을 이용하여 스스로가 올바른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습득 중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버닝썬 사태를 통해 봤을 때 대중들은 자극적인 단어 하나에도 쉽게 휘둘려 버린다. ‘김상교 성추행’, ‘황금 폰’, ‘버닝썬 여배우’라는 단어들은 순식간에 버닝썬 사건을 유명인의 개인적인 범죄행위로 축소시켜 버렸다. 


그리고 이런 축소 과정을 전면에서 도운 건 당연히 언론이다. 사건을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해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을까?

현재 언론은 버닝썬 사건의 분위기를 흩트려 놓은 것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고 있을까.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책임은커녕 뒷마무리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버닝썬은 이미 ‘지나간 이슈’ 일뿐이니 계속해서 사건을 조사하여 보도하는 것은 클릭률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이들이 무죄판결을 받을 동안 버닝썬 게이트의 최초 고발자 ‘김상교’씨가 여전히 재판 중이란 기사보다, 이 씨의 여동생이 “오빠가 교도소에서 팬들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라고 SNS에 업로드했다는 기사를 내는 게 더 인기 뉴스에 오르기 쉽기 때문이다.   


기자는 사건을 제일 앞에서 맞닥뜨리고,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사람이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며 삶의 대부분의 것들이 데이터화 됐다. 조회수나 추천수처럼 대중의 반응과 관심을 즉각적으로 확인하는 일은 우리에게 일상이 됐다.


데이터는 인기의 척도를 알려준다. 그리고 인기는 파급력을 갖는다. 언론은 즉시 반응이 오는 기사들만 쏟아 내기 시작했다. 자극에 취한 것은 대중만이 아니다. 

마약범이 마약에 취해 있는 동안 스스로가 누구인지 망각해버리는 것처럼, 언론도 자신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망각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 자극에 가장 중독되어 있는 것은 언론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사장2 : '굳이'의 미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